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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Apr 23. 2016

< 어머니의 품 -3- >

- 스스로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따뜻한 품에 안기길 원하는 사람이다 -

‘계단에서 떨어질 때마다 엄마가 안아줬었는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엄마가 안아주지 않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봐도 어린아이가 생각했다기에는 당돌하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섬뜩하기도 한 그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래 두 번이나 넘어졌는데도 하나도 안 아펐어!’


결심을 하고 조심히 계단 중간께 만큼 내려왔다.

두 번의 넘어짐이 있었던 딱 그쯤이었다.

그리고 불타오른 용기(?)가 사그라들까 과감히 옆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성공이었다.

역시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양은 대야에 빨랫감을 들고 가시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내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어머니는 사색이 되셨다.


“오메! 오메! 이거시 또 뭔 난리 다냐!”

빨래가 든 대야를 내팽개치시고 달려오신 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계셨다.

“아따! 그랑께 내가 2층은 올라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 안했냐!”

너무 놀라셔서인지 그것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절규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그래. 엄마는 날 사랑하고 있었어.

동생만 사랑한 게 아니야.

엄마는 날 아주 많이 많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고 있었어!’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던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눈물이 났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가 ‘사랑 주고 있음’에 기쁨의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전과 마찬가지로 그 날 하루 온종일 나를 땅에 내려놓지 않으셨다.

과정이야 험악했지만 사랑을 확인받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나를 내 던지며(?) 어머니의 등 울림과 배 울림, 그리고 따스한 가슴까지 누렸던 그 날......

자기희생(?)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던 그 날......


그 날이 내 기억 속, 마지막으로 느껴본 어머니의 품이었다.

더 이상 계단 번지점프(?)도 하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품을 달라 조르지도 않았으며 동생이 어머니에게 안겨 있어도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쯤, 우리 집보다 약간 위쪽에 위치한 집에 살던 ‘은실(가명)’이란 여자아이와 어울리면서 ‘어머니의 품으로 부터의 멀어짐’에 적응했던 것 같다.


그토록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열병(熱病)을 앓았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그 시절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가끔 주위 사람들 중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내외면에 스스로 상처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온갖 성형과 시술, 극심한 다이어트, 문신 그리고 말 그대로의 자해(自害)로 자신의 외면에 상처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책감, 자괴감, 우울감 등으로 자신의 내면에 스스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계단에서 스스로 굴렀던 나를 떠올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고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 저질렀던 어린 나의 모습을 보며, 아마 저 사람들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혹 주위에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벌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따스히 안아주심이 어떨까 싶다.


아마 그들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배 울림과 등 울림, 그리고 따뜻한 품과 가슴이 그리운 사람들이기에......


- 누군가 스스로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따뜻한 품에 안기길 원하는 사람이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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