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흔히 듣는 '너는 좋은 대학 갈 거야.', '공부 잘하고 있지?'라는 말을 나 또한 정말 귀가 따갑게 들었다. 중학교 때까진 성공적이었고 좋은 고등학교로 진학까지 했다. 그런데 가자마자 좌절했다. 항상 전교 10위권이던 내가 처음으로 세 자리 등수를 봤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가슴속엔 나도 모르게 무거운 철이 짓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서러워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어른들이 기대하는 대로 공부만 바라봐왔는데 처음 실패한 것이니까. 충격에 혼자 버스를 타고 무작정 돌아다녔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넥타이 부대, 카페 오픈 준비를 하는 사장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흔히 보는 모습이었지만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가 기대를 했기에 나는 그게 내가 잘하는 것이고 좋아해야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이후로 공부의 비율을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봤다. 요리전문학교, 패션전문학교를 알아보기도 하고 당장 일을 시작할 생각도 했다. 계속 그렇게 찾아갔다.
이런저런 진로를 찾아보다가도 10년 넘게 공부만 해왔던 턱에 진학이나 다른 분야를 선택하는 긴 호흡의 결정에는 서툴렀다. 대신 짧은 호흡으로 결정을 해나갔다. 공부는 형식적으로 하면서 좋아하는 옷 브랜드도 알아보고 집에서 요리도 하며 지냈다. 그러다 고3 막바지가 돼버렸고 어차피 대학은 가야 할 것 같으니 진학을 하고 맘에 안 들면 관둘 생각으로 남들과 똑같이 입시를 했다. 캠퍼스 라이프의 낭만 또한 느껴보고 싶었기에 여차저차 대학으로 진학했다. 흔한 경영학과였지만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다녔다. 문학, 디자인, 외식업 같은 교양수업들. 그러다 군대에 가서는 패션잡지를 많이 봐서 패션 쪽 창업을 하고 싶었다. 선임과 전역 후에 가방 쇼핑몰도 하고 그렇게 빠르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갔다.
해나갈수록 무거운 철로 짓눌렸던 내 마음도 가벼워져가는 것 같았다. 대학을 갈까 말까 했지만 막상 와보니 재밌는 것도 많았고 보고 듣는 게 많아지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남들 눈에 띌만한 결과물들이 나오지 않았다. 쇼핑몰도 잘 안 됐고 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었다.
어머니에겐 죄송했지만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일로 잘해드리면 된다고 믿는다. 문제는 또 다른 기대가 시작된 것이다. 공부 말고 다른 것도 많이 한 나를 보며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꼭 사업 성공할 거야.', '넌 창의적이 일이랑 잘 어울려.'. 그 말을 들으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온 게 아닌데 왜 또 그 길에서 그런 기대들을 받고 있는 건지 침울했다.
응원의 메시지는 정말 감사하지만 기대는 사양하려고 한다. 또 나를 잃어갈 것이다. 지금 못했다고 자책해도 금세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것이기에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주변의 기대가 나의 인생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다가가는 길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결정이 어렵다면 고3 때의 나처럼 할 수 있는 것부터 가볍게 결정해나가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 나가면 된다. 주변 개의치 말고 내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나의 확신만 가지고 가면 된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뚜렷하게 성공하지 못한 나도 그 경험들 덕에 조금씩 긴 호흡의 결정을 할 수 있게 됐고 공부 말고 다른 방향으로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느리 건 다르 건 신경 쓰지 말자. 누군가의 기대로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침울한 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