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비늘 Nov 20. 2021

다시 여긴 바닷가

바다 여행 사진들을 넘기며

이제 늦가을을 지나, 겨울에 들어선다.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에 단풍과 낙엽을 즐길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밤새 몸의 온기로 데워진 담요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의 아침을 맞는 일은 버겁다. 움츠러든 몸으로 들어간 욕실에서 물이 데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길게 느껴진다. 가볍게 걸쳤던 겉옷은 다시 옷장 속에 넣어두고, 두꺼운 외투를 다시 꺼낼 때가 온 듯하다. 근길에 사들고 나선 커피는 사무실에 도착할 때쯤 다 식어버리곤 한다. 추운 계절을 좋아하는 나지만, 살을 에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요즘에는 맑은 하늘의 여름 해변가에서 맞는 따뜻한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나는 바다 여행을 좋아한다. 바다 멀리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몰라도, 바닷가로 가는  자체가 설레고 신나는 행이다. 도착하기 전부터 조금씩 더 느껴지는 바람의 냄새는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가리키고 바쁘게 오갔던 도시와는 다르게, 모두가 바다를 바라보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분주하게 움직였던 내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여유를 준다. 수평선이 길게 늘어 바다들의 모습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 그곳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오랫동안 먼지가 쌓인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게끔 한다. 나에게 Coasta Rica의 Tamarindo 해변과 Rhode IslandCliff Walk 그러했다.

복학 후 찾았던 Rockaway 해변이다. 멀리서 공을 주고 받는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미의 Tamarindo 해변을 찾게 된 것은 홧김에 결정한 여행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 2명과 함께 농담 삼아 다녀오자고 했던 이야기가, 실행력 좋은 친구의 고집으로 곧바로 비행기 표로 이어졌다. 서핑에 빠져있던 친구 덕에 우리는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San Jose가 아닌, 서퍼들이 자주 찾는 Witch's Rock으로 향했다. 처음 갸우뚱하게 했던 이곳의 이름은 바다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큰 바위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관광보다는 서핑에 중점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고급 호텔보다는 기숙사와 같은 숙소들이 많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서핑보드들 옆에는 쌀과 콩이 들어간 고소한 냄새의 Gallo Pinto를 만드는 주민들이 있었다.


아침 해에 그을린 피부의 미국, 캐나다인들이 어색한 스페인어로 점심을 주문하는 모습은 서퍼들과 주민들의 독특한 공존을 보여주는 듯했다. 현지인들은 안녕 대신 Pura Vida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직역하면 삶 그 자체라는 뜻이다. 인생 그대로를 즐기려 하는 그들의 철학이 묻어난다. 외부인들을 어려워하지 않고, 군대 없이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해온 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조금 모자란 돈에도 듬뿍 음식을 담아주었던 인정 많은 아주머니와 친절하게 서핑 팁을 주었던 은퇴한 선수들의 모습은 한국의 것과 결이 같은 정을 느끼게 했다. 대학 입시와 씨름하다 이제는 군대와 취업 걱정이 가득했던 나에게, 이 작 해변 마을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상기시켜주었다.

Witch's Rock 앞에서 치는 파도의 모습이다. 초보가 타기에는 어려운 높이다. 출처: Surfer Today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Coasta Rica와 다르게, Rhode Island의 Newport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절벽과 해변이 아름다운 동네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이 주는 인근 지역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며,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하얀 돛의 배들이 항구에 박해있다. 름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찾았던 Newport는 아기자기한 상점과 식당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유명한 와인농장들과 19세기에 지어진 대저택들도 그 풍경에 한몫했다. 주말까지 이어진 바쁜 프로젝트 탓에 일정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날씨가 화창했던 일요일절벽을 따라 걸은 Easton Bay는 그 아쉬움을 만회하기에 충분던 듯하다.


The Ocean State라는 별명답게 Rhode Island의 짙푸른 바다는 청명한 하늘을 닮았다. 서양을 바라보는 절벽은 옛날 부호들의 유럽풍 저택들로 가득한데, 풍경을 해치지 아니하고 녹아든 그 모습은 더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탄광, 철도 등으로 많은 부를 쌓은 그들이었지만, 바쁜 일정 속 휴식도 필요했을 것이다. 뱃멀미를 할 때 바다 끝 수평선을 바라보듯이 그들도 바다를 바라보며 어지러운 마음 정으리라 생각한다. 혼이 붉게 물들어습을 보며 나 또한 여행을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했다.

Easton Bay를 따라 이어지는 절벽이다. 굽이굽이 걷는 길은 몇 시간도 아깝지 않다.

작년 여름 New York 시 외곽의 해변을 찾았을 때 썼던 글이 있다. 오랫동안 찾지 못한 바다의 향수를 느끼고 싶을 때 가끔 읽는데, 오늘 다시 부풀었던 기억을 마무리하기에 좋은 것 같다.


불규칙하게 돌과 자갈이 늘어진 모래밭에서 달궈진 발을 번갈아 내딛으며, 나는 파도치는 물가로 향했다. 발목이 차가운 물에 잠기면 그제야 마음 편히 하늘을 바라본다. 바라본 풍경에 사람의 흔적이 없음이 조용하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파도는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온다. 내가 이 자리에 서있기만 한다면 바다는 다시 나를 반겨줄 것이다. 함께 하다 보면 어느새 바다는 조용히 감싸준다. 차가웠던 바다는 이제 나와 온도가 같다. 지금껏의 추위는 나의 온도 때문이었으리라.


이전 13화 가속도의 한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