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여름의 슬픔

잔잔의 열아홉 번째 단어 : 여름

by 잔잔 janjan



여름은 미화의 계절


끈덕지게 뜨거웠던 공기와 신발은 적시는 장맛비는 기억에서 증발되고 나뭇잎 뒤에 비친 햇살이나 주황색 능소화. 민소매와 샌들, 낮은 구름과 초록이 남는다. 자꾸 꺼내보는 사진에는 여름의 조각이 잔뜩 담겨있다. 좋아하는 영화에도, 자주 듣는 음악에도 여름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들 그렇다고 한다.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지난여름엔 아주 조용한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스노클링 안경을 끼고 몇 시간씩 잠수를 하고, 미동도 없이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귀를 물에 담근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있으면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흔들리는 물결이 귓가에 찰랑대는 소리만 들린다. 곱게 갈아 물에 개 놓은 가루 같은 구름과 낮은 오후의 햇살. 나는 문득 슬퍼지는 마음이 들었다. 머지않아 이 시간을 그리워할 나를 상상하며 아득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마도 평생을 기억할 여름의 조각일 것만 같다.


그런 날들을 떠올리며 적은 짧은 글을 여기에 옮겨본다.




여름의 슬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여름을 그리워한다고 답했지


좋아한다고, 아님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그리워한다고 말했지


녹사평 역 6번 출구로 나와 걸으며

진초록의 은행나무 행렬을 보는 일

걸어오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얼굴을 마주하고

술이랑 노래가 있는 축제에서 4시까지 춤을 추고

뿌예진 공기를 툭툭 털고 나와 처음 타는 버스를 기다렸지

늦도록 해변에 앉아 남이 하는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마냥 행복하고 조금 울고 많이 시끄럽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


행복하다고 말하면 그 순간 과거가 되어버릴 만 같아서

눈을 감고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과 사람들이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문득 슬퍼지는 마음은

내 미래의 그리움을 알아본 모습




이제 진짜 여름



by.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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