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 지붕은 왜 삼각형일까?

아이들은 창의성 덩어리!

by 화원

나의 중3 담임선생님은 남자 수학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항상 긴 나무몽둥이-지시봉-를 어깨 위에 걸치고 다니셨는데 아이들을 때리기보다는 긴장을 주는 용도로 사용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표준어는 아니었지만 항상 조곤조곤 친절히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이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해 여름방학 때 학교에 가서 자율로 친구들과 공부를 했는데 선생님이 1학기 수학 문제집을 한 권 주셨고, 나는 1주일 동안 그 문제집 한 권을 모두 풀면서 책을 끝내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수학은 '원리'라는 황금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학문제를 보면 마치 방탈출게임처럼 적당한 스릴감을 느끼며 즐겁게 풀곤 했다. 한 문제를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풀어서 똑같은 정답을 맞히는 게 나만의 공부 방법이었고 쾌감의 순간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 한번 이해가 되지 않아 서대문의 한 수학학원에 3달 다닌 기억이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곤 내겐 수학이 늘 가장 편하고 즐거운 과목이었다. 그래서 교대에 진학하고 나서 심화를 선택할 때도 나는 주저 없이 수학심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수학은 내게 유난히 애착이 가는 과목이다.


학교에 발령받아 공개수업을 하는데 다들 국어, 사회 과목을 준비하는데 난 기어코 수학 공개수업을 하곤 했다. 그리고 왜 다들 국어, 사회를 공개수업으로 정하는지 이해는 했다. 공개수업을 할 때 만일 국어나 사회 과목에서 아이들이 틀린 답을 발표하더라도 선생님은 매우 부드럽고 친절할 수 있다. "응, **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과목, 그러니까 누구도 틀렸다고 하지 않으면서 수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어코 고른 수학과목 공개수업에서 누군가 발표하는데 답을 틀린다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하지? 나에게는 그렇게 뻔히 예상되는 사건에 대한 플랜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공개수업을 매끄럽게 진행하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잘 가르치는 것'에 꽂혀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공개수업의 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년도 훨씬 지났지만 이런 나의 특성은 아직도 남아있어서 가끔 엉뚱한 일을 하곤 한다. 사람은- 그중에서도 어른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학부모님들이 가장 열심히 보내고, 아무리 돈이 없어도 마지막까지 끊지 않는 학원은 수학이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지나치게 수학선행에 노출되어 학교 수학 시간에 집중력이 뚝 떨어지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5학년을 가르칠 때는 자는 아이도 봤다. "어제 몇 시에 잤어?""1시까지 숙제하다가 잤어요." "선생님은 숙제 안 내주는데?""학원 숙제요.." 학부모님의 간절한 바람, 그리고 학원에 들이는 수많은 시간과 학원비를 생각할 때 꼭 아이의 수학 성적이 그와 정비례하지는 않음을 보는 순간마다 모두가 안타깝다. 학부모님도 아이도, 그리고 2년 선행하는 아이와 선행 전혀 하지 않아 보충이 필요한 아이까지 골고루 섞인 이 23명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인 나도.


그나마 수와 연산보다 도형은 아이들의 성적이 뒤바뀔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도형은 공간감각이 필요한 영역이라 수학이면서 수학이 아닌 단원이다. 일반적인 계산을 잘하던 아이도 도형단원에선 어려워하기도 하고, 계산에서 구멍 많던 아이라도 도형 단원에서 빛을 발하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수학 잘한다고 해서 도형단원도 다 잘하는 건 아니에요. 도형단원 공부 잘하는 사람은 레고 만들기나 나중에 어른돼서 운전이나 길 찾기도 잘할 수 있어요." 난 수학이 내 생활에서 어떤 도움을 주고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4학년 2학기 수학 2단원은 '삼각형'이다. 나는 도형단원은 다른 단원과 다르니 보통의 수학을 재미없어하는 아이라도 다시 잘해보자는 취지로 좀 재밌게 다가간다. 바로 교과서에 나온 그림 덕분이다. "저 그림에서 집 지붕은 왜 삼각형 모양일까요?" 이 질문을 던진 나는 이게 수학 1시간을 이끌어 갈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지붕의 장점을 설명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좋은 질문을 한 건가??? 아이들은 각자의 창의적인 답변을 내놓기 시작했다. 난 또 아이들의 답이 너무 재밌고 귀여워서 격려를 한다. 이렇게 선생님이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더욱더 많이 얘기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대답한다.

- 도둑이 그 집 지붕이 뾰족해서 들어가기 힘들게 하기 위해서

- 새똥이 덜 묻게 하려고

-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올 굴뚝이 필요하기 때문에

- 피뢰침 역할을 한다

- 집에서 뛰어도 천장이 높아서 머리를 박을 일이 없다

- 처마 끝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좋다

- 바람이 세게 불 때 집이 넘어가도 덜 굴러가게

- 잘못해서 외출금지를 당하면 부모님 몰래 줄 타고 도망갈 수 있는 구조

- 네모보다 세모가 작아서 관리비가 적게 든다

- 도둑이 들어오면 뾰족한 곳에 엉덩이 찔리게 한다

- 지구에 이상 발생시 로켓처럼 탈출할 수 있다

-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우리 집이 무기가 되어 뾰족하게 외계인을 무찌른다

- 친구가 오면 심심하니까 삼각지붕에 미끄럼틀을 타고 수영장까지 연결시킨다'

- 비가 오면 빗물이 잘 내려가게 한다

- 지구에 외계인이 오면 보통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를 집으로 인식하는데 삼각지붕 집을 보면 외계인이 "저게 뭐지?"라고 하면서 잘 몰라서 공격받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답을 듣다가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니지만, 수업은 가끔 이렇게 흘러가기도 한다. 아이들의 표정은 모~ 든 수학 시간 중 가장 밝았다. 종이 치고도 아이들은 더 말할 게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더 말하고 싶은 사람은 종이에 써서 내세요."라고 하니까 여자 아이 둘이 교실 뒤에 있는 여유 종이에 또 써오기 시작했다.


<지붕이 △면 좋은 점 913가지>

- 911. 양치질을 신박하게 하고 싶으면 끝에 치약을 묻혀 양치질을 한다.

- 912. 모자를 쓰고 싶을 때 지붕을 뜯어서 쓴다

- 913. 홍수가 나면 맨 위쪽으로 간다


다른 아이는 감성적인 답을 적어서 냈다.

- 지금 다 네모예요.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거울, 아파트, 문, 칠판, 책, TV 등 다 네모인데 지붕까지 네모로 하면 세모가 슬퍼해서 그래도 지붕까지는 세모로 해야 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수학을 아이들이 좋아하길 바란다. 오늘 수학시간의 흐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그런 면에서 충분히 좋은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나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재밌고, 기발한 이 아이들을 또 보게 되었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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