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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Nov 09. 2020

02. 밥순이의 필살 샌드위치

잔잔의 두 번째 단어: 샌드위치


밥순이의 필살 샌드위치 3종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쌀밥 없이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지독한 한식 매니아이다. 적당히 찰기 있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을 한 수저 듬뿍 퍼서 먹으면 그 안에서 오만가지 맛이 난다. 쫀득한 식감이며, 고소한 밥 냄새와 끝에 은은한 단맛까지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완벽한 음식은? 쌀밥이라 할 수 있다. 


샌드위치 글을 의도치 않게 쌀 찬양으로 시작해버렸지만 이런 내가 빵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빵은 빵대로 너무 맛있는걸.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집 근처에는 맛있는 빵이나 디저트를 파는 곳이 없어서 파리바게뜨에서 식빵, 바게트 등을 사 와서 뭔가를 더해야만 했다. 집에 대부분 혼자 있기 때문에 새 밥을 먹긴 힘들고(얼린 밥은 또 싫어한다.), 배는 고프고, 빵은 그냥 먹으면 심심하고... 그래서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고, 맛집에서 먹어본 빵의 맛을 잘잘 기억해두어 어설픈 솜씨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저리 하여 만들어진 나의 필살 샌드위치 3종을 소개하겠다.



 


1.  토마토 바질 샌드위치 - tomato basil sandwich


토마토 바질 샌드위치는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 파니니 가게의 기본 파니니 맛을 떠올리며 만든 것이다. 파리바게뜨에선 치아바타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느낌이 가장 비슷한 천연효모빵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대체로 파니니 그릴도 없으니까 그냥 토스터를 쓰자.


*필요한 재료*

빵(식빵, 치아바타, 바게트 다 상관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빵!) / 바질 페스토 / 마요네즈 / 토마토 (방울토마토도 상관없다)/ 모차렐라 치즈/ 후추(선택)


1) 우선 소스를 준비해보자. 바질 페스토와 마요네즈를 섞는다. 

바질 페스토 말고 참나물 페스토나 냉이 페스토를 구할 수 있으면 나중에 해 먹어보고 싶다. (주저리주저리)


2) 빵에 준비한 소스를 바른다.

빵은 본인의 기호에 맞추자. 식빵으로 해 먹으면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살짝 질깃질깃한 빵을 추천한다. 또 나는 바삭한 식감을 좋아해서 토스터로 한 번 빵을 구운 후에 나머지 재료를 올리는 편이다. 굽지 않고 바로 재료를 올리면 재료가 닿는 면이 너무 눅눅해져서 조금 슬프다.... 어쩌고저쩌고... 각설하고, 빵에 준비한 소스를 바른다.


3) 소스를 바른 빵 위에 '치즈 - 토마토' 순으로 올린다. 

토마토는 얇게 썰어서 올리자. 네모네모 체다 치즈는 추천하지 않는다. 사실 안 먹어보긴 했는데 왠지 체다의 향과는 안 어울릴 것 같다. 나는 보통 모차렐라 치즈를 사용한다. 치즈랑 토마토는 듬뿍듬뿍 빵에 빈 곳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이 올린다. 왜? 맛있으니까.


4) 완성작을 그릴/토스터/오븐에 굽는다. 

이 모든 게 없다면 프라이팬에 뚜껑 덮고 구워도 괜찮다. 


5) 진짜_진짜_최종본. sdwc 가 완성되었다! 구워진 토스트 위에 후추를 살짝 뿌려서 먹으면 맛이 한층 산뜻해진다.


나는 학교에서 멀리 살기도 하고, 학교 앞 파니니 가게 사장님은 휴무를 맘대로 하시는 경향이 있어서 닫힌 문을 애석하게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더는 배신을 당할 수 없어서 혼자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바로 그 집의 바로 그 기본 파니니와 약 80% 정도 똑같은 맛이 난다. 이 레시피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자주 해 먹어서 나에게는 익숙한 맛이었다. 


그러다 올봄에 미국에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할 때 엄마도 나와 접촉했기 때문에 한 공간에 있었는데, 매일 재택근무를 하며 점심 걱정까지 하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이 샌드위치를 해줬다. 엄마는 입맛에 맞았는지 다음날에도 해달라고 했고, 그다음 날에는 위층에 있는 할아버지와 아빠에게도 해주자고 했다. 그 다다음날에는 오빠도 먹고 싶다고 해서 오빠에게도 해줬다. 다들 너무 좋아해 줘서 괜히 쑥스럽고 기뻤다. 요즘도 엄마랑 오빠가 재택근무를 할 때면 나에게 조심스럽게 요청한다. 조금 귀찮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만 한 손에 묵직한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행여나 토마토가 떨어질까 조심조심 먹는 그 사람들이 귀여워서 되도록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주려 한다. 이제 우리 집 시그니처가 된 토마토 바질 샌드위치 꼭 드셔 보시오!



