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무거우니 들지 말자_#71
대학 시절 팀플을 할 때건 직장에서 프로모션을 할 때건 팀원들과 역할을 나눈다. 그럼 나는 내 역할을 다하려 갖은 고생을 한다. 피피티를 기깔나게 만들기 위해 날밤을 샌 적도 있고, 행사 물품을 체크하느라 주말에도 일을 하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결전의 순간 바로 전에 터진다. 팀플 발표자가 발표 30분 전에 피피티에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수정하자고 한다. 사전에 공유했을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꼭 바로 전에 그런 말을 한다.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아 지금 급하게 수정하면 통일성이 떨어진다."라고 하면 나더러 무책임하다고 한다.
프로모션을 나갈 때, 가까스로 행사 날짜에 맞춰 물품들의 발주를 마치고 당일 빠짐없이 챙겨 행사장으로 향했다. 셋팅을 마치고 팀 채팅방에 뿌듯하게 셋팅 사진을 보냈다. 그러자 상사가 어떤 물품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넣지 않았냐고 한다. 그건 이번 행사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나더러 책임감을 좀 가지라고 한다.
피피티를 잘 만들어 준 일이건, 행사 물품을 빠짐없이 챙겨간 일이건 모두 내 영역의 일을 제대로 했는데도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미리 확인까지 받은 일들을 자신들이 제대로 보지 않아놓고 그렇게 말한다.
발표자는 자신이 직접 보이는 사람이니 발표 바로 전 책임에 대한 부담이 생긴 것이고, 직장 상사는 분석이 아닌 개인의 의견으로 욕심을 낸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 책임을 미루고, 누군가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느라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게 무책임한 것이라면 더 철없이 책임을 미룰 생각이다. 발표자가 피피티를 미리 안 본 거고, 상사가 프로모션 분석을 안한 것이다. 아무리 책임감이 많아도 준비 없는 발표자의 부담과, 분석 없는 상사의 욕심을 책임져 줄 생각은 없다. 나는 책임감이 없는 게 아니라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