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좋아한 노래들(My favorite songs)
꿈과 행복을 가득 안고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마음과 마음이 함께하는 사랑의 보금자리
꿈과 행복을 가득 안고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마음과 마음이 함께하는 사랑의 보금자리
새파란 하늘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잔잔한 호수에는 내 마음의 기쁨이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울리는 젊음의 메아리
꿈과 행복을 가득 안고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마음과 마음이 함께하는 사랑의 보금자리
꿈과 행복을 가득 안고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마음과 마음이 함께하는 사랑의 보금자리
사랑의 보금자리 사랑의 보금자리
-작사:장계현, 작곡:장계현
특, 즈르륵... ...
: 꿈과 행복을 가득안고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 ...
"으아 또 지각이겠다~! 빨리 일어나자!"
AM 7:40(or 50), 이면 무조건 시작되던 「햇빛 쏟아지는 들판」 은 일상이 바로 노래 가사와 동일함으로 노래가 곧 삶이요 요람이었다. 흰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반짝이던 아침 햇살, 부엌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외할머니의 질고도 흰 쌀밥 냄새, 마당 빨래줄에 나란히 앉아 지지배배 지지배배 아침인사하던 제비가족들, 토담 위로 오르던 노란 호박꽃들과 진초록 호박덩쿨들, 세수대야에 얼굴을 씻고 마당에 물을 뿌리면 퍼져오던 흙냄새들, 물을 닦아 털고 마루에 오르면 다가오던 마른 나무 향기들, ... .... 매일매일 반복되던 <완벽한 조화>들, 나는 그 틀안에서 벗어나기 싫었었다. 외할머니 품에서 잠들고, 일어나기 싫었다. 그런 나를 일으키는 곡이 이 노래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등교 시각을 알리는 알림벨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이 되어 지각대장이 될만한 나의 아침을 조용한듯 분주하게 깨웠던 것이다.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는 기분은 참 싱그럽다.
"해가 중천에 떴다! 빨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외할머니 목소리는 지금으로부터 만19년전에 사라졌지만 아직 내 안에서는 영원히 살아 계실 사랑의 언어들, 몸짓들, 눈짓들로 밥투정하는 날이면
"누룽지라도 먹고 가. 응? 얼른 끓여 줄게."
하시며 빈 속으로 등교하려는 나를 앉히시고는 부엌 부뚜막 아래 아궁이에 앉아 불을 지피시어 부드럽고 고소한 누룽지를 만들어 오시던 못잊을 사랑, 그래도 어느 때는
"그래도 나는 니 엄마가 더 좋아. 니 엄마는 내 딸이니까."
"으응? 아이 참, 그러시구나, 흐흐흥"
'고맙습니다, 할머니',라는 말씀을 가슴으로만 드리고 몇 십년을 살아 온 나는
"어이쿠, 더워 죽겠는데 방문 걸어 잠그고 뭐 해! 문 열어! 저기 밖에 가서 놀다 와!"
밭일 하시던 채로 머릿수건도 벗지 않으신채 마루에서 벌컥 방문을 열어제치시고 화 아닌 화를 내시는 외할머니께 방안퉁수가 되버린 나는 다그침을 받았었다. 그런 나를 일으키시는 기도와 갈망이 만든 노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저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선생님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기에 급급하기만 했던 어린 나는 애물단지라고도 불리웠었다.
「홈런출발 김동엽입니다~!」,는 1980년 4월부터 1982년 1월까지 진행된 MBC라디오 아침 방송으로, 흩어진 내 기억 저편에서 당시 매일 아침 8시 근간의 시간을 넘나들며 아리송하게 남아 있는 활력의 나팔수와도 같은 아침바람이었다. 잊고 지내다 짧은 자료지만 찾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햇빛 쏟아지는 들판」송출 되던 시간이 내 기억으로는 7시40분이었으나, 「홈런출발 김동엽입니다」가 7시 50분까지 진행되었고, 외할머니랑 아침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뽀뽀뽀를 보거나 책가방을 들고 등교를 했거나하는 시각으로 융화합된 하나의 때,로 남아 있는 지금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나는 매일 아침 「햇빛 쏟아지는 들판」을 들으며 창호지 바른 문의 코스모스가 갇힌 문고리를 열고 일어나 아침 공기를 마시고 앞산의 떠 오른 해를 지키듯 인사하고 햇빛 쏟아지는 등교길에 들어 서던 것이었다.
이 앨범은 1978년 2월 5일 발매된 것으로 「신세계레코드사」를 제작사로 두고 있다. 정규앨범으로 SIDE A, B면 각각 5곡씩 수록이 되어 있으며, A면 타이틀 곡으로 「햇빛 쏟아지는 들판」이 등장하고 있다. Tommy Roe의「Sheila」,라는 곡이 원곡이라는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야 알게 되었고, 사실 또 하나의 충격으로 상실의 무게가 깊어지며 헤매이다 그래도 나를 늘 행복하게 하던 곡으로의 만족을 찾아 있는 그대로를 정리하기로 하였다. 나는 11살, 만 10살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봄방학에 나온 앨범이다. 1977년 이수만 아저씨의 「한 송이 꿈」을 이루고 초여름 무렵 제대하신 외삼촌은 다시 서울로 재상경하시고 정착하시던 시간들 속에서 태어난 곡이다. 늘 외삼촌께서는 '우리 안나, 삼촌이 서울 보여줄까?', 하시며 두 발을 외삼촌 발등에 올리고 두 귀와 뺨을 잡고 높이 들어 올리시기를 하시며, '서울 보이지?', 하시면 나도 모르게 '예~!', 하던 그 사랑의 길들은 아니었는지 참 궁금하기도한 지금이 되었다.