2.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 grilled cheeeeese sandwich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는 일명 -버터와 치즈와 빵만 있다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어 샌드위치-이다! 나는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를 정말 좋아한다. 유튜브 추천 동영상 목록의 8할은 음식 관련 콘텐츠가 차지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음식 관련된 영화는 거의 다 봤고, 다큐멘터리도 종종 챙겨본다. 


이런 나에게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딱 하나 있다. 어벤저스의 해피, 존 파브로가 감독을 맡고 출연까지 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4)이다. 주인공 칼(존 파브로)은 유명 레스토랑 셰프였으나 음식 평론가에 혹평을 받고 SNS에 실언을 한다. 그 후에 일은 어쩌고저쩌고 꼬여서.... 아무튼 영화 중간에 칼이 자신의 아들에게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해주는 장면이 있다. 한국인이 마늘에 관대하듯 이들은 버터에 관대하기 때문에 팬에 버터를 퍽퍽 퍼올린다. ‘저거 다 녹으면 국 아니야?’ 싶은 한식 맨이지만 ‘근데 역사적으로 봤을 때(?) 지방은 맛이 없던 적이 존재하지 않잖아.’라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식빵에 여러 가지 종류의 치즈를 넣고 그대로 팬에 투하한다. 버터가 지글지글 끓는 소리와 빵이 바삭해져 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이 쉬운 걸 안 해먹을 수도 없고.. 에휴 해 먹어야지(못 이기는 척).. 새벽 내내 유튜브에 있는 온갖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영상을 찾아보고 식빵을 한 봉지 사 왔더랬다.


*필요한 재료*

식빵, 치즈, 버터


끝이다.


1) 달군 팬에 버터를 넣는다. 

나는 보통 아빠 숟가락 두 스푼을 먼저 넣는다. 어차피 빵이 다 쪽쪽 빨아들이기 때문에 이것도 부족하다. 버터는 센 불에 올리면 금방 타 버리기 때문에 약불에 슬슬 녹여줍니다.


2) 버터가 녹고 팬이 또꼰또꼰 잘 달궈졌다면 치즈를 사이에 껴 넣은 빵을 팬에 올린다.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의 생명은 바삭바삭한 겉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빵이 홀라당 타버리지 않고 기분 좋고 보기 좋은 갈색빛이 나올 수 있도록 약불에 슬슬 구워준다.


3) 한 면이 잘 구워졌으면 버터를 추가하고 빵을 뒤집어 나머지 한 면도 구워줍니다.


완성!

‘근데 재료에 그냥 치즈..? 무슨 치즈를 넣어야 하지?’ 고민할 필요 없다. 좋아하는 치즈를 넣으면 그만이다. 내가 밤새 핸드폰 불빛에 의존하며 본 수십 개의 레시피 영상에서는 고다치즈, 그라나 파다노, 몬테리 잭 이 세 가지 치즈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거 어디서 사는 건데. 난 모른다. 그래서 초간단 K-그릴드치즈 샌드위치, 그냥 냉장고에 있는 치즈 샌드위치로 바꿔버렸다. 체다치즈 최소 석 장. ‘아니 느끼해서 그걸 어떻게 먹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의 편견이고 실수다. 치즈는 다. 다. 익. 선! 기억합시다.


이 샌드위치를 만들 때면 괜히 한 번 잘라서 주룩 흘러내리는 치즈를 구경하고 싶어 진다. 한 번 잘라서 접시 위에 있어 보이게 올려도 본다.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느끼하다. 맛이 없을 리가 없지. 에헴(으쓱). 재료도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샌드위치라고 생각한다. 가끔 막연하게 살찌고 싶은 음식이 당길 때 쉽게 해 먹기 좋은 레시피이다.



3. 잠봉뵈르 - jambon beurre


잠봉뵈르를 처음 봤을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뭔 놈의 샌드위치에 풀떼기도 하나 없고... 그리고 버터는 또 뭐야? 왜 저렇게 두껍고.. 딱딱해 보이지? 버터는 녹여 먹거나 얇게 발라먹는 거 아니야? 나는 버터의 참맛을 모르는 스물한 살배기 배낭여행자였다. 잠봉뵈르를 검색하면 ‘프랑스 국민 샌드위치’라고 나온다. 친구가 이 얘기를 듣고는 “약간 김밥천국의 기본 김밥 같은 걸까?”라고 얘기했는데 그 말이 엄청나게 와닿았다. 만드는 법은 참으로 간단하다. 프랑스 대표 빵인 바게트를 반으로 자르고 그 안에 잠봉(햄)과 뵈르(버터)를 넣어 와구와구 먹으면 된다.


