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후반을 지나 어느새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태껏 앞만 보며 달려왔고 내 나이 또래 친구들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아직도 편히 뒤돌아 보곤 한다. 여유롭게 뒤돌아 볼 시간이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뒤돌아 보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뒤돌아 보는 것의 매력을 느낀 것은 몇 년 전 홀로 떠난 여행에서였다. 매일 공부부터 시작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내고 말겠다는 의욕에 너무 앞으로만 향해 달렸었다. 지쳐갈 때쯤 현타가 올 타이밍이 됐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흔히들 떠나는 나 홀로 여행을 처음 간 것이었다. 여행을 가서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더 많은 풍경을 보고 더 많은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정말 부지런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던 와중 한 겨울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고 그 순간 여태 달려왔던 내 일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한숨을 쉬며 억새밭 사이 벤치에 앉으니 자연스레 내가 걸어왔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왠지 모를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더 많은 것을 느끼기 위해 무작정 걸어왔던 길은 너무 아름다웠고 내가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졌다. 열심히 걸어 올라왔던 억새밭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여행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아름다운 곳을 빠르게 지나치려고만 했고, 왜 여기까지 와서 즐기지 못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내 여행은 여유롭고 낭만적인 여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들을 보면서도 억새밭에서 뒤돌아봤던 순간의 전후 사진들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무작정 달렸던 여행에서는 기록하기 위한 사진만 있었고, 여유롭고 낭만적인 여행에서는 아름다운 사진만 있었다.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만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체육대회 때 친구들과 어울렸던 추억이 있었고, 더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치열했던 대학 시절에도 학원 대신 취미생활을 즐겼던 경험이 있었고, 더 많은 연봉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시절에도 주말마다 핫플레이스를 맘껏 돌아다녔던 낭만이 있었을 것이다. 기록과 수치로만 볼 수 있던 것들도 여유롭게 뒤돌아 보면 좋은 감정들로 남았던 추억들이 수없이 많다. 그 느낌들을 회상해보면 치열하게 사느라 지쳐가고 있는 지금, 조금의 낭만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회상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의 성공에 잠시 조급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 때마다 여유롭게 뒤돌아보곤 한다. 내가 잘해왔던 것들,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들을 다시 느껴본다. 앞만 보며 달리다가 놓쳤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내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