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by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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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상대방이 약속을 까먹어도 '그래 뭐 까먹을 수도 있지. 카페 가서 노트북이나 해야지.' 혹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 이물질이 나와도 '뭐 실수하셨겠지.'라고 좋게 생각하며 넘겨왔다.


불같이 성질을 내서 서로 얼굴 찡그리기도 싫었고, 그렇게 큰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기에 계속 그렇게 지내왔다. 그랬기에 친구들, 자주 가는 식당 직원, 직장 상사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했다. 서로 편하게 지내는 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좋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가면 불편해진다.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미루고, 서비스를 대충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힘든 일을 조금 더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이 좋지 않게 바뀌기 시작했다.


눈빛만 봐도 '이해해 줄 수 있지?', '이번만 부탁해'처럼 좋게 이해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편하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뭐 하는 짓이지?', '짜증 나네'처럼 안 좋게 생각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가 통하는 사람들은 나와 잘 맞는 좋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안 좋게 생각되는 친구와 싸운 적이 있다.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는 이미 서로의 성격과 생각들을 잘 알고 있어서 내 필기구나 MP3를 편하게 가져가서 써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써도 제자리에 갖다 놓을 걸 알았고, 나 또한 그 친구들의 물건을 편하게 쓰고 매점에서 빵 하나 사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제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쓰는 걸 봤다. 뭐하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그 친구의 답변은 '뭐 휴지 좀 쓰는 거 가지고 그래'였다. 휴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근데 서로 유대감이 없는 상황에서 막 갖다 쓰는 건 아무거였다. 다른 친구들이 내 물건을 편하게 쓰는 모습, 애지간하면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을 봐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그게 모두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좋게 대하다 보면 나를 호구로 보는 사람들, 영화 속 명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좋은 건 만만하게 대해도 되는 구실이 될 뿐이고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만만한 사람이 될 뿐이다.


안 좋게 대한다고 해서 안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사실 약속을 취소하면 화를 내고, 음식에서 뭐가 나오면 따지고, 일이 비정상적으로 많으면 조정을 요구하는 게 맞다. 그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사람일 필요 없다. 호의를 주기보다는 나의 권리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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