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더 낮은 기회비용이 될 때
밤늦게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술보다 더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참는다. 다만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환기가 필요할 때, 앉아만 있는다고 떠오르지 않는 영감이 필요할 때는 일단 발걸음을 옮기고 본다.
누군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 전시회에 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평일에 쌓였던 잡념들을 환기시키기 위해 주말에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각자만의 방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유독 고민이 많이 될 때는 술을 마시고 싶은 순간이다. 분명 일이 안 풀릴 때 나가서 반주를 걸치면 딱 좋은 상황이어도 말이다.
내가 이를 결정하는 기준은 술이 새로운 상황을 접하게 해줄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마시고 싶어서 마시고 끝날 것인지로 갈린다. 주관적이던 객관적이던 어쩔 수 없이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빨리 마쳐야 하는데 술을 마시고 싶은 거라면 참으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술을 마시는 게 내가 하고 있는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 굳이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일상에 피해를 안 끼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 그리고 1차원적인 욕구를 채우고 싶어 다 내팽개치고 술을 마시는 건 확실히 다르다. 행위는 같지만 술을 마실 때의 마음가짐과 뒤따를 책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무책임한 술자리는 옹호하지 않는다.
술을 마셔서 피해보다 이익을 보는 경우들이 있다. 취기에 떠올라 쓴 가사로 잘 된 가수들이 있고, 술을 마시고 그린 작품이 유명해진 화가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야근을 할 때 국밥에 반주를 걸치고 와서 더 집중력이 올라갔을 때도 있고, 글이 더 잘 써질 때도 있었다. 술값과 술 마시는 시간을 소비했지만 결국 마시지 않고 참았을 때 보다 좋은 결과를 낳은 상황들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계속 같은 생각만 맴돌 때, 같은 자리에 오래 앉아있어서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 하필 그때 술이 땡긴다면 한잔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술을 마셨을 때 효율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 술에 취하면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못한 사람들도 있다. 술이 잘 맞는데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가벼운 상황에서라도 해봤으면 한다.
만약 술을 마시고 나서 더 나은 효율이 보인다면, 마시지 않고 앉아서 고민만 하는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술기운에 하는 일이 더 이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