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장훈 Jan 06. 2024

부자아빠의 38년 된 다리미

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6화

여자친구 아버지께서는 첫 만남 때 골프를 배우라 하셨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2학기 교양 수업으로 골프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교사가 된 이후에는 아버님께서 주신 7번 아이언 하나 들고 다니며 실내골프장에서 레슨을 받았다. 여자친구 아버지와 둘이 있는 시간에는 종종 골프를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하루는 나에게 어드레스 자세를 취해 보라 하신 후 물으셨다.


"훈이야, 자세가 불편해?"


"아뇨, 딱히 불편하진 않은데요."


"그럼, 잘못된 거야. 자세가 불편해야 제대로 선 거야."


"아..!"


"부자 되는 길도 똑같아. 불편하게 살아야 부자가 될 수 있어."


"네??"


골프 기본자세 수업은 3분도 채 되지 않아 '부자학 개론'으로 수강명이 변경됐다.


"훈이가 지금 불편하게 살고 있으면 부자 되는 길을 가는 거라고!"


"불편하게 산다는 게 어떤 의미죠?"


"편하게 사는 길과 반대로 가는 거지."


"그럼, 편하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죠?"


"버리는 거 좋아하고,

사는 거 좋아하고,

외식 좋아하고,

집에서는 늘어지게 TV 보고,

직장에서는 적당히 일하고,

직장 끝나면 동료들이랑 맥주 마시고 치킨 먹으면서 회사 욕하고,

휴가철마다 해외여행 다니는 거지.


이런 삶은 편해."


'뭐, 끄덕끄덕'


"반면에


아껴 쓰고,

고장 나면 고쳐 쓰고,

집에서 밥 해 먹고,

집에서는 신문 읽고,

내가 사장이라는 마인드로 직장에서 코피 터지게 일하느라 휴가도 잊고 사는 삶.


이런 삶은 정말 불편해."


'불편하지.'


"부자가 되려면 지갑에서 돈이 새는 걸 막아야 하고, 지갑에 돈이 더 들어오도록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거야."


'음.. 끄덕끄덕'


나는 30년 넘게 회사 생활하면서
휴가를 단 한 번도 안 갔어.



'뭐, 뭐라고요?'


"직원일 때도, 사장인 지금도. 진짜 미친놈이지."


'사람이길 포기했다는 게 이런 의미인 건가?'



부자학 개론 수업을 마치시고 아버님께서는 다소 민망해하며 다리미질을 잘하는지 물으셨다. 어머니께서 병원 치료로 집을 비우신 동안 셔츠를 직접 다리신 모양이다. 평생 어머니께서 다리미질을 해주셨으니 영 신통치 않았으리라.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으로 각이 잡혀 있었기에 자취방에서 자주 다리미질을 했다. 이번 기회에 군대에서 배운 칼 다림질로 아버님께 점수 좀 따야지 싶었다. 5개의 셔츠를 주시고는 다리미를 가져오시는데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부자아빠의 다리미. 뒤에 흐릿한 건 변압기.


'와....'


추억의 11자 코드. 어린 시절 도란스라고 불렀던 변압기. 다리미 선의 실들은 터질 대로 터졌는지 절연 테이프로 고이 둘러져 있었다. 변압기는 노화로 늘어져 버린 살갗을 붙들어 매려는 듯 노란 테이프를 붕대 삼아 칭칭 감겨있었다. 변압기에 11자 코드를 꼽고 콘센트에 연결하면 불꽃이 튀면서 전신 X-ray를 찍어줄 듯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행히도 다리미는 아주 잘 작동했고 나도 멀쩡했다. 지금도 처가댁에 가면 다리미와 변압기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모님께 여쭤보니 결혼하실 때 선물로 받으셨다고 한다. 38년이 넘었다. 여전히 잘 작동한다. 부자아빠는 기능에 문제없는 물건을 버리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고장 나면 고쳐 쓴다. 너덜너덜해지면 접착제로 붙여 사용한다.


나와 친구 뻘인 다리미를 보며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불편한 삶의 일부분을 단박에 이해했다. 이 정도로 물건을 아껴 써야 하는 거구나.


청평 별장에서 부자아빠와 작업한 날의 일이다. 노동을 모두 마친 후 연장을 물로 깨끗이 씻어 정해진 자리에 두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도 시골에서 살아봤지만 일이 끝나면 마당 어딘가에 연장을 던져 놓고 집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자주 잃어버렸고 흙을 씻지 않으니 금방 낡았다. 결국 새로운 연장을 사는데 돈이 샜다.


별장 거실 벽에는 전등 스위치들이 모여있었는데 각 스위치마다 어느 전등인지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불필요하게 다른 전등이 켰다 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단 1와트의 전기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엿보였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부자아빠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주말이라 부자아빠 혼자 계셨다. 에어컨을 꺼둔 채 선풍기를 켜놓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아버님, 안 더우세요?"


"불한증막 사우나하고 좋지 뭐."


'진짜 사람이길 포기하셨...'




아버님께서는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에서 사원부터 시작해 사장이 되신 분이다. 사원 때부터 이 회사는 내가 먹여 살린다는 마음으로 일하셨다.


한 번은 중요한 계약 건을 따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 어느 대기업 부장의 집을 찾아갔다. 머리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 아버님을 그 부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계약 건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 시간이 흘러 부장은 임원이 되었다. 축하 전화를 드린 아버님께 임원은 말했다. 눈이 쏟아지던 그 겨울날, 당신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이 사람도 직장인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지? 그날로 일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고. 당신 덕분에 임원이 됐노라고.  


지상 최고 부자, 이역만리 미국에 있는 일론 머스크 형님도 말씀하셨다. 성공하고 싶으면 주 100시간 일하라고. 지독히도 불편한 삶이다. 불편하게 살아야 부자가 된다.







나는 어떤 불편함을 감수했을까? 우선, 취업 후 한 동안 차를 사지 않았다. 교사 9년 차 되던 해, 8년 된 중고차 투싼을 1,200만 원 주고 샀다. 차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불편함을 더 감내할 걸 하고 후회가 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나는 1억과 중고차 투싼을 맞바꾼 거였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도 오래도록 차를 사지 않는 나를 보며 부자아빠는 아주 대견해하셨다.


하루는 나에게 물으셨다.


"친구들 외제차 많이 타고 다니나?"


"네, 요즘 젊은 세대 외제차 워낙 많이 타잖아요."


"외제차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랑은 너무 어울리지 마."


'아니, 아버님도 외제차를 타고 다니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