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용한 색 중에 가장 오래된 색 중의 하나가 빨간색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냥 주변의 젖은 흙을 벽에 발라도 붉은색이 나오니까요. 고대 동굴벽화를 봐도 붉은색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파란색은 후대에 와서야 그 색을 지칭하는 단어인 반면, 빨간색은 인간이 처음으로 인식한 단어라고도 합니다. 인간과 동물의 피가 빨간색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빨간색에 대해서 좀 알아볼까 합니다.
'빨간색' 하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붉은 장미꽃, 혹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빨간색은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과 연관이 깊다. 그도 그럴 것이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빨강과 파랑의 혼색이기 때문이다. 빨간색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상인데 빨강과 자주색이 절묘하게 혼합된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무제'라는 제목에 이어 괄호 안에 (파랑 위에 빨강과 버건디)라는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들이 다 모여 있어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종이 위에 그려진 유채라서 그런지 표면의 질감이랄까, 마티에르 감이 그의 다른 작품과는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몇 년 전 경매에도 나왔던 이 작품 이외에도 로스코의 작품은 붉은색이 많다.
로스코의 생존 시에도 엄밀히 비밀을 엄수했기에, 아직도 정확한 작법이 밝혀지지 않은 그의 작품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비로운 사각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톤이 다양한 붉은색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닌 게 아니라 물속에 잠겨 있는 색면이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 관람자라면, 작품 앞에서 통곡을 할 것이라 작가는 말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통곡'까지는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울컥함을 느꼈다는 사람은 가끔 볼 수 있는데, 실은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해두는 바이다. 빨간색 색조가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초기의 작품에 많고, 이후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70년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파란색이 더 강해지면서 밤하늘 같은 푸른색이나 머룬색, 어두운 갈색을 거쳐서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지게 된다.
위의 작품은 소더비의 경매에 나왔던 로스코의 <무제 (빨강 위의 빨강)>이라는 작품으로 다양한 빨강의 변주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품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작품은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소장의 <빨강, 오렌지, 빨강 위의 오렌지>라는 작품인데 마치 창을 통해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빨간색과 오렌지색이 주조를 이루던 시기의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이처럼 석양의 풍경에 자주 비유되었다.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캠핑이 유행이 되던 시기에 모닥불을 멍하게 쳐다본다고 해서 '불멍'이라는 것이 유행했었다. 나는 로스코의 화면을 오래 쳐다보는 것이 이 불멍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젯소를 칠하지 않은 raw canvas에 테레빈유를 많이 섞은 묽은 물감을 여러번 채색한 그의 화면은 아랫부분의 흰캔버스를 통해 여러가지 색상이 일렁거리는 듯한 효과가 있다. 이러한 어른거림이 불길의 불규칙한 움직임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불멍을 하면서 생각을 비우다보면 명상과도 같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듯이 로스코의 작품과 대면하면서도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마크 로스코도 빨강의 변주곡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미술사를 통틀어 빨강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뭐니 뭐니 해도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라고 할 것이다. 그의 1911년 작품 <붉은 스튜디오>는 야수파의 리더이자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로 칭송받는 화가인 마티스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색상을 다루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빨간색 하나만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표현한 마티스는 단연 '색채를 해방시킨 작가'로 불릴 만하다.
이전까지는 '자연의 재현'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던 회화에서는 사물에는 으레 정해진 '색'이 있었다. 하지만, 마티스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얼굴 한가운데 녹색 선을 과감하게 그어버림으로써 작품 별명을 '녹색 선(Green Stripe)'이라고 불리게 만든 이후, 화가들은 더 이상 일대일 식의 정해진 색상의 규범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마티스의 공로는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초등학생이 나무나 산을 빨갛게 색칠하고 있는 것을 본 선생님은 어린 학생에게 조용히 빨간색 크레파스 대신 초록색 크레파스를 쥐어줄지도 모르고, 아니면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요새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붉은색이라면, 예전 댈러스의 유명한 컬렉터 라초프스키(Rachofsky)의 개인 미술관인 라초프스키 하우스(The Rachofsky House)에서 본 마크 퀸(Marc Quinn)의 <자신 (Self)>이라는 작품이다.
