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9화
꼬꼬마 시절, 아빠는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내 손에 쥐어주셨다. 꼬꼬마가 갖고 싶어 봐야 헬륨 가스 채워진 풍선이나 초코파이가 전부였을 테니.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친구 집에 가서 레고(Lego)를 처음 갖고 놀아 본 나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레고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 손을 잡고 장난감 가게에 갔다. 가격표를 확인한 엄마는 아들 손에 레고를 쥐어주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훈이가 레고를 갖고 싶어 해서 장난감 가게에 갔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돌아와야만 했어. 아빠가 말했겠지. 다음 달 되면 사줄 수 있을 거야. 다음 달은 왔지만 레고는 내 품으로 오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의 가격은 더 비싸졌다. 자전거가 필요했고, 컴퓨터가 갖고 싶었다. 아빠는 여전히 다음 달을 기약했다. 한참 뒤에야 자전거가, 컴퓨터가 내게 오긴 했다. 좀 여유 있는 친척네 집에서 얻어온 것들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노트북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나에게 전화해 다음 학기에 사주겠다 약속했다. 머리 좀 큰 나는 더 이상 아빠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과외한 돈으로 중고 노트북을 샀다. 교사가 된 후, 아빠는 나에게 1년 뒤 차를 사주겠다 말씀하셨다. 그냥 흘려 들었다.
아들이 원하는 것들을 쥐어주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은 오죽했겠느냐마는 그 마음과는 별개로 아빠의 말은 허언이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었다. 쉽게 약속했고, 쉽게 잊으셨다.
나의 가난한 아빠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알아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뒷수습은 아내의, 자식의 몫이다. 아버지는 60대 중반에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평생 건강할 줄 알았는지 보험 하나 가입해 둔 것이 없으셨다. 모아 둔 목돈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께서 오래전 가입해 둔 암 보험 덕분에 아버지는 수술받으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런 노후대책도 없으시다. 국민연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돈도 자식들이 마련해 줬다. 그래도 아버지는 낙천적이시다. 허언일지언정 큰소리치며 내지르는 시원함이 있다.
결혼 후 고모집에 인사드리러 갔다. 고모는 개그우먼 안영미 급의 똘기와 웃음으로 무장하신 분이다. 다 같이 한참을 깔깔대다가 갑자기 소녀처럼 다소곳해지더니 아내에게 공손히 물으셨다.
"근데, 왜 우리 훈이랑 결혼하셨어요?"
"아... 오빠는 허세가 없어요."
나에게는 아무도 왜 아내와 결혼했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아내에게 잘하라고 말할 뿐이다. 반면, 아내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히 나의 가족과, 내 친구들에게. 아내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오빠 좋은 사람이잖아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어느 날은 나도 정말 궁금했다. 이 여자는 왜 나랑 결혼했을까.
"자기는 왜 나랑 결혼했어?"
"사랑하니깐."
"결혼이 사랑만으로 할 순 없는 거잖아?"
"음, 나는 오빠의 말이 좋았어."
"뭔 말?"
"오빠의 말은 긍정적이고 유쾌하면서도 가볍지 않았거든."
우리가 다니던 대학교는 시골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대학생다운 데이트 좀 하려면 버스 타고 40분은 나가야 했다.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의 배차간격은 30분 정도였다. 재수 없으면 '남은 시간 28분'이라는 버스정류장 안내판을 보며 28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나랑 다니면 버스가 금방 온다는 말도 안 되는 호언을 했다. 그리고 운 좋게 실제로 버스가 금방 오면 "봤지?" 하면서 이 일을 여자친구가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도록 강조했다. 버스가 곧 올 거라 호언했는데 남은 시간이 20분도 넘는 걸 확인하면 최대한 딴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아내를 웃겼다. 그 시간이 최대한 짧게 느껴지도록.
