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에서종종 거론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자리 수는 늘어나지만, 함께 불어나는 학자금과 생활비는 신입의 월급으로는버겁다.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은 무거워지고, 경쟁은 심화되는 요즘에 고등학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에게 주어진 앞길은 막막해 보인다. 미국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면서 편안한 생활을 유지한 나로서는한국인의 많은 고충들을신문으로 접하는 것이 전부였다.대학생 때 처음 부딪힌 취업준비가 나에게는작게나마경험과 깨달음을 준 것 같다.
전역 후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정책이 바뀌면서 외국인들에게 취업관문은 훨씬 더 좁아졌다. 취업비자 당첨률은 해가 갈수록 낮아졌고, 확실치 않은 신분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달라진 학교 분위기에 더해, 신입생 때처럼 새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았다. 장롱 안에 넣어두었던 영어와 잊어버린 이론들은 따라가기 버거웠다. 이미 직장인이 된 친구들은 저 멀리 앞서가는 것 같았고, 전역의 기쁨도 잠시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날이더라도 가끔은 바람을 쐬러 공원으로 나와 걸었다.
동급생들과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 어색한 양복을 입고 인턴 기회를 찾아다녔다. 당시 우리 학년 사이에서는 투자은행과 컨설팅이 인기가 많았는데, 세련된 팸플릿과 명함들을 건네주던 직원들이 기억난다. 첫날 어떻게 되겠지 하는 거만한 마음으로 들어선 방에는, 나와 같이 정장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회사에서 나온 인사담당자나 임원들 주위로 몇십 명이 둘러서서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깜깜했다. 집에 돌아와 기진맥진해서는 바로 잠에 든 날이 대부분이었다.
3학년 내내 학업과 취업준비를 병행하면서,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보다도 지원한 회사에서 답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엑셀 파일에 정리한 지원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기계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준비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일을 반복했다. 지금 직장인으로서 돌아보면, 이러한 나의 모습도 면접관에게 분명 드러났을 거라 생각한다. 목적 없이 방황하는 지원자의 모습은 아무리 화려한 언변으로 장식한들, 묻어 나오는 흔들림에서 명백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3,4학년 때는 양복을 입고 등교한 날이 더 많았다. 출처: WSJ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보면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소수의 회사들 외에도 대단한 회사들이정말 많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 없이 지나친 제품들에 찍힌 상표들부터 이용하는 서비스를 지원하는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회사들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처음 들어보는 장비와 프로그래밍 실력을 원하는 취업공고를 읽어보면서 그동안 작은 세상에 갇혀있던 나를 보게 되었다.순진하고 막연하게 유명한 대기업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오래 안주한 탓인지 나스스로를 홍보하고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처음에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회사들이 야속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 잘 모르는 회사들에 지원하겠다는 태도야말로 잘못된 것이었다. 이력서를 고치고 면접 준비를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생각해봤던 것 같다.그동안 나는 재고도 모르고 파는 상점 주인이었던 셈이다.
퇴근길에 바라보는 회사건물들이다. 늦은 시간에도 일에 열심히 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의 적어도 1/3은 직장에서 보낸다. 그만큼 일은 삶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업무를 통해 얻은 결실은 성과의 이정표가 된다. 가끔은바쁜 업무에 치여,취업준비를 할 때처럼 작은 일 하나하나에 휩쓸릴 때가 있다. 전화 한 통에 긴장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작은 오타에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끊임없이 찾아가야 하는 이 길을 통해 내 자아를 실현하고 돌아보는 연습을 한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며 걷지 않고, 저 앞을 보고 방향을 정하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