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 부자가 되었다
날이 더워졌다. 난 내가 입는 옷도 아이들에겐 미술교육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남편과 아들, 딸 세 명의 옷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옷이 있다는 걸 자책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 모두의 평화를 위해 적당히 숨기는 기술을 쓰고 있다. 그런데, 옷이 아무리 많아도 이렇게 더운 날은 옷 입기가 아주 불편하다. 시원하게 입자면 너무 짧고, 이쁘게만 입자면 덥고... 그래서 오늘은 남색 반팔 블라우스에 하늘색 체크 트위드 스커트를 입었다. 내가 보아 이쁘고 만족스럽다. 그러면 출근한다.
걸어가는 7분 출근길, 두 번의 신호를 기다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횡단보도 쪽에 시에서 설치한 파라솔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덥다. 난 지금 근무하는 학교 학구에 살다 보니 정말 많은 아이들을 알고, 출근길엔 인사하는 아이들도 많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반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남자아이다. 집이 가까운데도 늘 자전거를 타고 온다. 전에는 그 자전거가 엄청 비싼 거라면서 은근히 내게 자랑을 했다. 하지만 나는 자전거엔 관심이 없고 교통안전교육 시간이면 늘 헬멧을 쓰라고 말하곤 했다. 그랬더니, 지난주부터 아이가 쓰는 거였다. “**야, 더운데도 선생님이 헬멧 쓰라고 한 말 들어줘서 고마워.” 아이는 이런 말을 낯설어하듯 대답은 없이 딴소리를 한다. “선생님 저 오늘 왜 이 자전거 탔는지 아세요?”“어, 지난번 자전거랑 다르네?”“그게 바퀴가 펑크가 나서요.”“아 그랬구나? 나랑 얘기하다가 자전거 천천히 타고 있기가 어렵겠다. 먼저 가.” 그러니 바로 쌩하고 간다. 어제 주말 TV 방송에서 어느 개그맨이 말했다. “보고만 있어도 웃기면 그게 개그맨에겐 최고예요.” 그런데 이 아이가 생각났다. ‘이 아이는 정말 보고만 있어도 웃기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커서 뭐가 될까?’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도 나도 손을 씻고 줄을 선다. 나는 아이들더러 손톱을 깎을 사람은 깎고, 기를 사람은 기르라고 한지 2주 정도 지난 오늘 손톱 검사를 한다. “음, 100점 길이네요.”“아 **, 다음엔 더 길어서 와요.” 마지막에 서있던 남자아이 한 명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안 보여주려고 한다. “왜?”“저 너무 짧아서 안 보여드리고 싶어요.”“그래도 보여줘.” 아주 짧게 3초 보여준다. 그렇게 손톱 검사를 하며 손등에 로션을 발라준다.
그러다가 한 남자아이가 말했다. “와, 선생님 부자시네요.”“왜?”“선생님 옷에 보석이~ 이게 사파이언가, 루비인가?”“응, 선생님 좀 부자지.” 난 아이들이 아이다운 말을 할 때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오늘 이 말도 정말 내 보물 상자에 담고 싶은 ‘아이다운 말’이었다. 블라우스에 박힌 보석 장식이 정말 보석으로 보인 걸까? 다른 아이들도 거든다. “와, 선생님. 보석이 정말 많네요. 루비가 빨간색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나도 나도. 사파이어는 파랑? 에메랄드는 연두색..” 나는 오늘 이렇게 반팔 블라우스 하나로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 못했는데, 이 아이들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재미를 느끼면서도 조심스러운 것 중 하나는 이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걸 그대로 믿는다. 지금은 아들이 23살이니 더 속일 수가 없지만, 40살까지도 난 20살일 수 있었다. 어른들이면 안다. 20살은 선생님이 될 수 없는 나이라는 걸. 하지만 아이들이 선생님 나이를 서로 맞추려고 애쓰다가 20살로 결론이 나면 난 20살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 그렇게 소문이 나면 그 학교에 몇 년을 있어도 난 계속 20살인 것이다.
나는 아이다운 아이를 좋아한다. 보석을 보면 부자라고 생각하고, 선생님이 20살이라고 믿는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