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janjan Nov 09. 2020

02. 서브웨이 주문하기

잔잔의 두 번째 단어: 샌드위치


주문하는 건 너무 떨려


언젠가 그런 짤을 본적이 있다. 굉장한 아싸인 어떤 사람이 서브웨이에 처음 갔는데, 빵 종류부터 치즈, 야채, 소스 종류까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수많은 질문을 받다 보니 너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계산대에서 그만 울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짤 아래에 달린 댓글은 온통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투성이었고 나도 그 짤에 친구를 태그해 ㅋ 몇 개를 달았던 것 같다. 저 이야기가 이토록 인터넷 세상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우스웠기 때문은 아닐 거다. 우리 모두 그 작은 샌드위치를 주문하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당혹감을 느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이 짤을 보고나서 나도 내가 서브웨이를 처음 주문해 봤을 때를 떠올렸다.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한 건 경복궁 주변의 대로변에 있는 서브웨이였다. 나는 아직도 그 주변을 지나다니다가 그 서브웨이를 볼 때면 뚝딱거리며 서브웨이를 처음 주문해본 날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멋쩍은 웃음이 난다. (은근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다) 



내가 먹고 싶은 거 선택하는 게 뭐가 그렇게 긴장되던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웅얼댔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긴장 되어서 갈 때마다 주문 순서와 대사를 머릿속으로 두 번씩 연습하는 찌질한 치밀함을 보였다. 스무 가지는 되어 보이는 생소한 이름의 메뉴(BLT와 BMT는 아직도 헷갈린다.)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나면, 빵 선택이라는 또 다른 난관이 등장한다. 무슨 빵 종류가 이렇게 많은 거야. 그 땐 싫어하는 피클을 빼달라는 말이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샌드위치를 받고 나서 뚜껑을 열어 피클을 따로 뺀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가능하지만, 과거 나에게 무언가를 많이 달라는 요구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건 파워-소심-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대사였다. 상상만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고. 아무튼 이 소심 인간은 커스터마이징이라는 이 브랜드의 핵심 아이덴티티를 무시하는 짓을 해버리곤 했다. 


어색하게 주문하던 나



나는 이제 토마토는 빼고 올리브를 많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에그마요는 빼고 빵만 데워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 그런 이십네 살이 되었다. 이제 샌드위치 주문 정도는 익숙해져 더 이상 가게에 들어가기 전 마음 속으로 주문순서를 연습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주문하는 게 뭐라고 그렇게 서툴고 부끄러웠던 건지 웃음이 난다. 



나는 종종 처음 맞닥트리는 새로운 일에 당혹감을 느낄 때면 경복궁 역 서브웨이에서 잔뜩 긴장한 채 주문을 하던 날을 떠올려본다. 얼굴이 화끈거리던 주문은 어느새 익숙해졌고 이제 그 날은 웃어넘길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이 날을 떠올리는 건 사소한 용기를 준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찌질한 나를 응원해 준다. '야 내가 해봤는데, 그거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지더라. 찌질해 보이니까 그만해.’라고. 



새로운 일들에 진땀을 빼고, 바보 같은 실수에 좌절감이 들 때, 나는 계속 계속 이 날을 떠올려야지. 나는 계속 서툴었고 앞으로도 서툴 거니까. 죽는 날까지 날마다 몇 번이고 새로운 일과 맞닥트릴 것이고 나는 평생 서툰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과거의 찌질하고 서툴었던 내가 현재를 사는 나를 응원해줄 거니까. 




by.DD


이전 03화 01. 함께 넘어지지 않는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