길치를 인정하고 길 잃는 자유(?)를 얻다
나는 길을 잘 찾지 못한다. 이 평범한 문장을 몇 년 전까지해도 내뱉기가 힘들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내가 길을 잘 찾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찾아야 할 때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랜드마크나 간판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장소들을 부지런히 열거해주곤 했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도 몇 번 출구, '어느 은행 방향' 정도의 안내만 있다면 무리없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까지 사람들은 목적지를 알려주는 약도를 그리는 데 익숙했다. 설명을 듣고 대략 길을 잘 찾아갔지만,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서는 길을 잃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건방지게도, 내가 아니라 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서부터 나의 길치력이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기 때문에 길을 잃는 건 당연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얼마나 무모한 자신감이었는지!
문제는 모르는 길을 동행인과 같이 갈 때 발생했다. 동행인이 나를 믿고 어딘가로 함께 열심히 가는데 아무리 가도 목적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머리 속에 주체할 수 없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정신적 충격에 가까웠다. 온 몸이 떨려오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드디어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길을 못 찾아." 누군가는 빙빙 도는 나에게 화를 냈다. "왜 이렇게 길을 못 찾냐고!"
뉴욕에 와서야 나는 내가 길치임을 인정했다. 한국 지하철 역의 그 편한 출구 번호 시스템을 벗어나서야, 내가 길을 찾는 감각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 지하철역 출입구에는 번호가 없다. 오로지 '동서남북' 방향만 쓰여 있다. 북동쪽, 북서쪽, 남동쪽, 남서쪽. 랜드마크 안내도 없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든가, 센트럴 파크가 어느쪽인지 역사 내에선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요즘 큰 역에는 주변 지도를 설치하는 추세이지만, 가고자 하는 건물이 동서남북 어디인지 판단을 못하면 그 지도도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많은 지하철 역 안에선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뉴욕에선 길을 찾는 규칙이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스트리트 숫자가 커지고, 서쪽으로 갈수록 애비뉴 숫자가 커진다. 그러니까 어딘가를 가려고 할 때 동서남북 방향 감각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동서남북의 개념을 알지만 몸으로 체득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서울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내가 동쪽으로 가는지 남쪽으로 가는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가서, 편의점을 끼고,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걸어가다 보면 찾는 곳이 나왔을 뿐이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방향에 대한 인지력이 존재하지 않으니 길치가 되는 건 당연하다. 이 당연한 논리를 나는 왜 그렇게 못 받아들였던 걸까?
아마도 나는 '길치'를 엄청난 약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약점을 보이는 순간 질지도 모른다는, 생존을 위한 경쟁 의식을 기반으로 살고 있었기에 어떤 약점도 인정해선 안된다고 여겼던 것같다. 어쩌면 가진 것이 별로 없이 머리와 몸만 믿고 경쟁의 도로에서 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약점을 내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그걸 공격할 거야! 아니면 단순히 나란 인간이 그저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량이 좁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그런데 길치임을 인정하자 길을 못 찾을 때마다 갑자기 몰려왔던 패닉 어택이 사라졌다. 가슴이 두군거리고 식은 땀이 흐르고 이성이 마비되는 그런 순간이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그리고 어떤 인생의 수수께기 같은 것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수수께끼는 좀 바보같은 것이다. 왜 여행을 가면 나는 목적한 곳을 다 돌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탐험하게 되는 걸까, 뭐, 이런 거다. 그렇다. 나는 어딘가 여행을 가면 매번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면서 재미있는 곳, 좋은 곳을 발견해하며 즐거워했다. 의도치 않게 어디에도 정보가 나오지 않는 공간을 가보곤 했다. 단점은, 그 위치가 정확하게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설명해줄 수도 없고, 다음에 다시 찾아가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여행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길을 잃고 돌아다녔던 알 수 없는 곳들이 자연스럽게 소환된다. 그때 그 길이 참 예뻤는데. 그때 그 건물이 참 멋졌는데. 뉴욕의 길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곳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래서 길을 잃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제는 그 길이 아니고 돌아가면 또 그만큼 많은 걸 보게 되겠지 하며 마음도 넉넉해진다. 그리고 길을 찾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미리 길 정보를 인지하고 길 찾을 시간을 충분히 안배한다. 한계를 인정해야 해결할 방법도 보인다. 이젠 예전보다 훨씬 길을 잘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치'는 말 그대로 길을 못 찾는 나의 특성 중 하나이자 뉴욕에 온 뒤 내 삶을 은유하는 말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할 때는 나아갈 방향이 뚜렷해 보였다. 그게 그다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었어도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동안 해야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그 길을 벗어나서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내가 길을 잘 찾는다고 믿었으니까!), 지금까지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헤매고 있다.
이렇게 인생에 있어서마저 길치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헤매다가 영감의 표지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 삶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이 도시의 매력이다. 어느 좌절의 순간, 사람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예술작품이든, 나무든, 새든, 꽃이든, 책이든, 길이든, 걷다가 마주치는 무언가가 갑자기 인생의 힌트같은 것으로 다가오곤 한다. 길을 잃더라도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길은 사방으로 뻗어있고 나는 계속 길을 잃는다. 잃은 것인지 찾고 있는 것인지는 아마 시간이 흐른 후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게 있다. 다른 길이 마음에 들어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길치에게 지름길은 없다.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