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싫은 약속은 안 가도 된다.

철은 무거우니 들지 말자_#89

by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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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을 때 왠지 모르게 가기 싫을 때가 있었다.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었고 그 모임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여차저차 만나고 나면 그럭저럭 재미있는 술자리가 되곤 했지만 더 이상 내 시간과 돈을 써가며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처음 그 모임이 생겼을 때 약속이 잡히면 대부분 나갔었다. 그날 특별히 약속도 없었고 거절할 마땅한 이유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기 싫어서 바쁘다고 하면 어떻게든 날짜를 변경해서 나를 불러내려 했고, 할 일이 있다고 하면 끝나고 올 수 있지 않냐며 내 시간을 멋대로 판단하곤 했다.


언젠가 억지로 시간을 내주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안 간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고 했을 때 솔직하게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 약속을 거절했을 때 죄인 취급을 받았다. 배신자라느니 바쁜 척한다느니 하는 비난과 함께.


모임에 나가지 않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게 자신들을 거부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태껏 그 자리에 나가면서 거부당한 내 생활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가기 싫은 사람을 앉혀놓고 노는 게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처음 약속을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기 싫은 약속 때문에 잃었던 내 시간, 돈, 생활들을 찾기 시작하면 거절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거절의 이유들을 모두 존중해줬던 사람들을 한두 명씩 만나며 더 값진 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날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약속 때문에 골머리 앓지 말자. 이유도 모른 체 그 관계를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다지 끌리지 않는 약속들이 내 소중한 사람과 순간들을 앗아가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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