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 주머니에서 시작된 기억의 소환
두 번 째다. 2주 전쯤에도 **이가 리코더 주머니가 고장 났다며 내게 들고 왔다. 두 뼘도 넘게 긴 플라스틱 주머니인데, 뭐라고 해야 하지? 주방에서 쓰는 지퍼백처럼 플라스틱이 왔다 갔다 하며 잠그고 여는 것이었다. 그게 잠가진 채 플라스틱 조각이 빠져 버린 것이다. '올해만 이게 몇 번째냐.' 음악시간마다 리코더를 연주하다 보니 아이들이 가져오는 수리 요청이 많다. 리코더보다는 그 주머니 말이다. 그래서 우선 몇 번이나 손톱으로 그 야무지게 붙어버린 틈을 벌려서 겨우 열었다. 그리고 그 위쪽에 왔다 갔다 하는 플라스틱 조각 갈라진 양쪽에 각각 주머니 비닐을 구겨 넣어가면서 자리를 잡는다. 아~ 겨우 수리 완료. 그리고 돌려주면서 말했다. "수리비 내야지.""얼마예요?""응, 백만 원이야.""악~~~!"
오늘 **이가 또 살금살금 와서 리코더가 담긴 그 주머니를 내민다. "선생님, 또 고장 났어요." 이번에는 그 주머니랑 '수리비'라고 빨간 색연필로 적은 손바닥만 한 종이를 같이 내민다. 이게 수리비 백만 원이라는 말을 기억한다는 나름 그 아이의 정성이다. 이번엔 그 긴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부분과 비닐 경계 부분이 10cm가량 뜯어져 있었다. 나뿐 아니라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의 AS요구에 익숙하다. 투명 테이프를 쭈욱 길게 뜯어서 붙였다. 그러면 되었다. 그리고 이미 다른 데로 가버린 그 아이의 책상에 두었다. 아이는 "감사합니다"인사도 없다. 점심시간이 되어 줄 서 있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고친 거 봤어?" "네.""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아, 감사합니다.""수리비는 어떻게 낼 거야?" 그러니까 옆에 있던 아이가 말한다. "나라면 종이에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써서 드릴 것 같은데?" "그렇지 ?"
초등학교 교실에선 고칠 게 많다. 옛날엔 하얀 면으로 된 실내화를 신었고 주말마다 그 흰색을 되찾으려 열심히도 빨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구멍이 가득한 실내화를 일 년 내내 신는다. 한 번은 우리 반 아이는 아닌데, 지나다니다가 인사는 하던 아이가 지나가는데 실내화 한쪽이 발목 쪽에서 뒤쪽으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자꾸 벗어지는 실내화를 힘겹게 들춰가며 슬리퍼처럼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었는데 "**야, 이리 와 봐."하고 우리 교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교실에 있던 털실을 꺼내서 일단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구멍 사이로 털실을 넣어 묶어 준 것이다. "이게 뭐 아주 튼튼하진 않아도 며칠은 괜찮을 거야. 집에 가서 새로 사달라고 해."
올해 한 아이는 "선생님, 제 의자에서 자꾸 소리가 나요." 가보니 등받이 나사가 조금 풀려있어서 소리가 난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십자드라이버를 꺼내서 의자에서 보이는 나사를 모두 다 꽉 고정해 주었다. 이렇게 바로 고칠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난 교직 초반부터 드라이버, 망치, 타카 등 공구가 개인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한 학교에 교실이 몇 개인데 고치는 주무관님은 한 분뿐이라, 고쳐달라고 말씀드려도 몇 주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도 나의 서랍 한 칸은 험악한 공구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가끔 그 공구들은 이렇게 일어나 먼지를 털고 열일을 한다.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만든 만들기 작품은 일주일이 지나면 슬슬 고장이 난다. 찰흙으로 만든 건 마르고 굳으면서 연결 부분이 툭툭 떨어지고, 풀로 붙인 건 더운 날엔 더 쉽게 떨어진다. 그래서 고장 나면 테이프나 순간접착제로 좀 고쳐줘야 한다. 망가진 채 두면 아이들은 그걸로 슬슬 장난치고 더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교실에서 늘 관찰되곤 한다. 그래서 난 우산꽂이엔 우산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교실 여기저기 개인 사물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시키곤 한다.
얼마 전 집에 가기 바로 전이었다. 우리 반에서 키가 가장 작은 아이가 가방을 멘 채로 친구에게 말한다. "이 줄 너무 길어." 지난번에 책가방을 너무 늘어뜨려 엉덩이에 가게 메길래 줄을 줄여줬더니 그 나머지 줄이 덜렁거리는 게 거슬렸나 보다. "**야, 이리 와 봐." 그래서 가방 양쪽에 늘어진 두 뼘이나 되는 그 긴 줄을 바투 묶어줬다. 그랬더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친구랑 재잘대며 교실문을 나선다.
책가방은 나이에 맞게, 체격에 맞게 사주어야 하는데 보통 어른들은 좋은 책가방을 오래 쓰기 바라는 마음에서 중학생들이 멜 법한 가방을 사주기도 하신다. 특히 초1 때 그런 모습을 많이 본다. 아이가 입학한다니 여기저기서 비싸고 좋은 책가방을 선물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방은 아이 키에도, 취향에도, 가방을 걸어야 하는 교실 책상 높이에도 맞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가방은 1학년 나지막한 책상 옆에 걸면 바닥에 끌리고, 서있을 때면 책가방이 아이를 메고 있는 듯 균형이 안 맞기도 한다. 아이들 물건은 남들이 보기에 좋은 것보단 내 아이에게 적당한 것이 좋다.
난 최근 '흐린 눈'이란 말을 처음 듣고 너무 웃기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문제가 보여서 지도하고 싶지만 그럴 경우 학부모가 감사해 하기는커녕 민원을 넣을 것 같은 아이의 경우, 그 아이의 문제를 자세히 보지 말자는 뜻으로 쓰인다. 선생님들끼리 '아이나 부모 모두 지도해도 들을 귀가 없으면.. 그냥 흐린 눈이요.'라고 조언한다. 교사들에게도 아이를 열심히 지도하다가 괜한 오해로 인해 민원 받지 않도록 나름의 전략이 생긴 것이다.
최근 내 눈이 실제로 잘 안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가까이는 잘 보이는 것이다. 버스가 가까이 와야 번호가 보이기에 눈을 찡그려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아직 이 조그만 교실은 다 잘 보인다. 맨 뒤에 앉아서 속닥거리는 아이, 책에 낙서하는 아이까지 말이다. 난 아직은 내 눈이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져오는 고장 난 것들을 고쳐주고, 도와주고, 그른 것은 고쳐 가르쳐 주는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싶다. 흐린 눈을 바라는 슬픈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