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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Dec 09. 2020

05. 빌런

잔잔의 다섯 번째 단어 : 팀플



인생은 역시나 생각하는대로 풀리지 않는다. 이번 마지막 수강신청을 완벽히 성공했을 때, 예상했던 나의 막학기 생활은… 이건 아니었다. 월,화 공강에 13학점,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전면 온라인 강의까지. 널널하고 여유로우며 취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멋진 막학기일 줄 알았지. 이런 나의 예상을 와장창창 깨 버린 것은 이번 학기 팀플이라는 존재였다. 


전공 특성 상, 그리고 여러 공모전에 참여했던 경험 상 나는 팀플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싫지만, 어느정도 면역이 생겼고 또 그동안 운이 좋아서인지 팀플에서 ‘빌런’이라고 칭할 만한 누군가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썰들과 친구들의 경험담 속 존재하는 빌런들은 다행히 내 주위에는 없었다. >이번 학기 전< 까지는…


이번 학기 나는 남은 자선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교양 듣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싶어 전공 세개를 듣기로 했고, 그 중 두개에는 팀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두개의 팀플은 둘이 합쳐 아마도 나의 수명을 1년 가까이 까먹었을 것이 확실하다. 각각 약 한달이 넘도록 붙잡고 있었던 나름 장기 팀플이었고, 둘 중 한 수업에서 인생 역대급 빌런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역대급 빌런을 U씨라고 하겠다. 그는 이미 조가 다 나눠지고 한 번의 짧은 회의가 끝난 이후, 다른 조가 분해되면서 (조원 2명이 수업을 드랍했던 듯하다) 뒤늦게 우리 조에 합류했다. 우리 조는 나와 나의 친구 Y, 그리고 다른 전공 J씨, 그리고 ‘그’ 이렇게 네 명으로 구성되었다. 뒤늦게 합류해 첫 번째 회의 내용을 모르는 U씨를 위해 조장을 맡고 있던 Y는 장문의 카톡으로 회의내용 요약과 해와야 하는 것을 정리해 보내주었다. 하지만 U씨는 그 카톡을 읽씹…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나와 Y) 그의 쎄함을 슬금슬금 감지하기 시작했다. ‘쎄하다’는 것은 오랜 기간 쌓인 우리의 빅데이터가 주는 알림 같은 것이라고 누군가 그랬듯, 쎄하다는 감정은 절대 무시해서는 안되는 과학이고, 인체의 신비이며,,영혼이 주는 <warning>사인인 것이다. 



나의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은 계속되었다. 하나하나 적자니 일러바치는 기분이라 이만 줄이겠지만, 아무튼간 그는 내가 처음 만나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물론 처음 만나보았으니 이런 빌런을 대처할 슬기로운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무식하게 맞서 싸울 깜냥은 더더욱 되지 못했으니, 그저 눈물을 흘리며 며칠밤을 새서 나와 Y가 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눈물의 팀플이 마무리되고, 마치 바톤터치하듯 새로운 팀플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U씨 만큼 나를 분노하게 하는 빌런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오프라인 회의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에서 구글밋과 카톡으로만 진행하자니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다가 어쩌다보니 기본 흐름 정리부터 ppt디자인과 뒷부분 제작파트까지 나 혼자 도맡아 하게 되었다. ‘이건 아닌데…’싶었지만 또 역시 눈물을 머금고 밤을 샜다. 



나름 팀플에 적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학기를 지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말았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의 30%는 팀플일 확률이 높은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걱정이 많아졌다. 경험해본 적 없는 나의 상식 밖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현명한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내가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이 한 몸 희생할 수도,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릴 수도 없으니, 연구하고 노력하여 알맞은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by.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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