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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Dec 22. 2017

모든 것은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모든 상황이 어제와 똑같이 반복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더군다나 그 어제가 끔찍한 사고를 겪었던 때라면. 말하자면 신이 선물한 은총 중의 하나인 망각을 빼앗긴 상황이다. 최근에 나온 한국 영화 <하루>는 딸이 사고로 죽는 순간을 매일 같이 반복해서 겪는 남자의 이야기다. 결국 같은 일이 계속 반복돼도 사고를 막을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잘못된 행동으로 불행해진 한 남자의 복수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돼 반성하고 남자의 삐뚤어진 마음을 풀어준다는 것이 결말이다. 조상 때 저지른 비행 때문에 자손들이 자꾸 불운을 겪는 서사를 살짝 비틀어놓은 느낌이다.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보자면 어떤 일이 자꾸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암시다. 나 역시 삶에서 어떤 상황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반복적으로 어떤 잘못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내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성격의 구조적 문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 심리상담센터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신변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당분간은 일찍 나올 수 없다고 상황을 설명하자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던 조교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재현되나요?”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해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뒤로 곰곰 생각해보니 재현되는 상황이 있기는 했다. 예를 들면 일이 될 듯하다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반복되는 듯했다. 

  

  냉정하게 내 자신을 분석해보니 나는 어떤 일을 간절하게 바라다가도 막상 그 일이 실현될 것 같으면 뒤로 한 발짝 물러나 현재 생활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끝까지 매진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바라던 일이 정말로 이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욕심을 가지고 준비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넘어야 할 문턱을 넘지 못한다. 또한 일이 성취된 후, 그 다음에 올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일이 성취되지 않는 것은 운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실패를 반복한다면 무조건 운을 탓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일은 주위에 널렸다. 사실은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으며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되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서 끝으로 갔다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이 인생사다. 저녁이 오면 그 다음은 아침이다. 태어났다가 죽고 다음 사람이 또 태어났다가 죽고를 반복한다. 어릴 때 겪었던 일을 내가 어른이 돼서 내 아이에게 반복한다. 아파트 주변에 늘어선 상점들은 끊임없이 폐업과 개업을 반복한다. 반성하고 사과하고 또 잘못을 저지른다. 잃어버리고 후회하고 정신 차리리라 다짐하지만 깜빡하는 일은 또 일어난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대런 아로노브스키 감독의 <마더!>는 그런 식의 반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제니퍼 로렌스는 진저리쳐지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 죽게 되고 집은 불에 탄다. 그리고 난 뒤 처음과 끝의 장면이 동일해진다. 첫 장면은 불타버린 집을 제니퍼 로렌스가 복구하는 장면이었다. 남편인 하비에르 바르뎀만 그대로인 채 제니퍼 로렌스의 위치에 다른 여자가 들어서고 상황은 처음부터 다시 반복된다.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인간사가 바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는 그대로고 그 안에 위치하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바뀔 뿐이다. 우리가 차지하고 있고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자리는 그냥 텅 빈 기표일 뿐이다. 언젠가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비워줘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신경증자 재스민의 영화로 버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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