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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Apr 20. 2016

< 어머니의 품 -1- >

-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사람은 따뜻한 품에 안기길 원하는 사람이다 -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의 품이 좋았다.

나비가 되길 기다리는 번데기 마냥 웅크린 몸으로 어머니 품에 쏘옥 안기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배에 귀를 바짝 대고 있으면 쿵쿵거리는 심장소리와 배를 통해 들리는 말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마치 내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던 엄마 뱃속에서의 생(生)을 느끼는 것 같아 편안했었고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어머니의 보드랍고 통통한 젖가슴을 만지는 게 너무나도 좋았었다.


하지만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쯤, 어머니는 더 이상 곁을 주지 않으셨다.

어머니에게 곁을 달라 그렇게 원했었지만 어머니는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군다며 매몰차게 거부하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여동생은 나를 놀리듯 어머니의 품안으로 안겨들었다.

  

아무 때나 어머니에게 안길 수 있는 동생이 부러웠다.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과 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와 보드라운 가슴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할수록 어머니는 더 매정하게 대하셨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나면 더 이상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동네 친구들이라도 있었다면 함께 했건만 그러지도 못했다.

금성(전라남도 나주의 옛 지명)에서 여수로 이사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동네엔 죄다 나보다 머리통이 2개는 더 있는 형과 누나들 뿐이었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적응해야 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전남 여수시, 지대가 높은 한 동네의 2층 양옥집에서 살았다.

그중 1층 전부를 썼던 우리 집의 살림은 윤택한 편이었다.

작은 정원엔 어른 주먹만 한 장미꽃이 때마다 피었었고 그때는 보기 힘들었던 청거북이를 열 마리 넘게 키웠었다.


작은 정원과 청거북이......

그것들이 혼자 보내는 시간들을 쓸쓸치 않게 해 준 친구들이었다.


나만의 놀이는 특별하지 않았다.

작은 막대기나 손가락으로 아무 이유 없이 정원의 흙을 파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공벌레라는 녀석을 만나면 ‘툭’ 건드려, 공처럼 몸을 웅크리는 모습을 재밌어했고, 가끔 지렁이란 녀석을 만나면 그 꿈지럭 거리는 모습이 징그러워 저만치 떨어져서 다른 곳의 땅을 파며 놀았다.


그런 이유 없는 땅파기가 지루해지면, 어항 속 청거북이들을 대여섯 마리 끄집어내 정원에 풀어놓고 ‘1호기’부터 ‘5, 6호기’까지 이름을 붙인 후 병정놀이를 했다.

그러다 내가 정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은 가느다락 막대기로 ‘톡’ 건드려 벌을 주었고, 그때마다 거북이들은 사지를 잔뜩 등 껍데기 안으로 숨기느라 애를 썼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거북이들이 긴장을 풀고 다시 고개 내밀기를 기다렸다가, 녀석들의 머리를 또 쥐어박고 다시 움츠리는 모습을 반복해서 즐겼다.


그러다 그마저도 지루해졌다 싶으면 지렁이가 나올 때까지 땅을 팠다.

그리고는 지렁이와 거북이를 싸움 붙이는 일에 열중했다.

털 하나 없이 민둥 거리는 피부의 지렁이는 능글맞게 느릿느릿 꿈틀거렸고, 거북이는 그런 지렁이를 데면데면해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두 괴수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 옆, 2층 살림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내가 네발로 기어올라가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던 그 계단을 낑낑 거리며 오르고 나자 여수시의 전경이 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동네 자체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거기에다 우리 집은 그 높은 곳 중에서도 언덕 중간쯤에 위치한 2층 집이다 보니 여수시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내가 처음 접한 광경이었다.

집들은 아기자기하게 오밀조밀 붙어있었고, 그 집들 사이로 작은 샛길이 있고, 샛길들이 모이고 모여 큰길을 만들고 있었다.

차들은 신호에 따라 서다를 반복하며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레고 인형 같은 모습으로 오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여수의 푸른 바다와 섬들이 파란 하늘, 흰 구름과 함께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울려 있었다.


경이... 감동... 전율......

이런 단어를 모를 때였지만 그때 나는 분명히 심장이 멎을듯한 기분과 동공의 확장을 경험했었다.

 

그 날 이후, 유치원에 다녀오면 곧장 2층으로 오르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그곳에서 특별히 한 일은 없다.

그저 그렇게 풍경들을 눈으로 담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변하는 풍경들......

특히 저녁 무렵, 태양이 이글거리며 바다를 향해 자맥질하는 모습이나,     

계절의 흐름에 변하는 풍경들......

산과 섬들이 철마다 다른 꽃을 틔우며 서서히 새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들은 매번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2층에 올라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산과 섬들이 뿜어낸 꽃향기를 맡으며 여수시 전경을 보던 어느 날, “아가~, 저녁 먹게 얼른 내려온나~”하고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어~. 알았어 엄마~”

꿈속을 헤매듯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어머니께 대답을 하고 다시 네발로 조심히 계단을 내려갔다.

한발, 한발, 한 손, 한 손......

그러다 그만 계단 중간쯤에서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우당탕탕’


(총 3부,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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