너무나 사소하고 귀여운 사례이긴 하나 나는 실제로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아버지처럼 시원하게 내지르는 맛도 있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애하면서 아내에게 참 많은 약속을 했고, 계획을 이야기하고, 포부를 펼쳤다. 내가 한 그 말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한 땀, 한 땀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아내는 말했다. 포부는 넘치는데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한 한 땀, 한 땀이 없었다면 그저 허세 가득한 실속 없는 남자친구로 전락해 이별을 통보받았을 거다. 다행히도 나는 말이 가벼워서는 안 됨을 아버지로부터 반면교사로 배웠나 보다.
아내의 부자아빠도 늘 호언했다. 호언을 넘어서서 현실을 왜곡하는 언어를 구사했다.
그랜저를 타고 가는데 고급 외제차가 지나가면
"어 저기, 내 차가 지나가네?"
더 좋은 동네를 지나가면서는
"우리 집이 여기 있네."
라는 식으로 부자아빠는 남의 차, 남의 집을 보며 곧 우리 차, 우리 집이 될 거라고 딸에게 장담했다. 시간이 흘러 부자아빠는 그 차를 타고, 그 집에서 출퇴근하게 되었다. 부자아빠의 딸은 아빠의 말이 하나하나 현실이 되는 마법을 보고 자랐다. 부자아빠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유쾌한 호언이 가볍지는 않았던 것. 부자아빠는 늘 치열하게 이루어내셨다.
"우리 아빠가 지키지 않은 약속이 딱 하나 있어."
"그게 뭐야?"
"뱃살 뺀다는 약속."
부자아빠의 배는 섭섭지 않게 팽창해 있다. 달달한 탄수화물을 못 참는 편이시다. 뱃살은 부자아빠도 어려운가 보다. 나 역시 결혼 전 아내에게 평생 배 나온 아저씨는 되지 않겠다고 호언했는데 허언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달달한 탄수화물을 보면 폭주하기 때문이다. 40대 이후에도 뱃살 없는 아저씨들께 특별한 존경을 표한다.
처가댁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할 때의 일이다.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치신 장인어른께서 호언하셨다.
"아우 배불러. 저녁은 생략. 내가 이 시간 이후로 뭘 더 먹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100만 원씩 준다."
몇 시간이 흘렀다. 아버님은 배가 출출하셨는지 식탁에 놓여있는 쌀강정을 별생각 없이 드셨고 그 모습을 아내가 포착했다.
"어, 아빠! 지금 뭐 먹었어. 오예!!!!!!!"
"허허허"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아빠가 100만 원 주시면 뭐 하지?"
"100만 원을 왜 주셔?"
"아까, 뭐 더 먹으면 100만 원씩 나눠주신다고 했잖아."
"에이, 그냥 농담이시겠지."
"아닐걸? 히히"
다음 만남에서 부자아빠는 실제로 나와 아내에게 100만 원씩 주셨다. 쌀강정 먹는 아빠를 발견한 아내의 환호성은 100만 원을 획득한 자의 포효였던 것이다. 부자아빠는 쉽게 말을 꺼냈지만 쉽게 잊지 않으셨다.
부자의 언어는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다.
부자아빠와 만난 지는 13년, 가족이 된 지는 6년이 지났다. 많은 시간 함께하면서 나는 부자아빠가 단 한 번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75세까지 회사로 출근할 거야."
"75세에는 계획한 대로 은퇴하고 상속할 거야."
"은퇴한 이후에도 골프 치고 살 거기 때문에 한 달 생활비가 얼마 정도 필요할 거고 그건 이렇게 충당될 거야."
"죽어서는 OO에 있는 산에 수목장을 해줘."
60대 후반인 부자아빠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의 계획이 다 있으시다. 하나하나 준비해 가고 계신다. 자신의 삶을 운에 맡기거나, 신에게 기도하고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본인의 계획과 노력으로 극복하려 애쓰신다.
부자아빠는 나에게도 인생계획서를 쓰라고 말씀하신다. 결혼하기 전, 부자아빠에게 3번이나 인생계획서를 써서 제출했다. 부자아빠는 예비 사위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무슨 목표와 계획을 갖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궁금해하셨다. 3번째 인생계획서는 거의 논문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