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서 있는 인물들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과 한스 메믈링의 <축복을 내리는 예수>

by 민윤정

오늘은 창가에 서 있는 인물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려 한다.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과 한스 메믈링의 <축복을 내리는 예수>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이 스페인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진 지극히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즉 세속적인 삶의 일부를 담았다면, 오늘은 네덜란드 작가가 그려낸 신성함이 뿜뿜하는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무리요의 작품에 대해서는 작년 연말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jarandlion/85


그 글에서 서양의 미술작품에서 창틀과 화면을 일치시킴으로서 '회화와 창'이라는 전통적 메타포를 실현시키는 예가 많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전 시대 르네상스 네덜란드 작가들에게서 널리 활용되었었다고 밝힌바 있다. 스페인 작가인 무리요의 작품에서도 소녀가 팔을 얹고 있는 창틀은 화면의 하단과 일치하게 그려서, 회화 작품이 창문이라는 설정이 시각화된 것을 살펴보았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창 가의 두 여인>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창 가의 두 여인>, Bartolomé Esteban Murillo,Two Women at a Window (c.1655–60), oil on canvas ; 125.1 × 104.5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작품만 살펴보면 아름다운 소녀가 '창턱'에 한 팔을 걸치고 또 한팔은 세워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관람객 쪽을 바라보고 있다. 관람자의 입장에서보자면, 그녀가 팔을 받치고 있는 '창턱'은 바로 '액자'의 연장선인 것이다.


이러한 묘사방법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는 회화와 현실 사이를 오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작가의 탁월한 '눈속임 기법 (tromph l'oeil)'에 감탄하고, 한편으로는 예술과 현실의 간극이라는 철학적 경험까지 유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전 포스팅에서 스페인의 작가 무리요가 네덜란드에서의 화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이 작품에서 종교화와 초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화법을 장르화로 옮겨 표현하는데 멋지게 성공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때는 신비주의로 내 포스팅을 마무리 했지만, 실은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에 대한 해석은 상반된 의견 두가지가 존재한다.

1. 두 여인 중 나이가 든 여인 쪽이 웃으면서 입을 가리고 있는데, 이것이 당시에는 에티켓이었다고 한다. 그런 예절을 지키는 것으로 보아 나이든 여성은 어쩌면 소녀의 유모나 하녀로 상류층 여인들이 데이트 할 때 수행하던 셰프론일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2. 스페인 속담에 "창가의 여인은 거리의 포도 (la mujer ventanera, uva de la calle)"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창가에 몸을 기대어 지나는 행인을 유혹하는 이들은 매춘을 하는 여성들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1번의 해석은 소녀나 중년의 여인의 옷차림이 상류층의 그것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기에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무리요의 작품 속의 여인의 모습이 말 그대로 창가에 그려져 있고, 창밖의 인물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는 점에서는 두 번째 추측에도 설득력이 있지만, 사실은 확인할 바 없다.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이 스페인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진 지극히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즉 세속적인 삶의 일부를 담았다면, 이번엔 네덜란드 작가가 그려낸 신성함이 뿜뿜하는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 작품은 바로 한스 메믈링의 <축복을 내리는 그리스도>이다.

Hans Memling (1430–1440 to 1494), Christ Blessing (1481), Museum of Fine Arts, Boston

Hans Memling (1430–1440 to 1494), Christ Blessing (1481), oil on panel ; 35.1 x 25.1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한스 메믈링의 <축복을 내리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에서는 예수를 너무 거룩해서 쳐다볼수도 없는 위엄 가득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검소한 옷을 입고, 창틀에 한 손을 얹은채, 그 그림이 걸려 있는 집안을 들여다보며 축복을 내리는 듯한 친근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한스 메믈링의 이 작품은 네덜란드 회화에서 창틀을 활용한 대표적 예를 보여준다. 창틀과 화면의 하단을 일치시켜 표현한 절묘함을 보라!


이 작품에서는 예수를 너무 거룩해서 쳐다볼수도 없는 위엄 가득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검소한 옷을 입고, 창틀에 한 손을 얹은채, 그 그림이 걸려 있는 집안을 들여다보며 축복을 내리는 듯한 친근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한스 메믈링 (Hans Memling: 1430–1440 to 1494)은 초기 네덜란드 회화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비잔틴과 당시 이탈리아를 위시한 타 유럽지역의 미술에서는 도식화된 규칙을 준수하며 예수와 성모의 신성함을 강조하는데 주력하였다.


근육질 넘치는 예수나 화려한 복장과 완벽한 외모의 여타 작품들을 떠올려본다면, 한스 메믈링의 예수의 복장은 검소하다 못해 초라하기 까지 하다. 그의 작품 속의 예수의 얼굴은 네덜란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닮은 모습을 한둘 발견할 수 있을 법하게 사실적이다.


<축복을 내리고 있는 예수>라는 작품에서 예수님의 초상은 중세 기록에 남겨져 있는 예수의 실제 모습에 근거하여 그려졌다고 알려있다.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의 손가락 두개를 세운 예수의 손모양은 전통적으로 '축복을 내리는 제스츄어'이다. 섬세하게 표현한 얼굴의 표현과 제스츄어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더군다나, 그가 왼손을 살포시 올리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작품의 실제 액자틀이다. (여기 도판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액자 상단의 중앙에는 1481이라는 작품의 제작연도도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당시의 원래 액자에 끼워져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굉장히 드문 일이고,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메믈링은 공간감과 깊이감을 성취해내는 한편,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과의 정신적인 유대감마저 성취해내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만약 예수님이 직접 우리집 앞까지 강림하셔서, 누추한 우리집의 창틀에 몸을 기댄 채 직접 축복을 내리고 계시는 것을 바라보면 얼마나 감격스럽겠는가?


난 사실이 어떻든간에, 무리요의 <창 가의 두 여인> 속의 두 여인들이 여전히 아름답고, 특히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완벽한 몸매와 이상적인 미남형 얼굴, 그리고 값비싸 보이는 옷을 입은 예수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면, 한스 메믈링의 예수는 보다 우리 가까이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고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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