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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Nov 01. 2020

01.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들

잔잔의 첫 번째 단어 : 거리



2020년도 끝나간다. 세상이 요지경이래도 시간을 흐르고 계절은 바뀐다. 추석이 끝나는 날 어쩜 그렇게 귀신같이 찬바람이 시작되는지.


올해는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던 해였다. 2020년. 하고 나중에 떠올려본다면 할 말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깊은 한숨으로 시작할 것은 분명하다. 하이-테크놀로지의 시대일 거라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있을 지도 모른다며 모두가 가슴 한 켠에 왠지 모를 기대감을 품어왔을 해였을 텐데 말이다. 인터넷 밈들이 말하듯 누가 2020년에 역병이 창궐해 집에만 콕 박혀 커피랑 설탕을 섞어 500번씩 젓고 있을 줄 알았을까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집에 붙어있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하는 인간이었던 나는 막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초반 한두 달은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뭐라도 할 일을 만들어내 집 밖으로 튀어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은 교통비가 한 달에 10000원도 안 나오는 라이프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자주 가던 동네 작은 도서관도, 우리가 사랑하는 종로의 맛집들, 술집들도 점점 멀어졌다.게다가 연초에 예매해 두었던 공연 세 개가 연달아 취소 되었을 때는 주책 맞게도 조금 눈물이 났다.


이 망할 년(year)… 나는 이렇게 살다가는 이끼나 산호 같은 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요 바이러스는 알 수 없는 신앙심(?)과 사람들의 이기심,무지함, 기타 등등의 것들과 환장의 콜라보를 통해 활개를 치고 다녔다. 나는 24년 평생을 살아온 우리 동네에 얌전히 박혀있었다. 평생을 지겹게 내 주위에 있던 것들 것 어느 때보다 찰싹 붙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겹다고 염불을 외면서 답답한 저녁에는 집 앞에 작은 천을 따라 낸 산책로를 한 시간씩 걸었다. 많은 저녁들을 걸으면서 나는 작년의 사집첩을 뒤지면서 떠나고 싶은 곳들을 떠올렸다. 망원 한강공원, 서촌, 해방촌, 서울숲, 작년에 갔던 유럽의 도시들..


그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거 진짜 못하는구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주위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주위의 존재들에 대해 사랑을 담아 말하고 쓰는 사람들을 닮고 싶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좀 더 특별하고 아름다운 곳일 거라고, 그들이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더 멋진 사람일 것이라고,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을 궁금해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부러워했다. 근데 그게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가까이에 있을수록 초점이 흐려지지 않게 찬찬히 바라봐야 한다. 생각보다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말하듯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버려 많은 걸 놓친다. 한 없이 유치하고 진부한 말들이 정답일 때가 많다.





by.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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