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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장훈 Jan 12. 2024

샤넬백 사려는 아내를 말리는 방법

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7화

아내와 대학교 CC로 연애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녀의 친구들이 한껏 치장하며 예쁨을 뽐내고 다닐 때, 여자친구는 소매가 닳은 후드점퍼를 입고 다니며 깨발랄함을 뿜어댔다. 그녀의 친구들이 남자친구와 아웃백에서 스테이크를 썰 때, 여자친구는 나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쑥떡을 그리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속단했다. 이 친구네 집도 우리 집과 비슷한 경제 수준 일거라고. 나처럼 어렵게 자라서 옷도, 입맛도 소박하다고.


연애 100일 기념으로 여자친구와 에버랜드를 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처음 에버랜드에 갔었다. 당시에는 용돈이 부족하여 아마존 익스프레스 하나 타고 남은 시간은 오락실에서 보낸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과외하며 생활비를 벌었기에 자유이용권 정도는 살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오빠의 능력치를 발산하며 자유이용권 2장을 구매하려는데 여자친구가 서둘러 지갑에서 뭔가를 꺼냈다.


"오빠, 우리 이걸로 자유이용권 사자."


신세계 상품권이었다.


"에버랜드 간다고 하니깐 엄마가 주셨어."


"어? 어....."


내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여자친구는 신속히 상품권으로 결제하고는 내 손을 잡고 들어가 방방 뛰었다.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여자친구 어머니께 가슴 깊이 감사해하며 원 없이 신나게 놀았다. 덕분에 6학년 때의 쓰라렸던 추억을 훌훌 털어냈다.


여자친구는 가끔 이런 식으로 나의 속단을 의심케 하는 행동을 했다.


어느 날은 주말에 집에 가서 산삼을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산삼?'

'아버지가 심마니이신가?'

'홍삼을 산삼으로 아는 거 아냐?'


어울리지 않게 바이올린도 연주할 줄 알았다. 통기타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서는 입문용 기타를 사야겠다고 하더니 꽤나 비싼 모델을 사 오질 않나. 그 기타는 동아리 공연 때 여러 실력자들이 빌려 쓸 만큼 괜찮은 모델이었다.


그녀도 나처럼 쑥 향이 익숙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샤넬 향이 익숙한 여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마침내 그녀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날, 어머니께서 타고 오신 고급차를 보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녀는 부잣집 딸이구나.


나는 여자친구의 수수한 옷차림에 속았다.

나는 여자친구 부모님의 고급차와 고급시계를 보고 작아졌다.

사람은 정말이지 겉으로 드러나는 거에 참 약하다.




부자아빠와 둘이서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벤틀리 벤테이가'가 지나갔다.


"우와, 멋지다."


내가 한 말 아니다. 부자아빠의 대사다.


"훈이는 어떤 차 타고 싶어?"

 

"생각을 안 해 봤네요."


"나는 차가 없을 때는 소나타를 꿈꿨고, 소나타를 탈 때는 그랜저를 꿈꿨고, 그랜저를 탈 때는 벤츠를 꿈꿨어."


'의외인데?..'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고,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야."


'오잉?'


"그런 욕구는 더 열심히 살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해."


'그럼, 나도 BMW를..'


"하지만, 훈이 같은 젊은이들이 외제차 타고, 명품 사기 시작하면 부자 되기는 어렵지."


'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50대 이후의 미래는 낙관적일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고, 50대 이후도 지금처럼 괜찮을 거라 낙관하는 거지."


'내 이야기인데..?'


"사업에 실패하는 이유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일까? 그렇지 않아."


'그럼,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이, 건강이, 가족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아."


"젊었을 때의 건강, 사업의 번창은 결코 영원하지 않지."


"나 역시, 40대 때 사업이 아주 잘될 때가 있었어."


"그때 밀물처럼 들어온 돈으로 땅을 사고 주식을 샀지."


"그 이후,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그간 모은 자산 덕분에 여러 해 동안의 적자에도 버틸 수 있었어."


"만약, 사업이 잘될 때 폼 잡고 명품 걸치고 다녔다면 진작 쫄딱 망했을 거야."


"젊을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는 자산에 더 집중해야 해."


"그래야만 아플 때, 수입이 끊겼을 때 비참해지지 않아.“



@ pixabay



나와 아내는 결혼할 때, 예물을 하지 않았다. 예물 살 돈으로 투자를 하자고 제안했고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맞벌이인 우리는 결혼 후에도 통장을 따로 관리하고 서로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관해서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돈을 더 많이 모으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결코 아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은 최대한의 기지를 발휘하여 아내를 설득하기는 한다.


한 번은 아내가 샤넬백을 살까 고민했다.


"오빠, 이 백 어때?, 예쁘지?, 이거 하나 살까?"


"오, 예쁘네. 역시 안목이 남달라.(로고가 샤넬이다. 따쒸)"


"히히, 이거 얼만 줄 알아?"


"한, 2백만 원 하나?"


"5백만 원도 넘어."


"와우, 자기 정도 되면 샤넬백은 매 줘야지.(그걸 산다고?)"


"히히."


"근데, 샤넬백을 매면 사람들이 부자라고 생각하나?"


"음..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


"그럼, 샤넬백 맨 사람을 보면서 '무리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히히, 뭐 그럴 수도."


"샤넬보다 더 비싼 브랜드도 있어?"


"모델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에르메스가 더 비싸지."


"에르메스를 매면 사람들이 부자라고 생각하나?"


"샤넬보다는 확실히 그런 거 같아. 에르메스는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렵거든."


"그건, 무슨 말이야?"


"에르메스의 어떤 백들은 이전 구매 이력이 쌓여야 살 수가 있어. 그만큼 구매자를 선별한다는 거지."


"아, 그럼 이렇게 하자. 샤넬백 살 돈으로 투자를 해서 불리는 거야. 그리고 에르메스를 사는 거지."


"오..그럴까?"


'이게 통하네?'


"그래, 자기는 에르메스가 어울리는 여자야."



소비 욕구를 더 큰 소비 욕구로 잠재운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기다 보면 아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루는 재벌 3세 여성의 패션이 화제 된 적이 있었다. 기사를 보던 아내가 반가운 이야기를 한다.


"재벌 3세가 들고 다니는 명품을 나 같은 월급쟁이가 들고 다닌다는 게 말이 돼?"


"진짜, 그러네. 와... 자기 정말 인사이트가 대단해!"


'고마워요, 재벌 3세'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아내의 조부상이 있었다. 부자아빠께서 도움을 청하셔서 부의금 받는 책상에 3일 동안 앉아 있었다. 아버님께서 사업하시다 보니 문상객 중 사업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중 한 분이 들어오는데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초면에도 풍기는 아우라만으로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아버님 회사 직원분께서 귀띔해 주시는데 연매출 3,000억 아동복 브랜드 창업주시란다. 순자산이 수천억. 순간, 저런 분은 어떤 구두를 신을지 궁금했다. 신발장에 가 구두를 확인했다. 'MI~OO'. 십만 원 내외면 살 수 있는 브랜드다. 아우라는 명품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 구두가 '페라가모'였다면 그것대로 간지 나고 멋있었으리라.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부자는 'MI~OO'을 신어도 부티가 나고 빈자는 페라가모를 신어도 빈티가 나는 법이다.


부자가 되려면 폼 잡지 말아야 한다.






처가댁에 갔다가 같이 근무했던 직장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면, 아버님은 나에게 꼭 밥값을 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야 부자가 된다며.


부자 되려면 돈 새는 걸 막으라 하지 않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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