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하루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한창 거울 보며 출근 준비를 하던 8시에 한 아이가 입 안 염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들렀다가 온다는 학부모의 메시지를 받는다. 어제부터 혓바닥에 피가 나서 밥도 못 먹겠다던 아이다. 어제 혀를 직접 봤던 기억이 나서 '혀가 아프면 얼마나 힘든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병지각 기록은 된다고, 잘 치료받고 오도록 답장을 한다. 그렇게 학교의 일은 출근 전부터 시작된다. 8:30쯤 교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기다리던 2명도 따라 들어온다. 교실에 들어서자 더운 열기가 가득하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부터 켠다. 오늘은 31℃까지 올라간다는 예보가 있었다. ‘6월부터 이렇게 덥네.’
오늘 목요일이라 2교시에는 도서실에 가서 독서를 한다. 이제는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책 자리표 나무막대를 놓고 책을 빼서 읽는 것들이 모두 익숙하다. 매일 아침마다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때는 언제인가요?’를 적은 걸 1장씩 발표하면서 ‘나는 누구일까요?’를 하는데 어제 쪽지의 주인공인 아이가 이렇게 적었다. ‘제가 자랑스러웠던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아침 시간에 책을 읽는 친구들을 보면서 책이 재미있어진 것입니다. 제가 책을 많이 읽는 게 자랑스러운 이유는 어렸을 땐 책을 집에서 거의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책을 집에서 3권 정도 읽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아침 독서를 3월 시작부터 했으니 오늘까지 약 3달이 지났다. 그리고 한 아이의 이런 고백?을 들으니 ‘내가 한 일들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구나.’ 하는 작은 뿌듯함이 올라왔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나는 한 달 전 스승의 날 받았던 아이들의 편지를 다시 읽으며 답장을 쓴다. 난 아직 너희들의 스승이 아니니까 이전 선생님들께 쓰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기어코 내게 쓴 아이가 6명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가져와서, 36색 플러스펜 중 그 아이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색으로 편지를 쓴다. 그 아이에 대한 기억과 감사를 적는다. 교실로 와서 나눠주니 답장을 받은 아이들은 신이 났다.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것, 이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 나는 편지를 좋아해서 해외여행을 가서도 그 나라의 편지지를 사 오곤 했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어져서 편지지는 쌓여만 가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편지를 쓰니 새삼 차분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머릿속에서 모든 걸 써 달라며 기억회로가 마구마구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거의 가고 5, 6교시 미술 시간이었다. 이번 미술 시간은 그림문자 디자인하기였다. 보건실, 강당, 급식실 등 여러 특별실 안내판 글씨에 의미 있는 그림을 더해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건 수행평가기도 하니까 더 열심히 해요. 오늘은 스케치하고 테두리만 그리고 다음 주에 색칠할 거예요.” 미술 시간에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준다. 그러자 모둠별로 모여 앉은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다가 속닥거리고 웃기 바쁘다. 8절 도화지에 보통 3~4글자를 쓰기에 “글씨가 작아지면 안 돼요. 글씨와 그림이 모두 통통하게끔, 도화지가 꽉 차게끔 크게 그려요.”라고 했다. “음, 급식실 소시지 그림을 더 통통하게 그리고, 어 보건실, 이거 청진기예요?”“아 네. 그런데 저 청진기가 어떻게 생긴 지 잘 모르겠어요.”“아 모르는 걸 어떻게 그렸어요? (컴퓨터로 청진기를 검색해서 보여주며) 자 이게 청진기예요.”“아 이렇게 생긴 거예요?”라며 아이는 다시 들어간다. 미술 시간이 편하려면 편한 시간이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각각 조언과 검사를 여러 번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이 한 주에 40분 2시간인데, 이 시간 안에 완성하다 보면 더 좋은 구상을 할 수 없고, 마지막에는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2주에 걸쳐 한 작품 만들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매주 1 작품씩보다는 두 주에 1 작품 만들기. 그러면 수정, 보완도 충분히 가능하고, 다 마치고 났을 때 아이들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그렇게 모든 게 편안하게 마쳐질 즈음 한 아이가 왔다.
