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이 정신 차리고 다니기
건강검진 후 발견된 것들 덕분에 요즘 큰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누가 저기로 가서 저 사람을 만나서 이 치료를 받아, 라고 딱 정답을 적어서 주면 좋았겠으나.. 당연하게도 나는 스스로 정보를 뒤져 선택지를 좁히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았다.
집과 회사에서 찾아가기 쉬운 위치의 병원일 것, 경험이 많고 여러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지점이 같은 분을 찾아갈 것, 혹시나 향후 수술이 있을 것을 생각해 여러 부분 고려하여 병원 정할 것 등등 많은 질문지를 통과해 병원을 정해야 했다.
아무튼 어쩌다 일정을 취소한 분 덕분에 빠르게 예약이 되어 전화 예약 후 6일 뒤 꽤 알려진 선생님의 초진을 받게 되었다. 초심자의 행운인가. 대기시간은 매우 지루하고 병원에 계속 있으려니 춥고 피곤했지만 세심한 의사샘 덕분에 마음도 풀리고, 부작용만 잔뜩 안겨준 약도 끊고. 정밀 검진을 위해 한번 더 방문했다.
가기 하루 전, 갑자기 미션이 생겼다. 채혈 검사가 빠졌다고 두시간 일찍 와서 받으라는 것이다. 두 시간이나... 여튼 반차를 썼기 때문에 부랴부랴 이동해서 검사를 갔다. 부모님은 대전에 계시고 오빠 내외는 분당에 사니, 별 일 아닌 일들은 왠만하면 혼자 해결한다. 여튼 오늘도 검진 때 받아본 MRI 를 생각하며 별거 아니지, 했는데. 채혈 미션이 생기면서 조금 복잡해졌었다. 검사 의뢰서를 지난 번에 못 받았다 설명도 하고, 접수를 하고, 채혈실에 가서 접수 후 모든 검사비용 수납을 하고, (약간의 충격) 그 뒤에 채혈을 겨우 했다. 금액에 충격받아서 그런지 채혈하는데 긴장이 많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검진 때보다 훨씬 바늘이 아팠다. 왜일까...
채혈 후 병원 밖에 나가서 잠깐 걷고 올까 했으나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서 그대로 병원 안에 머물렀다. 그 때부터 조금 답답해졌다. 말 할 사람도 없고.. 계속 혼자 있나니 조금 시무룩해지는 것 같고. 그렇지만 나보다 더 아픈 분들이 보이니, 애써 기분을 달래고... MRI 접수를 하고 앉아서 김민철 작가님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었다. 나와 비슷한 작가님. 경험을 진짜 많이, 다양하게 하시지만 모든 것을 다 기억하기는 쉽지가 않다. 대화의 기록 같은 것도. 사회생활을 하며 많이 단련이 되어 그렇지 참 취약한 부분이다. 큰 공감을 하며 읽고. 잠깐 졸기도 하고.. 그렇게 버티다 이름이 불려졌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MRI를 찍으러.
오늘은 조영제를 넣고 하는 MRI를 처음 경험했다. 그래서 물 포함 4시간 전부터 금식을 했다. 이 더운 날에 물도 못 마시고 오니 땀 흘리고 온 뒤 벌써 기력이 소진됐다. 그래서 검사 중에 굉음이 귓속에 쩌렁쩌렁 규칙적으로 들리는 데도, 지쳐서 잠이 들었다.
큰 병원 안에서는 환자 혼자 다니면 좀 불리한가,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여러가지 설명을 듣고 기억하기가 쉽지 않으니 2인 1조로 듣고 시키는 대로 잘 하는 것 하나. 또 뭔가 요청할 때 잘 얘기하기 위해 든든한 버팀목으로 세워두는 것 하나. 검사를 마친 후 멍하고 기운없이 갈 때, 몸과 마음을 다 잡아주고 은근한 위로가 되어주는 것도. 장점이 많네.
잔병치레가 은근히 많은 나는 종종 크게 아프고 다칠 때마다 농담삼아 "보호자를 구해야겠어.." 라고 하지만 막상 그 보호자 될 사람 찾는 것에 너무 어려움을 느낀다. 참 다양하게 허술한 나를 지켜줘야하는 미션까지 받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미리부터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구하기는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시작해야 하나. 나도 나를 모르겠다.
여하간 오늘도 유쾌한 선생님, 피곤해도 꼭 다 설명해주는 친절한 선생님, 할 일을 정확하게 하는 선생님, 어떻게든 제대로 가이드하는 선생님들 등등 많은 사람들도 보고. 어려운 이동/위치/할 일 안내 해 주는 간호사/직원 분들께도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치료를 받겠다고 가서 너무 어려운 나머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들었는데, 은근히 힘들지 않게 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보호자를 구해야할까, 오늘 밤에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