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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Oct 24. 2021

모두의 사연

아침 신문을 읽고

요즘 신문을 읽으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제 내가 겪어야 할 일들도 있고 전문용어들에 익숙해진 탓이겠지만, 곧 닥쳐올 경제위기나 지구온난화 문제들을 바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 겁이 난다. 학자들과 기업인들이 칼럼을 통해 서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장 바꾸지 않으면 생길 문제들에 대해 경고한다. 따라가는 리듬이 느린 나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온 세상에 문제들은 넘쳐나고 누군가의 잘못은 많은 것처럼 보인다.


어렸을 때는 권선징악의 개념이 이분법적으로 느껴졌다. 병을 퍼뜨리는 "세균맨"이 있었고, 이를 지켜주는 "호빵맨"이 있었다. 이처럼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만든다고 믿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교에서도 좀 더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면서 순진한 믿음은 없어졌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도 같은 맥락의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즐겨봤던 호빵맨이다. 악당인 세균맨도 지금 보면 양치를 열심히 하는 짖궂은 친구로 보인다. 출처: Smule

미국 유학 당시에 온 세상이 Lehman Brothers 파산 등 금융위기 문제로 들썩이고 있었다. 부동산 채권, 금리 같은 개념은 알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어려워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나는 산속에 있는 기숙학교를 다니면서 기만 했지, 크게 피부로 느낀 바가 없었다. 오히려 책으로 공부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고집만 더 세지지 않았나 싶다. 어설프게 얻은 지식은 자신만만하게 했고, 더 무모하게 만들었다.


군대는 나에게 그런 면에서 좋은 가르침이었다. 국적과 성별 외에는 공통점이 많이 없는 사람들과 2년 가까이를 같이 자고 훈련하면서, 지금껏 고개를 돌리지 않았던 방향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쓰지 않았던 생각의 근육을 쓰면서 뻣뻣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야기와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대 사람들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New York에 갇혀있었던 나를 보았. 그들이 나에게 새로웠듯이, 한 명 한 명 그들의 삶 안에서는 내가 이방인이었다.

Highline 다리 위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이지만,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미식축구 주장과 했던 이야기가 있다. Marvel 영화 Black Panther 속의 Killmonger가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수긍이 가지 않았다. 도시를 무법지대로 만들고, 혼란을 불러온 사람이 어떤 의미로 좋은 사람인가. 선배 극단적인 그의 방법은 절대 옳지 않다고 했다. 다만 Harlem에서 자라온 흑인으로서, 소수인종이 탄압받고 고통받았던 배경에서 온 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르게 자라온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의 일면이기도 했다.


Picasso 그림 중에 우는 여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로테스크한 그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는 두 눈과 코를 옆모습에 볼 수 없지만, 이 그림에서 그 모습을 둘 다 담는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슬픔은 그 배가 되어 보는 이에게 느껴진다. 세상도 마찬가지로 내가 보는 모습과 다른 이가 보는 모습은 너무 다르다. 이 모두를 한 폭에 담았을 때, 이 그림처럼 낯선 느낌이 들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저마다의 사연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Picasso의 우는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어렸을 때는 무서웠는데, 이제는 측은하고 동정심이 가는 그림이다.

보통 해가 떴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다. 해가 이르고 늦다고 말하지만, 지구가 기울어진 채로 돌면서 태양 주변을 돌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중심으로 보는 세상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처럼 나도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조금 더 돌아보고 듣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신문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에 멈추지 아니하고, 귀 기울여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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