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험들과 이야기들을 거치며 새하얀 도화지 같은 생각에 여러 가지 색들이 덧입혀진다. 무슨 색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색도 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색들도 마구 칠해진다. 그리곤 너무 많은 색들이 칠해져 색을 구분할 수조차 없어진다. 반면 뚜렷한 색이나 좋아하는 색으로만 도화지를 채우면 쉽게 색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원치 않는 색들을 칠해나간다.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고, 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참는 것들이 그렇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를 누가 만든지도 모르고, 솔직한 감정을 참아야 한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억지로 지켜나간다. 그 모든 것들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것들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게 철든 행동이라고 보고 들었을 뿐이다.
어린아이들은 먹기 싫은 음식을 입에 갖다 대면 싫다고 말한다. 화가 나면 찡그리고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그렇게 온갖 색들로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행동과 감정들을 표현한다.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철든 어른들이 아니라 철없는 아이들이다.
어린 시절 느끼는 대로 표현하다가 꾸중을 들은 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왜 그게 맞는지 몰라도 일단 더 혼나기 싫어서 억지로 반성을 하곤 했다. 좋게 교육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엄연히 다른 적도 있었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받으면서도 사용할 있는 색은 언제나 제한돼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평탄하게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인 룰을 배우는 건 필요하다. 다만 그 기본이 넘어가거나 각자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지며 색이 섞이기 시작한다. 혼나는 게 싫어서 그 룰들에 필요 이상의 압박을 느끼고, 나이가 들며 사회에 맞춰나가는 게 익숙해져서 본래의 생각들은 조금씩 마모되어간다.
질문을 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답변을 내놓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 아이들이다. 쓸데없는 걱정도 없고 불필요한 고민들도 하지 않는다.
남들의 색깔에 맞추는 게 철든 짓이라면 차라리 자신만의 색이 확고한 철없는 아이처럼 살자. 아름답고 예쁜 색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계속 별로라고 생각하는 색들을 억지로 칠하면서 작품을 만들 필요 없다. 복잡한 문제들을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고, 잊고 있던 나의 본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