“선생님, **가 저 때렸어요.”“어, 뭐라고? **도 나와보세요.”
“무슨 일인지 좀 얘기해 보세요.” “저 그림 그리고 있는데 **가 와서 제 귀에 대고 뭐라고 소리 질렀어요. 그래서 ‘뭐야?’라며 뒤돌아보는데 제 팔꿈치가 쟤 코를 쳤어요. 그러니까 걔가 제 여기(관자놀이 쪽)를 주먹으로 때렸어요.” 그러고 보니까 이렇게 말한 아이는 관자놀이 쪽을 만지고 있고, 다른 아이는 조금 퍼레진 코뼈를 붙잡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이렇게 다툼으로 뺨을 때리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게 정말 그렇게 해맑게 웃던 아이들이 맞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일단 보건실에 다녀오세요.” 껌딱지처럼 친하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겐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난다. 정말 호수처럼 잔잔한 아이도 있지만 그런 아이는 23명 중 7명에 불과하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용암이 끓고 있는 화산이랄까? 뛰는 것, 떠드는 것은 계속 지도하지만 고요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 안전교육을 수도 없이 해도 아이들 간의 다툼은 툭하면 일어나고 만다.
“미술 먼저 끝냈다고 다른 모둠까지 가서 그렇게 친구 귀에 대고 말하면 친구가 놀라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계속 말했는데 고쳐지지 않네요. 그리고 친구가 일부러 때린 거 아닌데 주먹질하는 게 어딨어요?”“일부러는 아니었지만 친구 코 다치게 했으니 사과해야겠어요.” 그렇게 둘은 서로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시키지도 않은 포옹을 한다. 내일 다시 놀 친구니까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서로 다친 거라 부모님께 연락드릴거예요.”“정말 엄마한테 전화하실 거예요?” 아이가 놀란다.
아이들이 집에 가고 두 아이 어머니께 메신저로 일의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고 학교에서 더 지도를 잘하겠다고 ‘똑같은 내용’으로 연락한다. 한 아이 어머니는 바로 메시지로 “통화를 원합니다.”하셔서 전화드렸고, 그동안 아이가 누구를 때린 적 없었다며 오늘 너무 놀라하셨다. 그리고 상대 아이 엄마의 반응을 물으시길래 “일단은 아이와 먼저 이야기해 보세요. 그 이후에 연락이 필요하면 서로 연락하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 엄마도 가정에서 더 잘 지도하겠다고 문자를 주셨다. 그리고 상대 엄마가 통화를 원하면 연락처를 주어도 되는지 물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다. 퇴근 후 연락을 대기해야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일은 부모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학부모도 대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그 범위가 넓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두 집에서 다 이해를 할지, 아닐지 그건 또 기다려 봐야겠다. 퇴근하고 나서,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친구에게 주먹질을 한 아이 어머니가 아이랑 얘기하신 후 연락이 왔다. 상대 아이 어머니 연락처 주시면 연락하겠다고 하시는 거다. 다음날 들으니 서로 이해하신 것 같다. 아이들은 바로 놀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 간 다툼이 있는 날은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더 잘 가르쳤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노력 끝에도 이유가 찾아지지 않을 땐 날씨 탓을 해본다. '다 날씨 탓이야. 속이 펄펄 끓는 아이들이 이 더위에 비좁은 교실에서 하루 종일 있다 보니 그런 거야.'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다. 정리하지 않으면 생각이란 무성한 나무처럼 자라나 끝없이 나를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의 일을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 밝은 웃음 뒤로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무언가를 예측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기에 가끔 나는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힘이 들고, 힘을 내고, 힘이 들고, 힘을 내고, 그 반복인 것 같다. 이 더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