방 한켠에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안에 들어가 있는 냉동 두상은 작가 마크 퀸이 자신의 얼굴 모양의 본을 뜬 뒤에, 조금씩 수혈한 자신의 피 5.6리터를 모아 액상 실리콘을 혼합해서 얼려 만든 작품이다. 냉동장치에 연결되어 얼어있는 상태로 보존된 이 작품은 둘러싸인 공간의 흰색 벽과 대조되어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그곳을 안내해주던 큐레이터가 전해주는 에피소드 때문에 더욱 내 머릿속에 각인되는 결과가 되었다. 말인즉슨, 그 뜨거운 텍사스의 기후 속에서 냉동장치가 고장이 난 적이 있어서 한번은 그 작품이 폭발(?)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피가 흰 벽의 방 사방에 튀어서 그것을 청소하는 데도 힘들었고, 이후 작가가 다시 수혈을 거쳐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왜 그런 작품을 만드는지, 또 왜 그런 작품을 수집하는지 이해 불능이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본을 떠서 그 속에 한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피의 양을 사용해 만드는 두상은 현대판 '바니타스 정물화'인지도 모른다.
작가 마크 퀸은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본을 뜬 캐스트에 자신의 피 5.6리터를 수차례의 수혈을 통해 모은 뒤 이 속에 채워서 얼려서 '자신 (Self)'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보통 인체에 존재하는 피의 양이 5.6리터라고 하는 데서 착안한 5.6리터이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생과 사를 함께 언급하는 작품이라고. 피는 시간이 지나면 굳기에 액상 실리콘 등의 화학약품을 혼합해서 만들고 이 조각은 플렉시글라스 안에 보관되고 냉동장치가 연결되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미술작품에서 사용되는 빨간색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동굴 속에서 살던 석기인들은 돌에서 추출한 황토색인 '오커 (ochre)'를 사용했고, 이후 진사 혹은 주사라고 부르는 시나바 (cinnabar)라는 광물에서 붉은색을 추출하였다. 이 시나바를 분쇄한 것을 버밀리언(Vermil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밖에도 금과 은 다음으로 비쌌다는 카마인(Carmine)은 특이하게도 콩처럼 생긴 벌레,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 혹은 코치닐(Cochineal bug)을 분쇄하여 제조한다.
연지충 혹은 코치닐 (Cochineal bug) 그 벌레들은 선인장에 기생한다고 합니다. 연지충, 혹은 코치닐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빨간 벌레에서 빨간색 염료를 추출해낸다. 사진은 연지충 혹은 코치닐의 모습이다.
마티스가 주로 사용한 붉은색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색상으로 카드민 레드 (Cadmium Red)로, 전통적인 버밀리언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색이다. 붉은색을 많이 사용한 로스코의 경우 리솔 (Lithol)이라는 안료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안료의 경우 결정적으로 빛에 약한 게 문제였다.
휴스턴에 세워진 로스코 작품들로만 채워진 로스코 채플은 그의 의견을 존중하여 만들어졌다. 자신들의 작품들로만 채워진 독립적 공간, 종파를 초월한 교회를 세우고 싶어했던 그의 의견을 존중하여 휴스턴의 후원자들이 건설해 준 것이다. 뉴욕에서 작업하면서 자신의 작품들로 채워진 교회의 모습을 그려온 로스코는 건물의 천장에 난 창을 통해 자연스러운 자연광이 작품에 비추도록 설계하게끔 요청했다. 로스코가 간과한 것은 그 건물이 세워진 곳이 뉴욕이 아닌 텍사스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휴스턴이었다는 점. 작렬하는 햇빛에 작품들의 색이 하루가 다르게 바래가는 것을 발견한 로스코 채플 측은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여 채광창 아래에 가림막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의 급속한 변색은 일광 이외에도 그가 사용한 안료의 특성에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색의 역사를 훑어보다 보면 새삼 오늘날만큼 생활 속에 다양한 색이 풍요롭게 존재하는 시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일상 생활에도 패션과 미술 작품에서 영감과 기쁨을 주는 빨간색. 이제는 그 작고 연약한 벌레들을 직접 잡아 으깨서 빨간색을 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붉은색의 옷이나 구두를 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