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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Dec 09. 2020

05. 인생은 팀플의 연속

잔잔의 다섯 번째 단어: 팀플


저번 주에는 DD도 나도 너무너무 고단해서 글을 올리지 못했다.(반성) 잔잔을 시작할 때 쌓아둔 세이브 원고 세 개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 모조리 써버렸고(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글이 필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학기와 병행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슬프다…


공주는 아니지만 짜증은 난다.


나는 광고 전공이다. 입학할 때는 언제 졸업하지 싶었으나 벌써 졸업이 코앞이다. 곧 학생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아찔하다. 내가 어쩌다 광고를 전공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러쿵저러쿵 어찌어찌하다 보니 무수히 많은 팀플에 허덕이는 운명에 살게 됐다. 한 학기에 최소 두 개, 최대 여섯 개의 팀플을 해봤다. 보통 학기에 6개에서 7개의 수업을 들으니까 거의 한 수업 빼고는 모두 팀플이 있었다는 뜻이다. 


매일 밤낮을 팀플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는 2018년에 3학년 2학기까지 마친 후 휴학을 했고, 2020학년도 2학기에 1년 하고도 반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한 학기 만을 남겨둔 막 학기 생이기 때문에 굳이 팀플 수업을 고를 필요는 없었다. 전공 수업도 하나만 더 들으면 됐지만 그때의 나는 무엇에 홀렸던 걸까?  왜 나는 팀플 있는 수업을 골랐던 걸까...


기억을 더듬어 덥디덥던 여름 수강신청 날로 가본다. 마지막 학기에는 광고 수업보다는 이중전공 수업을 훨씬 많이 들었어야 했다. 이중전공은 광고보다 끔찍(terrible)하다. 나는 정말 대학생활 중에 단 한 번만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이중전공 신청하던 날로 돌아갈 거다…(tmi) 아무튼 남은 전공 학점은 3학점이었고 왠지 이렇게 막 학기를 끝내려니 아쉬웠다.(도대체 왜?) 마침 우리 학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의 수업이 열렸고 이 수업을 들으면 의미 있게 졸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잠시 미쳤나 보다. 교수님에 대한 미친 팬심이 과거에 팀플로 고생한 나의 피폐하고 초라한 모습을 잠시 망각하게 했다.


수십 개의 자발적 팀플 & 타의에 의한 팀플을 해온 나지만, 나 스스로도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다 같이 힘을 모아(?) 자료조사를 하고, 각자 짜 온 흐름을 이야기하고, 잘 나온 흐름을 뼈대 삼아 의견으로 살을 붙이고, 뇌세포 하나하나 착즙 해서 컨셉 짜고, 디자인하고, 발표하고…. 우당탕탕 하다 보면 어느새 팀플이 끝난다. 매번 흐름 짜는 건 어렵고, 천재처럼 갑자기 머리 위에 전구가 뿅! 나타나면서 인사이트가 나오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매번 ‘나는 바보’ 삼창을 외친 후에 조금 구질구질하고 부끄러운 콘셉트를 얻곤 한다. 


나조차도 부족하다 보니 타인에게 큰 기대를 건 적은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덜 해오더라도 괜찮다. 4년(+a)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그저 ‘나도 잘 못하는 데 뭘..’ 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대학생이 되었을 뿐이었다. 사실 나도 누가 봤을 때는 못하는 인간이자 빌런일 수 있고.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말기로 매번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마지막 학기, 유일한 전공 팀플에서 인생 최고의 개노답 삼위일체형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이 글의 큰 영감이 되어 주셨다. 그가 나에게 영향을 준 일은 이게 전부다. 나에게 글감을 준 것. 


자세한 이야기는 쓰기 조금 그렇지만, 하여튼 팀플 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봤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그 사람이 안 한 일까지 내가 해야 하니까!) 참으로 힘들었다.. 자료 조사도 안 하고, 흐름도 정리 안 해오고, 팀플 참여도 안 하고, 피피티도 안 만들어, 제작도 안 해, 마지막으로 하기로 한 발표는 아주 죽을 쑤었다. 그래 놓고 맨날 말은 잘한다.. 정리 왕 인척.. 내 인생 최초로 본 완전체. 삼위일체 개노답 인간... 그래.. 다른 데 가서는 잘하시겠지..(이것도 화남)



그를 생각하며 학교에서 팀플 할 때 쉽게 만날 수 있는 빌런 유형을 정리해봤다. 

(bgm : '신승훈 - I believe')


1. 자료조사! 정말 쉽지~ 
아니다.... 자료조사가 정말 중요한 거더라... 자료조사가 충실이 안 되면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자료조사를 해올 때는 출처를 명확히 하고! 핵심만 뽑아서 워드던 피피티 던 문서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피피티 초안
그래 초안은 사실 어렵다. 왜냐면 자료들에 워딩도 해야 하고, 흐름도 생각해서 짜야하니까. 어려운 거 인정. 나도 잘 못 하는 거 인정! 남이 잘 못해도 인정! 그래도 자료를 그대로 Ctrl C+V 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자료 출처 좀 제발 써주세요. 그렇게 주시면 디자인 담당(나)이 내용까지 다시 다 만져야 하니까요...

3. 발표

발표, 당신에게 그 10분 만을 맡긴 이유는 다른 사람들 일 할 때 내용을 잘 숙지하라고 10분만 말하게 한 거예요. 부디 내용을 잘 숙지해주세요.. 그리고 PDF로 여실 때는 제발 전체 화면 공유해주세요.. 브라우저로 열어서 스크롤 내리지 마세요.. 제가 애써 만든 슬라이드 안 보이니까요..



진짜 최악이었지만 내 대학생활 마지막 팀플도 끝났다. 졸업하면 팀플도 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극강의 팀플을 마친 후에 '나는 영영 팀플 속에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사회에 나가면 저런 사람이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엉터리 방터리 같은 사람이 있어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도 참고해야 한다. 어차피 내 일이니까, 저 사람이 안 해도 나는 해야 하니까. 이상한 팀원을 만나도 머리채 잡고 끌고 가야 하겠지. 인생은 너무나도 팀플 같다. 항상 좋은 팀원을 만나고 싶은 건 내 욕심이겠지. 나야말로 저런 개노답 형제의 일원이 되지 않도록 '나나 잘하자'라고 마음을 정말 굳게 먹었다. 자신의 무책임함을 말로 포장만 하는 유형의 인간은 절대로 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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