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온길 공간스토리 ③ 책방 세:간 下
16년 동안 '세간'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전통공예를 오랜 시간 익숙하게 다루어 왔기에, 공예와 디자인을 테마로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나아가 핸드메이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었고요. 책방 세:간 곳곳에 그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부여 자온길에 놀러 오신다면, 그 흔적들을 발견해 보세요.
서점 오픈을 하며 오픈 선물을 뭘로 할까 고민을 하던 와중에 박완서 선생님의 글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박완서 선생님을 꼽습니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면 글이 장면처럼 그려지곤 하지요. 소설 《미망》의 개성의 결혼식 장면을 읽을 때 너무나 황홀했고 개성 음식이 궁금해졌어요. 박완서 선생님의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호미》에서 작가의 말은 제 마음 속에 오래 남아있는 글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 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팍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 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박완서, 《호미》 2007, 작가의 말 중에서)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김매는 고단함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기에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가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박완서 선생님의 이 글처럼 '김 맬 터전'이 있음을 감사하며 김매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기도 했고요. 그 마음이 자온길을 준비해 온 마음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책방 세:간의 오픈 선물로 호미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부여에는 대장간이 없어서 홍산의 대장간에서 호미를 공수해 왔습니다. 충남 지역의 대장간에서 뜨겁게 달군 쇠를 두들겨서 만든 핸드메이드 호미. 옛날 어른들이 손에 물집이 가지 않게 호미에 천을 감고 쓰던 기억을 담아 예쁘게 천으로 감싸 선물했어요. 흙을 좀처럼 만질 일 없는 도시의 우리들이 이 호미를 만질 수 있는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편지도 함께 드렸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아서요.
흙을 만지며, 흙의 냄새를 맡는 일이
올 한해 당신에게 있기를 바라며.
우리 조금 천천히 평온하게.
뒷마당에 테이블을 몇 개 놓고 동네에 포스터도 만들어 붙여 조촐한 플리마켓을 열었어요. 이 서점의 뒷마당이 참 아름답거든요. 뒷마당 화원을 정리하면서 돌을 나르느라 팀원이 대단히 고생을 하셨던 기억이 나요. 멀리 서울에서 와주신 분들이 계셔서 너무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떡볶이와 김밥도 만들어 팔았고 그릇도 스카프도 팔았습니다. 역시 모든 것이 핸드메이드였어요. ‘우리가 앞으로 이런 것들을 할 거예요하는 인사의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서점에 들어오기 어려워 하셨던 동네 어르신들도 스스럼없이 와서 구경하고 함께 놀아주셨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규모있게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자온길 프리마켓'. 그릇도 팔고 그림도 팔고 농산물도 파는 그런 살아있는 시장을 규암에 다시 열고 싶어요. 예전에는 강변에서부터 마을 안 쪽까지 오일장이 섰었다는데 그 때처럼 이 마켓을 키워내 볼 생각입니다.
이 공간을 만들면서 임씨 할아버지네 옛 물건들을 여럿 발견했어요. 물건들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찡해지기도, 신기하기도, 따뜻하기도 했지요. 하나하나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모아 서점 곳곳에 멋지게 놓아 두었습니다. 책방 세:간 속 임씨 할아버지네의 흔적 찾기, 깨알 재미랍니다.
이 자전거는 임씨 할아버지(담배가게를 하시던 돌아가신 집 주인어르신)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예요. 서점 앞에 차를 자꾸 주차하셔서 어떻게 하면 이걸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자전거를 놓기로 했습니다. 역시 이 집에서 나온 소쿠리에 옛날 책들을 얹어 서점 앞에 두었습니다. '서점 앞에 주차금지'를 꽤 서정적으로 표현했지요?
사진 속 물건들은 임씨 할아버지의 아버지 함자가 적힌 옛 문패와 약혼 3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듯한 할머니의 반짇고리예요. 이 물건들은 어디에 놓여 있을까요? 서점에 오시면 한 번 찾아 보세요! 가구들 또한 이 집에 남아 있던 가구를 활용하고, 폐목재를 활용해 새로운 가구들을 짜 넣었습니다.
공예·디자인서적 큐레이션도 책방 세:간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입니다. 자세히 살펴 보시면 책의 주제에 꼭 들어맞는 아름다운 공예품들이 함께 전시가 되어 있어요.
전통공예라는 것이 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감상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삶을 즐겁게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요소임을 알리고 싶었어요.
때로는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하기도 합니다. 작가님들과 함께 만든 돈보예요. 이 때에도 역시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함께 전시했어요.
책방 세:간에는 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어요. 제가 아주 오랜 시간 모아온 수집품과 소장하고 있던 고가구들이 총동원되었고, 마치 작품을 만들듯 구석구석 세심하게 공들였습니다. 하나 하나, 일부러 구하려면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높은 귀한 물건들이지요. 오래 전 수집한 제상이 책상으로 변신하는 등 원래의 용도와 다르게 사용되는 옛 물건들이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서점 간판 역시 직접 만든 것이에요. 고객님들이 간판 좀 만들어 달라 하셔서 급히 만들었습니다. 재료비 0원! 이 간판은 예전에 삼청동 매장을 할 때 내부 간판으로 사용했던 나무판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살짝 촌스럽지만 서점과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제가 촌스러운 걸 많이 좋아하기도 합니다. 너무 세련된 건 이상하게 저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어느 날 SNS에 우리의 공간이 너무 예쁜 그림으로 그려진 게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웃 마을 공주에 사시는 김영주 화가님께서 자온길을 다녀가시고 그려 주신 그림이에요. 이후로도 작가님은 우리 공간을 늘 애정해주시고 자주 와주십니다. 이렇게 친구가 되어가요. 너무 너무 힘이 들다가도 이런 피드백을 보면 또 막 뭉클해지게 돼요. 책방 세:간 이야기는 여기까지. 또 재미있는 공간 스토리 들고 다시 올게요.
우리의 서점이 여행가들에게는 쉼이 되고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즐거움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꿈과 설렘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