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무거우니 들지 말자_#93
대학 동기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리고 심지어 차까지 사드렸다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님께 용돈은 커녕 혼자 가까스로 앞가림할 정도로 살고 있다.
몇 년 전 쇼핑몰을 하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 빌린 적이 있었다. 그때 말고도 비슷한 상황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중에 갚을게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사실 그 말은 습관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지금이야 혼자 어떻게든 벌어서 뭘 해보겠다고 하지만 20대 초반 시절의 나는 늘 부모님의 등 뒤에 있었다.
사실 자기 손으로 벌어서 자신이 알아서 해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뜻하지 않게 돈처럼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부모님께 물질이 기준이 되는 효도를 못해드릴 수도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지는 등골브레이커 짓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이다.
등골브레이커로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만 죄송함을 넘어서서 자책, 조바심 같은 감정들이 생겨난다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도움은 이미 받았는데 속으로 '하던 거 포기하고 그냥 남들처럼 회사나 들어갈까?'같은 생각을 한다면 도움 자체가 무색해져 버린다.
자신이 등골브레이커라는 사실이 너무 철없어 보일 테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받아들이자.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이미 등골을 휘게 했으면서 그 일조차 포기하면 자신의 등골도 휠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불안해하지 말자. 남들과 다른 삶을 택했다면 확실하게 그 길을 걸어가자. 죄송함이라는 감정이 무색할 정도로 꿋꿋하게 하는 것이 등골브레이커의 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