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게 쓸모를 기대하지 말자
사과클럽_02
어제는 일요일에 성당에서 처음 만난 동네 친구와 집 앞의 봉화산을 올랐다. 해가 지기 직전, 딱 노을을 구경하며 산 아래와 멀리 남산타워까지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시간이다. 노을을 즐기고 내려와 커피를 나눠마시고 쉬다가 오늘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문제는 내가 들고나간 텀블러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다, 바람이 차가워 우리집으로 피신했다.
그녀는 잠깐 독립해 직장 근처에 살던 시절, 미니멀리즘에 눈을 떴다고 했다. '언젠가 쓰겠지' 하면서 지금은 제대로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물건을 늘리지 않는 것을 꽤 습관 들이고 있다고 했다. 이것저것 나의 집에서 빼도 될 물건들에 잔소리가 늘어질 즈음, 밤이 깊어가고. 같이 보았던 '밀라논나' 채널의 주인장, 밀라논나 님의 루틴을 들여다보며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부지런히 하루를 쓸고 닦고 가꾸어 가는 과정 중에, 진짜로 필요한 물건들만 남는다면. 우리 집에 많은 물건은 사라지게 될 거야. 물건의 쓸모가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대단한 착각이지 않은가. 내가 필요하다고 세뇌하며 착각 속의 소비를 하고, 쓸모에 대해서도 착각 속에 소유만 한다니. 작년에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많은 부분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TV처럼 큰 가전이나 가구, 큰 짐이 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짐을 줄이고 왔다는 착각 속에 짐을 꾸준히 늘리고 있었던 소비도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것 같다.
덕분에 오늘은, 지난 1년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 오늘 집으로 날아온 카드사의 명세서가 더 큰 반성을 하게 했다. 소유하는 것 만큼이나 먹는 것에도 욕심을 부렸던 나. 물건의 쓸모에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내가 먹은 음식에게도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을 산다. 부지런히 나의 건강을 챙기며,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삶을 사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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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는 그녀에게 영화 <100일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 를 추천해 주었다. 꼭 필요한 물건부터 하나씩 되찾아 100일의 일상을 사는 동안, 물건의 진정한 쓸모와 관계, 행복의 의미에 대해 깨달아가는 이야기이다. 미니멀리즘과 물건의 소유에 대해 생각이 많은 친구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