프랑스 여행에서는 바게트로 만든 샌드위치를 참 많이 먹었다. 정말… 프랑스는 어디를 가나 바게트 천지였다. 여담이지만 식당에서 바게트를 한 소쿠리 가득 줬는데, 왠지 남기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근데 웨이터가 비워진 소쿠리를 보자마자 다시 바게트를 한가득 채워주는 거 아닌가? 리필을 막기 위해 마치 타지 않을 버스를 지나쳐 보내려는 듯 최선을 다해 시선을 거두었지만...(이하 생략) 나와 친구는 그렇게 매일매일 눈물 젖은 바게트를 먹으며 괴로워하면서도, 또 돈은 없어서 PAUL 같은 빵집에서 잠봉뵈르 같은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 우연히 잠봉뵈르로 유명한 소금집에 갔다. 그때까지도 내가 먹었던 샌드위치의 이름이 잠봉뵈르인줄 몰랐다. 따끈따끈한 감자튀김과 더는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 있는 잠봉, 기분 좋은 크림색 버터가 한가득 발려있는 샌드위치... 이거야말로 맥주를 부르는 샌드위치. 내가 만약 프랑스에 살아서 매일같이 잠봉뵈르를 먹는다면 열에 여덟 번은 맥주와 먹고 싶어 했지 않았을까? 그새 기억이 조작되어 눈물 젖은 바게트를 잊은 나였다.



*필요한 재료*

바게트, 버터, 잠봉


1) 바게트를 반으로 자른다. 

따로 구울 필요는 없다. 만약 구웠다면 충분히 식혀야 한다. 버터가 녹아서 줄줄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2) 버터를 바른다. 

‘이렇게 많이 발라?’ 싶을 정도로 많이 바른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이즈니 버터를 사용했다. 실온에 잠깐 놔둬서 살~짝 아주 살짝 부드러워진 버터를 바른다. 바르고 또 바른다. 버터의 레이어가 보일 정도로 발랐다.

3) 잠봉을 찢어서 내 맘대로 욱여넣는다.


완성!

음, 소소한 재료지만 ‘잠봉’, 이 얼마나 생소한 이름인가! 하지만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밤 11시 전에만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내 집 앞 문 앞에 잠봉이 놓여 있는 기적과 같은 일이 쉬이 벌어진다.(광고 아님) 나는 구하기 쉬운 존쿡 델리미트의 ‘팜 프레시 잠봉’을 사용했다. 태어나서 본 햄 중에 가장 넓은 햄이었다. 나 040, 마늘햄밖에 모르는 바보. 100g에 두 장 정도 들어 있어서 욕심부린 1인분이나 살짝 섭섭한 2인분의 잠봉뵈르를 만들 수 있다.


불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재료만 있으면 정말 5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이다. 처음 먹었을 때 이 심심한 맛은 과연 뭘까 싶다가도 묘하게 계속 먹게 되는 맛이다. 김밥천국의 기본 김밥이라는 비유에 걸맞게 그냥 왠지 무난하게 생각나는 그런 맛, 질리지 않는 그런 맛이다. 어딘가의 ‘국민 OOO’라는 칭호를 가지려면 이 정도의 무난함과 수수함이 필요한 걸까.'라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BLT 샌드위치, 오이 샌드위치 등이 있으나 BLT는 너무 흔하고, 오이 샌드위치는 오싫모의 비난을 피하고자 빼봤다. 아무튼, 다분히 야매스럽고 어설픔이 묻어나는 레시피지만 혼자 있어도 맛있는 걸 먹고 싶은걸요! 내 레시피에는 어딘가 어설픈 부분이 많아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맛나게 챱챱 먹었으니 용서해달라는 말과 함께 심심한 사과를 건네고 싶다. 혼자 먹을 때도 맛있게 잘 챙겨 먹자. 또 샌드위치에 살포시 마음도 한 겹 넣어서 본인이 좋아하는 귀여운 사람들에게도 만들어주자. 대충 그럴싸한 샌드위치 레시피는 언젠가 또 업데이트된다면 소개하겠다. 그럼 모두 맛나게 찹찹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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