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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Aug 31. 2021

01. 함께 넘어지지 않는 거리

잔잔의 첫 번째 단어: 거리

전에 나를 소개하는 글에서 나는 타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아는 것들의 총합이라고, 그래서 나에게 타인은 더없이 중요하다고 썼다. 요령 없이 사랑할 줄만 알아서  모든 걸 품으려고만 했다.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말은 내게 상처주기 쉬운 말이었다. 내게 관계의 척도는 거리감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간절했을까?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가 숙제라도 내 준 마냥 영단어를 암기하듯 주변을 기억하려 했다. 그중 단 하나라도 모르는 게 없었으면 했다. 포옥 끌어안고 있어야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려 다 끌어안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는 필연적으로 멀어지게 된다. 어떤 관계는 그렇게 쉽게 찢어진다. 딱 한 발치만큼부터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까지도 멀어진다. 우리는 다른 곳에 살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른 것을 보고 배우게 되니까. 나는 우리들 사이에 생겨버린- 앞으로도 무수히 생길-다름에 대면하게 됐을 때를 준비해야 했다.


딱 한 뼘 거리에서 누군가를 보아 왔다. 그랬기에 고작 한 뼘 정도밖에 알 수 없었다. 가까워서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뭘 믿고 그들의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을까? 아, 관계란 무조건 가깝다고 능사는 아니구먼


아주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뒤로 가서 보니 나도 보였다. 

내 시선이 향하는 곳도 알게 되고, 내가 서 있는 곳도 보이고, 앞도 보이고 뒤도 보이고... 퍽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살짝 비틀어진 내 걸음걸이나, 쫑쫑쫑쫑 뻗어가는 내 보폭 같은 것. 시선이 유연하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것들이 있었다.


타인도 더 잘 보게 되었다. 그의 걸음걸이와 보폭, 비죽비죽 나 있는 잔머리도 보이고, 표정이나 말투나 한숨도 눈에 띄고... 

그저 섭섭할 줄만 알았는데 이게 웬걸, 더 재미있다. 사람과 조금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같이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조금 거리가 멀어졌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됐다. 덜 슬프고 더 찬찬히 볼 수 있다.


내가 넘어졌을 때 같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 거리가 좋다. 힘이 들 땐 잠깐 그 거리를 좁혀 다가와 서로를 부둥켜 안거나 일으켜줄 수 있는 그런 사이 말이다.



by. 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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