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e M K Jeong Jun 27. 2020

이름 없이 죽어간 학도병들은...

꽃미남 내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에게도 꽃 같은 젊은 날이 있었다.
“나는 변질된 좌도 변질된 우도 아닌, 그냥 한 나라의 건강한 국민이고 싶다.” 15살에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낙동강변 그리고 강원도 화천까지 한국전쟁 중에 유엔군을 따라다니면서 화약을 나르던 학도병이었단다.  당신과 함께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하고, 나머지는 흩어져 생사를 모르신단다. 그러다가 유엔군에 고용되어서 DMZ 위아래를 옮겨 다니면서 일하시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이가 돼서  해병대 57기로 입대하셨다가 제대하신 후에, 유엔군 군무원으로 복귀하여 1970년대 미군이 전방에서 철수할 때까지 일하셨단다. 1935년에 태어나신 분들 그리고 해병대 57기는 모두 한국전쟁과 무관하시지 않다고...

꽃미남 아버지는 그렇게 전쟁의 상흔을 안고 평생을 외상 후 스트레스(PTSD)를 앓으시면서 사셨고, 그의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중증 치매로 모든 것을 잊고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보내시고 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전쟁의 소년병들.. 죽어도 살아도 고통 속에 있다. 그들은 단지 누군가의 욕망에 역사라는 이름으로 바쳐진 이름 없는 제물들이었다고..

캄보디아 분쟁의 현장에서 나는 언제나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생각했고, 지독한 전쟁의 소년병으로, 그들의 자녀로, 절망적인 삶을 사는 청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꽃미남 내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pic. my father's DMZ pass in 1950's)

작가의 이전글 자가격리와 우울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