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좋아한 노래들(My Favorite Songs)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넝쿨 장미 그늘 속에도 젊음이 넘쳐 흐리네
산도 좋고 물도 좋아라 떠나는 여행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사랑이 오고가네요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갈숲 사이 바람이 불어 한 낮의 더위를 씻고
밤이 오면 모닥불가에 우리의 꿈이 익어요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여름의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 작사 : 이정선, 작곡 : 이정선
"야~ 방학이다~!"
하려하니 벌써 2학기 개학 또는 개강이다.
「시대유감:서태지와 아이들 曲」적的 상황이 본의 아니게 연출 혹은 자행되는 현실들은 아니었는지 주변을 살펴보게 되는 시점들로, 한 편의 글을 쓰는 데도 많은 조율이 필요하였다. '개학'은 이 곡 「여름」이 발표 된 나의 초등4학년이 주체이며, '개강'은 나와 남편의 우리 셋째 막내아이 여대생 2학년 2학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47년의 긴 세월의 '세대 공감적 의미'를 하나로 모으기에는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개학과 개강은 다른 학습의 장소들을 공통으로 하고 있는 비슷한 말이다. 세월호 사건들을 나는 이러한 시대역류 현상적인 상황에서 도래한 연유도 있지않았을까하며 매우 당황하고 슬퍼하기도 하였었다.
「내가 좋아한 노래들-My favorite songs」, 을 브런치스토리 작가 자격으로 첫번째 발행하던 2024년 10월 16일 서문으로 열었던 프롤로그에 기록하였던 대로, 오케스트라 단원을 선망하거나 진실로 1980년 초등6학년에 밴드부 활동을 했던 자아로서의 회귀를 느끼며 '치밀한 계획성의 장점'들을 되새겨 보게 된다.
1978년은 내가 4학년이었으며, 6학년때 교내 첫 도입된 밴드부 부원으로 다시 만난 밴드부 담임선생님께서 4학년 담임선생님이셨었다. 긴생머리에 늘씬하신 몸매, 늘 하얀 모자와 옷을 즐겨 입으신 기억들, 피아니스트 정명훈 아저씨의 친어머니처럼 피아노를 손수 소지하시고 이사를 다니셨던 음악선생님이시면서도 호루라기를 부시는 모습에서 늘 체육선생님이시기도 하셨던 예쁘시고 건강하신 여선생님, 해마다 바뀌는 선생님들께 나는 넋이 나간듯이 살아오며 선생님 자취 방에 놀러 다니는 일들이 연중행사처럼 되고 말았었다. 그러나 이는 아무나 행하여서는 아니되는 일들이기도 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다시 생각이 나건데 나는 부반장을 4년간 꼬박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하여 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作」의 일그러진 반대표가 아니거늘 살아오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변모 되듯하는 듯한 길들에 들어섰음을 자각하면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음모론격 판단들에 뒤쳐지면 안되는 것으로 필시 '이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 것이다',는 무분별한 소설 독자들의 판단에 따른 현상이 내 현실이 될 수도 있기에 결코 아닌것들은 항변이라도 하듯 아니라고 두 손 들고, 울며불며라도, 나를, 내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햇빛 쏟아지는 들판」을 들으며 등교 하던 날들이 만든 해변가요제였을까?',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나는 순전하고 어린 초등학생이었고, 담임선생님 말씀이 하느님 말씀이라 여겨 살았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랑의 시간들이었다 하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4학년 봄, 어느 일요일에 친구와 함께 선생님 댁에 놀러 갔었다. 아니 계시는듯 하시다 문을 열어 주시어 들어 가보게 된 작고 아담한, 피아노가 3할 같기만 하던 선생님 자취방, 선생님은 하얀 스카프를 쓰시고는 달걀말이를 해 오시며 밥상까지 차려 주셨었다. 그 기다리는 시간에 듣고 있으라며 틀어주신 카셋트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햇살 바른 커다란 창틀의 창호지 따라 들어온 빛의 그림자들처럼 함께 춤을 추었고, 보고 있으라며 주신 「세계 명화」들 속 천지창조를 보다 화들짝 놀라다 차려오신 둥근 밥상에 앉아 달걀말이를 셋이서 그저 감동으로 어찌 먹었는지 모르게 먹었었다. 피아노를 난생처음 만져보게 하시고 건반을 두드려 보게 하신 선생님, 하지만 학교 미술시간들 속에서는 아무리 잘 그려도 화선지속 나의 붓글씨는 계속 물리시던 선생님, 나는 급기야 화가 날 지경이기도 하였었다. 그러한 날들이 지나며 맞은 여름, 그리고 여름방학, 이미 멈추어진 그 시간들 속에서 내 화선지 위 먹 냄새가 진동하듯 한다.
