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들여다보고 얻은 생각들
당분간 생각이란 걸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길 정도로, 한동안 생각이 꼬리를 무는 일이 많아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괴로웠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생각 동굴로 말려들어갔다. 그 시간을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안된다 싶을 정도로. 밖에 나가 지인들 가게에 가서, 하릴없이 수다를 떠는 것도 차라리 그래서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가는 길에, 오는 길에는 유투브나 파면서. 생각이란 걸 하지 않게.
짧지만 길었던 2박 3일간의 제주 방문. 특별날 것도 없지만 들여다보면 특별했던 시간들. 혼자이기도, 또 함께이기도 했던 순간들이 재미난 추억들로 쌓였다.
예쁘고 좋았던 숙소. 보기만 하다가 경험해 보는 건 또 다르긴 달랐다. 뭐든지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가파도에 처음 가 봤다. 올레길의 일부라는 청보리밭 사이와 바닷길을 걸으며, 보며.. 참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떠난 사람들, 나를 떠난 사람들. 애증의 관계들, 좋아하지만 표현이 서투른 사이들, 억지로 잡고있다 지쳐서 놓은 관계들. 말해 뭐하나 싶은 가족들과, 다들 아이가 있어 물리적 거리두기 실천이 아주 잘되고 있는 친한 친구들도.. 청보리밭에 바람이 불어 보리가 사르르 움직일 때마다 스쳐간 관계들과 나를 놓은, 내가 떠난 관계들이 스르륵 눈 앞에 스쳐가는 것 같았다. 다 내맘같지 않았던 시간들도 함께 스쳐지나갔다.
어차피 내가 잡고 싶어도 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떠날 것은 떠나고 올 것은 온다. 잡힐 것은 잡히고, 남을 것은 남는다.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이 그 사이를 채운다. 잡고 있지 않아도, 굳이 매달리지 않아도. 생각이란 것도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이생각 저생각에 매달리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또 자라나는 것들이 있다. 새롭게 그리고 튼튼하게.
모든 것을 흘려보내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충실하게 시간을 보냈을 때 남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길들이고, 무엇을 더 자라나게 할 것인가. 내 안에 새롭게 틔울 씨앗은 무엇인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쳐갈 수 있으면 좋겠다. 전에는 한숨만 쉬었다고 하면, 이제는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며 방향을 조정할 줄은 아는 것 같으니.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