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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Apr 21. 2016

< 어머니의 품 -2- >

-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사람은 따뜻한 품에 안기길 원하는 사람이다 -

“어~. 알았어 엄마~”

꿈속을 헤매듯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어머니께 대답을 하고 다시 네발로 조심히 계단을 내려갔다.

한 발, 한 발, 한 손, 한 손......

그러다 그만 계단 중간쯤에서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우당탕탕’

                    

계단을 몇 번이나 굴렀는지 모르겠다.

하늘과 땅이 보였다 안 보였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계단 입구였다.


“오메 오메!!! 이거시 뭔 일이다냐!"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어머니께서 밖으로 나오셨고, 하늘을 보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는 맨발로 황급히 뛰어 오셨다.


어머니의 놀람과는 다르게, 그렇게 심하게 굴렀음에도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몸은 멀쩡했다. 다만 놀란 마음이 커서인지 한동안 눈을 끔뻑이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머니께서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오시자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 엄... 마...... 엄마......”

나는 울면서 누운 채로 두 팔을 벌려 어머니가 안아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어머니는 조심히 들어 꼬옥 안아주셨다.


“오메 오메! 어디 안 다쳤냐! 어디 안아퍼? 아따 그랑게 뭐한다고 2층을 올라가 쌌냐!”

걱정과 화를 번갈아 내시던 어머니는 어디 다친 곳이 없나 하고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셨다.


정말 아픈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정말 아프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어머니가 그럴수록 눈물이 더 나왔다.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고 통곡을 했다.

“으허엉...... 엄마...... 저... 기... 내려... 오다가... 으허엉....엉...엉... 쿵... 해가지고... 엉... 엉... 엉......”    

“오메 오메... 우리 아기 놀랐제? 많이 놀랐제?

쉬~~~ 쉬~~~

인제 엄마가 옆에 있응께 괜찮해...

쉬~~~ 쉬~~~”

내가 통곡을 거듭할수록 어머니는 뜻 모를 ‘쉬’ 소리를 내시며, 내 등을 토닥여 주셨다.

그리고 나를 더욱 품안에 꼬옥 안아주셨다.


그 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품이던가?

배를 통해 울리는 엄마의 ‘쉬’ 소리와 ‘괜찮다’는 말로 이미 나는 계단에서 구른 기억쯤은 잊고 있었다.

엄마의 품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했다.

엄마의 가슴도 여전히 보드랍고 따뜻했다.


그렇게 매정하게 품을 주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계단에서 떨어진 나에겐 넘치게 품을 내주셨다.

심지어 날 업고 옛날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얼마 만에 업혀본 엄마의 등이었던가.

항상 동생 차지였던 엄마의 품과 등이 그 날 만큼은 오롯이 내 차지였다.


어머니의 등에 귀를 대고 등을 통해 들리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에 따뜻한 햇살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이는 기분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 날 나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어머니는 전과 똑같이 나를 밀쳐내셨다.

어제 느꼈던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없음에 슬펐고, 또다시 어머니의 품이 동생만의 차지가 됨에 서러웠다.

    

나는 다시 2층의 경치들과 조우해야 했다.


어머니와의 따뜻했던 기억을 뒤로한 체, 바라본 경치들은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바다를 향해 달음박질하던 낙조(落照)와 노을빛으로 물든 섬과 바다는 피 흘리는 짐승들처럼 슬퍼 보였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던 도심 속 풍경들은 퇴색한 회색빛처럼 무의미해 보였다.


그 죽은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도로롱...... 내 작은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는 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엄마는 왜 동생만 사랑하는 거지?’

‘동생보다 엄마 말은 내가 더 잘 듣는데, 왜 엄만 날 미워하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슬픔에 그렇게 2층 난간에 쭈그려 앉아 혼자 울었다.


얼마간이나 혼자 울었는지 모르겠다.

주위에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고,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닦고, 어제처럼 넘어지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해서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어제와 비슷한 위치에서 나는 또다시 구르고 말았다.


‘우당탕탕!!!’


이번엔 어떻게 굴렀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몇 번 머리가 도는 것 같더니, 패대기 쳐진 개구리 마냥 계단 입구에 널브러지게 됐다.

   

전날의 일도 있었는지라 위험을 직감한 어머니께서는 어제보다 더 빠르게 나에게 오셨다.

그리고 어제처럼 나를 안아주시고 다독여주셨다.

다만 다른 게 있었다면 올라가지 말란 데를 기어이 올라갔다며 볼기짝을 서너 대 때리셨다는 것뿐, 어제처럼 업어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셨다.

물론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도 등 울림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 하루도 너무나 행복했었다.


하지만 반복된 수순처럼 그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냉정해지셨다.

나에게는 ‘비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매몰차게 구셨다.

이런 서글픔이 밀려올 때, 날 위로해주던 여수의 바다 풍경도 어머니의 ‘2층 금지령’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결국 한동안 멀리했던 예전 친구들인 정원의 흙과 거북이와 께름칙한 지렁이와 다시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버려진 나무젓가락으로 쭈그리고 앉아 애꿎은 흙을 파면서, 서러움과 슬픔에 눈물이 났다.

젓가락으로 뚫은 흙 구멍으로 내 눈물들이 떨어졌다.

내 안의 슬픔의 알알이 들이 씨앗처럼 뿌려지는 듯했다.

   

그렇게 내 서글픔의 시간들은 흘러갔고, 시간이 지나 어머니의 ‘정(情) 떼기’(?)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마당 구석의 수돗가에 빨래를 하고 계셨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공벌레를 희롱하고 거북이와 지렁이의 사투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다 그 녀석들이 지치고, 나도 지루해질 때쯤 2층으로 올라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욕구였다.

한동안 2층에서의 세상 모습을 보는 것에 목말라 있던 나는 빨래에 열중하고 있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갔다.


그 날, 유치원에 가지 않은 날이었을까?

따사로운 한 낮의 태양빛으로 세상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짠 내 나는 바람......

고즈넉하게 대기를 가르던 뱃고동 소리......

갈매빛으로 물든 섬들과 산등성이......

유리알처럼 햇빛을 반사하던 바다......

초가을, 터져나온 목화 같은 흰 구름......


못 본 사이, 내가 그리워하던 풍경들은 기대 이상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있으니, 자연스레 하나하나 마음에 담겨져 갔다.

 

얼마나 경치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까?

밑에서 어머니의 빨랫감 챙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들키기 전에 어서 내려가야 했다.


헌데 내려가기 위해 마주한 계단을 보자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계단에서 떨어질 때마다 엄마가 안아줬었는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엄마가 안아주지 않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봐도 어린아이가 생각했다기에는 당돌하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섬뜩하기도 한 그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래 두 번이나 넘어졌는데도 하나도 안 아펐어!’


결심을 하고 조심히 계단 중간께 만큼 내려왔다.

두 번의 넘어짐이 있었던 딱 그쯤이었다.

그리고 불타오른 용기(?)가 사그라들까 과감히 옆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총3부,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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