「징검다리」는, 건널 수 없는 물길을 건너게 하는 간이 다리다. 단번에 건너게 하는 고속도로 다리는 아니지만 그 길을 내기까지의 기다림과 공존을 상징하듯, 혹은 띄엄띄엄 띄어쓰기처럼, 갓 솟아나는 영구치처럼 반드시 필요함으로 거기 있는 존재이다. 물살에 씻기어 보들보들하여진 반석 같은 그 작은 바윗돌 모양의 디딤돌들, 디딤돌이되 하나로는 불충해 보이기도 하는 조화로움이 저절로 형성되는 풍경과 마음의 안정들, 마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2.17. ~ 1827.3.26.)」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이루는 3번 교향곡 「영웅」처럼 거기 반드시 있어야함으로 있는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들 사랑의 기억들도 당연하다. 나는, 우리는 어떠 하였던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기를 간구하며 지나온 날들이 아니었던가! 그 길, 우정의 길들이 결혼과 기성세대에 편입 되었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허물어지고 배반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일은 죽음과 같은 지옥인 것이다. 그러하지 아니한가, 친구여, 사랑하던 친구여,라고 나는 길지만 매우 간결한 엽서나 편지를 쓰고 싶은 나날들인 요즘의 현실들. 「우정요청서」라도 나에게 촉구하여 쓰고 보내고 싶던 것이다.
나는 홀로 도시인都市人이 되어 살며 「차이코프스 백조의 호수」도, 「세계의 명화名畵」도 내 방에 들여 놓고 살게 되었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담임선생님처럼 청춘을, 그리고 나의 결혼생활을 잇게 되었다고 볼수도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잘 알지 못하는 남편과 남편의 지인들과 나의 갈등들이 엮은 시간이 불행들의 씨앗이기도 하였음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었다.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될 것이라는 각오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입학 직후부터 들어 선 것으로 그 길이 그 길이 되어지던 것이었다고 볼수 있는 것이다.
「징검다리」와 「여름」이라는 곡이 태어난, 「제1회 해변가요제」는 TBC 동양방송이 1978년 7월 22일 서해안 연포해수욕장에서 개최한 것으로 이듬해인 1979년에는 「젊은이의 가요제」 로 변경된 명칭을 사용하며 해변에서의 가요제 진행의 문제점들을 보완한 경우라고 한다.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 휘버스(Fevers)의 「그대로 그렇게」, 블랙테트라(Black Tetra)의 「구름과 나」, 런어웨이(Run Way) 배철수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조인숙의 「요즈음」들은 1978년 동시대의 나와 함께한 대학의 울림들이었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제 이미 그 어렵고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을 지나 한 가정을 만들고 32년이상을 지키며 살아왔으나 침략은 시도때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기에 지켜온 길들에서 숱하게 자결을 결심하기도 하고 억울해하고 살았던 나, 세상은 이런 나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즐기는 것이니 아,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진실로 누구없소? 그대는 어디에 있는 것이오.
사탄들(내 집 내 권한에 들어와 얼굴하나 붉힘없이 내게 나가라는 독사들!)이 다시 진을 쳤고 나를 시험하고 나를 유린하는 것이오.
「태양이 아직 빛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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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미지 : 동양방송 주최 제1회 해변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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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Evergreen정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