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를 믿는 어른이 말을 할 때 조심해야 하는 이유
우연한 기회에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간 아이와 스몰톡을 나누게 되었다. 이제 막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뉴욕의 지루한 판데믹 분위기에 적응 중인 아이와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해 이것저것 말을 주고 받았다.
"나는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해. I think it's just a beginning."
"무슨 시작이요? A beginning of what?"
"미래? The future? 세상의 끝? The end of the world?"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멈췄다. 그 아이가 지금 이 시기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극단적 개념을 갑자기 내가 꺼내버렸기 때문이다.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학기에 대학교로 돌아가 친구들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는 아이에게 굉장히 '라떼스러운' 찬물을 확 끼얹어버려서 엄청나게 미안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미안하다. 세기말 시기를 지나온 염세주의자 꼰대의 과대망상 같은 이야기를 너에게 순간적으로나마 퍼부어서.
아이는 곧 잊어버리겠지만 이 짧은 대화는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겼다. 어른이라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입을 닥칠 필요가 있다는 것.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꿈꾸는 건 이루어질 수 있고, 가능성이 무한대라는 파스텔톤의 감성적 칭찬만 던져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들을 남발할 성격이 아니기에 차라리 침묵으로 응수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길 수 있는 유머의 문장이 아니라면 나만의 답같은 건 마음 속에만 품고 있기. 왜냐하면 그렇게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속내를 드러내봤자 동의를 얻지 못하면 "저 분 왜 저럼?"같은 어색한 순간을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세상을 속단하는 건 무례해서다. 내 20대로만 돌아가봐도 역지사지의 순간이 한아름이다. 나는 웬만한 어른의 말은 안 듣는 아이였는데 그들이 말하는 조언이라는 게 내 현실과는 도무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싶다는 사람에게 '어렸을 땐 다 그래. 나도 너 때는 그랬어. 너도 별 수 없을 걸'이라든가, 성차별 이야기를 꺼내면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야, 네가 참아'라든가, 그림을 그리는 꿈을 품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다. 그런 꿈은 갖지 마'라든가, 사장의 횡포에 맞서고 부당한 해고에 반대하자고 말하면 '살아남으려면 딸랑이가 되어야 한다'라든가 등등 앞으로 좀더 다르게 살아보거나 불편한 지점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대체로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며 자기들 머릿속 세상에 대한 질서만을 대답처럼 늘어놨기 때문이다. 결혼이 무덤이라면서, 무덤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일탈에 집중했던 사람들. 성추행과 폭행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며 상사의 당연한 특권처럼 말했던 사람들. 억울하면 출세하라면서,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막 대하고 폭언을 품던 사람들. 그런 어른들이 말하는 답이라는 것은 그 질서를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대개는 아무런 소용도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다.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훈수를 둘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 나이가 훈수를 위한 마일리지가 아님을 재차삼차 확인해야 하는 시점이다.
환경 위기를 생존의 위기로 생각하며 매일 발전하는 기술 문화에 안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그 전 세대가 대체 무슨 답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 부가가치를 생산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지나왔던 시기의 경제 모델을 예로 들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지나왔던 사람들은 반휴머니즘에 대한 경계심 같은 걸 부지불식 간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같은 영화를 보고 충격 받으며 '로봇과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에 새겨놨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만 가득한 거리를 걸어갈 때, 기술 주식이 뛰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팟캐스트를 듣는 한편으로 눈 앞에 갑자기 많아진 듯한 홈리스 피플을 목격하고는 '세상이 망했구나' 하는 감각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다. 마치 수많은 SF 영화가 예언서라도 되었는 듯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믿어버리고 만다.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고 불안해지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이 시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혹은 세상이 이렇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청춘을 즐겨야 하나 고민이 많은 아이에게 "내가 보기에 세상은...."으로 운을 떼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생각이 아니다. 함께 답을 찾아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한물간 내 마음 속 세기말 데이타로 '망했어'라고 선언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세기말 무드의 자조적 대화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치맥이나 하면서 안주 거리로 활용하는 게 딱 적당하다. 지금의 이 디스토피아 무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비슷해 영화 복붙인가 싶어 신기하더라도 디스토피아 멘트를 쿨한 듯 날리면 새로운 꼰대 유형이 될 수 있다는 것. 아, 나 또 어른은 답을 모른다면서 답을 말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