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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아 May 17. 2019

임씨네 담배가게는
어쩌다 서점이 되었나

자온길 공간 스토리 ③ 책방 세:간 上


부여의 유일한 독립서점

책방 세:간



어릴 적 학교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 작은 동네 서점이 있었어요. 매일 매일 그 곳에 들러 책을 구경하는 게 일상의 큰 즐거움이었죠. 그 때는 소설 한 권의 감동만으로도 붕 뜨는 기분으로 한 달을 살기도 하고, 시를 한 편 한 편 외우는 것도 참 설레고 떨리는 일이었어요. 


서점이 함께 있었다는 것. 슈퍼처럼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에 저는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늘 친절히 대해주시던 서점 아저씨가 지금도 참 고마워요.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동네에 서점과 갤러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부여에는 서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서점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있지만 학습용 참고서만 가득할 뿐 책을 보고 고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죠. 이건 너무 슬픈 일 같아요. 지역에 서점이 없다는 것. 그래서인지 저는 어떤 공간보다도 먼저 서점을 열고 싶었습니다. 동네에 꼭 필요한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책방 세:간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책방 세:간에는 동네 아이들이 훅~ 들어와 책을 보며 놀다 가기도 하고 엄마와 아이들이 와서 함께 책을 고르기도 해요. 책방 안쪽에 마련해 둔 비밀스러운 공간은 특히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예요. 원래 벽장이었던 공간을 동화책과 놀이도구를 비치해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꾸몄거든요. 이 곳에 오면 어김없이 저 안에 들어가 앉곤 하죠. '부여에 이런 책방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듣는답니다. 정말 감동스러운 일이에요.







책방 세:간은 원래
임씨네 담배가게였습니다.


책방 세:간은 원래 마을의 임씨 어르신이 담배를 판매하시던 오래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다들 '임씨네 담배가게'라 불렀지요. 실제로 공간 안에는 당시 담배장으로 쓰였던 가구도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이 공간은 매매가 아닌 임대 형식이라 공사 자금을 많이 들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예전부터 꼭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던 이용재 건축가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고생해서 작업해주셨습니다. 




가게를 하던 공간과 뒷쪽에 딸린 살림 공간이 함께 있는 구조였어요. 옛날 가게들은 흔히들 그랬지요. 오래 버려져 있던 공간이라, 청소를 정말 수십 번은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오래된 조립식 벽을 걷어내니 멋진 나무벽이 나왔고 막혀있던 천장을 뚫었더니 엄청 잘생긴 서까래가 나오지 뭡니까. 참 잘 지은 한옥이었어요. 서까래에 적혀 있는 글귀가 보이시나요? 이 집이 만들어진 날짜가 적혀 있답니다. 8월 14일이 이 집의 생일이에요.


 


오래된 한옥에 반짝이가 처음엔 너무 생경했으나 그 새로운 소재와 예전의 목재들이 만나 새로운 그림을 연출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 공사하시느라 고생이 정말 많으셨어요. 저는 클라이언트의 의견보다 건축가의 의견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고 공간을 맡겼으면 끝까지 믿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지요. 생소한 풍경에 왜 이런 느낌을 낼까, 사실 중간에 갸우뚱 했던 적이 있지만 건축가의 용기있는 시도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반짝거리는 벽지의 느낌이 꼭 담배의 속지처럼 느껴져, 재치있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인테리어는 대부분 이 집에 남아 있던 물건들과 오래된 목재를 활용하여 꾸몄어요. 서범수 목수님께서 이 작업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목수님이라 칭했지만, 사실은 작가님이시지요. 서양화를 전공하신 그는 일반적인 가구 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작업을 하는데다, 그 작품은 일반적인 가구의 틀에 박혀 있지 않은 조각 작품같은 느낌이 들어요.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그렇게 해서 2018년 5월 19일, 책방 세:간이 문을 열었습니다. 자온길에서 가장 먼저 오픈한 공간이기도 해요. 그 날 아주 특별한 오픈 기념 선물도 마련했었어요. 책방 세:간을 통해 제안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오셔서 경험하실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들려 드릴게요!




미디어에 소개된
책방 세:간 이야기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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