새로 배정된 반도 궁금하고 새로 맞을 담임선생님도 궁금하고 새친구들고 궁금했는데, 아니 이럴수가, 3학년 2반 그대로 4학년 2반이 되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이후, 6학년까지 3학년 2반 그대로 진급되었고, 우리반 뿐 아니라, 1반부터 4반까지 4개반 모두 1977년에 고정된듯 그대로 졸업까지 이어져 학교생활이 이루어졌었다. 나는 진실로 몹시 궁금했었다. 이래도 되는지, 우리학교만 그러는지, 하지만 나로서는 궁금한 이면에서 안정적인 생활은 분명하였었다. 다만 담임선생님은 교과서처럼 해마다 다른 분이셨고, 친한 친구와 둘이 4년간 부반장을 학기별로 나눠하던 나는 6학년때 모교에 처음 도입된 밴드부에 가입하여 하얀 빵모자와 진청 망또, 흰주름미니스커트, 남녀학생 동일한 하얀 스타킹과 운동화까지 유니폼 셋트로 구입하여 착용하며 초등학교 막을 내렸었다. 1980년 1년간 학교 운동장 모든 행사에서 밴드부 단체 퍼레이드를 하며 슬플 시간이란 찾아 볼 수 없도록 지났다고 할 수도 있었다. 실내에서는 피아노연주 담당이었던 나, 별도로 배운 적이 없었지만 4학년 담임선생님댁에 놀러 갔던 날 자취방에 오똑하니 큰자리 차지하고 있던 선생님 단독소유 피아노, 그 날 그 피아노로「꽃밭에서」를 한 손으로 연주하며 받은 칭찬으로 4학년부터 오르간 연주는 내가 되었고, 늘 떨리는 맘으로 행사 준비중에는 급기야 교내 도서실에 비치된 학교 피아노로 연습하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었다.
2000년 무렵, 인터넷에는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단절된 학교친구들과의 소식을 이어주는 사이트가 생겨났었고 나도 너무 반가워 가입을 하고 친구들을 찾아 보며 감동하였었다. 그 때 내게만 없는 나의 밴드부 유니폼 사진이 궁금하여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고 단체 사진 한 장을 메일로 받았었지만, 역시 예상대로 그 사진에도 나는 없었었다. '잠깐만요, 아직 찍지 마요~!', 하고 라인에서 빠진 채로 촬영이 이어졌던 것으로 아쉬웠지만 나의 호흡들이 함께하는 소중한 사진과 추억들이 아닐 수 없어 저장 해두었는데, 이후 꿈처럼 느닷없듯이 둘째와 만9년 차이로 셋째 늦둥이를 낳고 이사를 수차례 하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중이다. 저장 해 둔 CD, 어딘가에는 있을법 하지만, 다시 재요청하고 싶은 추억과 사진들이다.
'계현이는 잘 있나?'
설마 내 친구 계현이가 장계현아저씨가 된 것은 아니었겠지. 계현이는 아마 1981년이던 중1, 2학년때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원인은 정확하게 듣지 못하였고, 초등학교 졸업 후 남녀공학이었으나, 남녀 각각 다른 반으로 정해져 6년을 매일매일을 함께한 초등친구들이 궁금하던 내 의식에 따라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보고픈 것은 당연하였는데, 남녀칠세부동석을 유지하고 고수하던 내 심중과의 마찰이었을까 싶은 자책마저도 들게하던 슬픈 소식이었다. 계현이는 계현이 어머니께서 나를 더 잘 아시던 먼 친척이기도 하였다.
우울한 날은 더더욱 「햇빛 쏟아지는 들판」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지방대 다니느라 일주일 혹은 격주로 한 번씩 찾아 오는 막내, 더더구나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 연계 인턴으로 취업이 되어 바쁜 날들을 보내는중에 돌아 와서 쉬던 중,
"엄마, 우리 내일 뒷산 같이 가요!"
"응? 그래! ... ... 옥상에 같이 가자!"
결국은 멀리도 가까이도 가지 못하였고, 늘 함께 다니던 주일 예배도 못 가고, 엄마랑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편히 쉬길 바라며 엊그제 하룻밤은 같이 껴안고 잠이 들었었다.
「햇빛 쏟아지는 들판」은 정녕 우리들 마음 안에도 충분히 가득하다. 책 속에도 음악속에도 그림속에도 그 어디에도 찾고자 한다면 늘 있던 것이기도 하다. 진정 두 발을 풀섶에 두고 걷는 기쁨이 완충제가 될테지만.
새봄이 되면 친구들이나 동네 언니오빠 동생들이 마을 빈터에 나와 놀이를 한다. 미나리아제비, 자운영, 뚝새풀이 금잔디처럼 폭신폭신 자욱해지며 기다리기나 한다. 대보름 불놀이로 해충들도 모두 사라진 그 들판에서 뛰어 놀던 기억들에 사뭇 나의 세 딸 아이들도 그렇게 그런 참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맘처럼 쉽지는 않았었다.
-커버이미지 : Pinterest/Ghibli Studio에 있는 핀
-Writer : Evergreen정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