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사람은 따뜻한 품에 안기길 원하는 사람이다 -
나비가 되길 기다리는 번데기 마냥 웅크린 몸으로 어머니 품에 쏘옥 안기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배에 귀를 바짝 대고 있으면 쿵쿵거리는 심장소리와 배를 통해 들리는 말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마치 내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던 엄마 뱃속에서의 생(生)을 느끼는 것 같아 편안했었고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어머니의 보드랍고 통통한 젖가슴을 만지는 게 너무나도 좋았었다.
하지만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쯤, 어머니는 더 이상 곁을 주지 않으셨다.
어머니에게 곁을 달라 그렇게 원했었지만 어머니는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군다며 매몰차게 거부하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여동생은 나를 놀리듯 어머니의 품안으로 안겨들었다.
아무 때나 어머니에게 안길 수 있는 동생이 부러웠다.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과 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와 보드라운 가슴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할수록 어머니는 더 매정하게 대하셨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나면 더 이상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동네 친구들이라도 있었다면 함께 했건만 그러지도 못했다.
금성(전라남도 나주의 옛 지명)에서 여수로 이사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동네엔 죄다 나보다 머리통이 2개는 더 있는 형과 누나들 뿐이었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적응해야 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전남 여수시, 지대가 높은 한 동네의 2층 양옥집에서 살았다.
그중 1층 전부를 썼던 우리 집의 살림은 윤택한 편이었다.
작은 정원엔 어른 주먹만 한 장미꽃이 때마다 피었었고 그때는 보기 힘들었던 청거북이를 열 마리 넘게 키웠었다.
그것들이 혼자 보내는 시간들을 쓸쓸치 않게 해 준 친구들이었다.
작은 막대기나 손가락으로 아무 이유 없이 정원의 흙을 파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공벌레라는 녀석을 만나면 ‘툭’ 건드려, 공처럼 몸을 웅크리는 모습을 재밌어했고, 가끔 지렁이란 녀석을 만나면 그 꿈지럭 거리는 모습이 징그러워 저만치 떨어져서 다른 곳의 땅을 파며 놀았다.
그런 이유 없는 땅파기가 지루해지면, 어항 속 청거북이들을 대여섯 마리 끄집어내 정원에 풀어놓고 ‘1호기’부터 ‘5, 6호기’까지 이름을 붙인 후 병정놀이를 했다.
그러다 내가 정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은 가느다락 막대기로 ‘톡’ 건드려 벌을 주었고, 그때마다 거북이들은 사지를 잔뜩 등 껍데기 안으로 숨기느라 애를 썼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거북이들이 긴장을 풀고 다시 고개 내밀기를 기다렸다가, 녀석들의 머리를 또 쥐어박고 다시 움츠리는 모습을 반복해서 즐겼다.
그러다 그마저도 지루해졌다 싶으면 지렁이가 나올 때까지 땅을 팠다.
그리고는 지렁이와 거북이를 싸움 붙이는 일에 열중했다.
털 하나 없이 민둥 거리는 피부의 지렁이는 능글맞게 느릿느릿 꿈틀거렸고, 거북이는 그런 지렁이를 데면데면해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두 괴수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 옆, 2층 살림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자체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거기에다 우리 집은 그 높은 곳 중에서도 언덕 중간쯤에 위치한 2층 집이다 보니 여수시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내가 처음 접한 광경이었다.
집들은 아기자기하게 오밀조밀 붙어있었고, 그 집들 사이로 작은 샛길이 있고, 샛길들이 모이고 모여 큰길을 만들고 있었다.
차들은 신호에 따라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레고 인형 같은 모습으로 오고 가고 있었다.
경이... 감동... 전율......
이런 단어를 모를 때였지만 그때 나는 분명히 심장이 멎을듯한 기분과 동공의 확장을 경험했었다.
그 날 이후, 유치원에 다녀오면 곧장 2층으로 오르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그곳에서 특별히 한 일은 없다.
그저 그렇게 풍경들을 눈으로 담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매일같이 2층에 올라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산과 섬들이 뿜어낸 꽃향기를 맡으며 여수시 전경을 보던 어느 날, “아가~, 저녁 먹게 얼른 내려온나~”하고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어~. 알았어 엄마~”
꿈속을 헤매듯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어머니께 대답을 하고 다시 네발로 조심히 계단을 내려갔다.
한발, 한발, 한 손, 한 손......
그러다 그만 계단 중간쯤에서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총 3부,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