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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값이 X값인 시대를 살다

최저임금은 오르기라도 하지

(사진 크레딧: Photo by loopack from FreeImages)


2018년 9월 10일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어 올립니다.


참고로 몇 마디 덧붙이면, 원래 이 글을 썼을 때보다 나아진 점도 있고 나빠진 점도 있어요.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글값이 X값인 건 마찬가지라는 거죠.


최저임금은 오르기라도 하지. 프리랜서 전업 글쟁이, 달리 말해 일용직 문자생산 노동자에게는 그저 딴 세상 얘기다.


몇몇 매체 외부필자 원고료는 20년 가까이 원고지 매당 1만 원. 그래도 좀 더 인심쓰는 곳들 덕분에 대부분 매수가 딱 떨어지진 않아도 5만 원이나 10만 원 단위로 끊어서 더 챙겨주긴 한다. 그래봐야 매당 1만 5천 원 넘기는 곳은 없다. 전에 모 매체에 입사했을 때 ‘좋은 외부필자 붙잡으려면 다만 천 원이라도 더 챙겨줘야한다’고 회사에 얘기했더니 진짜로 매당 1만 1,000원(부가세인가...)으로 원고료가 나간 웃픈 일도 있었다(9년 지난 지금도 아마 1만 1,000원일 것이다-작자 주).


한동안 업계에 내가 한 달에 원고 50~60꼭지 쓴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쓰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니 소문이 돈 건 사실이었다. 물론 헛소문이긴 했지만, 일 많을 때 한 달에 40꼭지 가까이 쓴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다. 물론 한 꼭지에 원고지 5매짜리도 있고 30매짜리도 있는가 하면, 번역일도 한창 하던 때라 꼭지당 원고료 총액은 그야말로 케바케. 


물론 그렇게 몇 달 일하고 나니 가정파탄은 물론이고(가장이 한 달에 열흘은 집에 들어오질 않네?) 건강파탄(날마다 에너지드링크를 쌓아놓고 마시며 낮은 낮이고 밤도 낮인 듯 원고 쳐내며 살았으니)까지 날 지경이라 장렬히 기브업. 왜 그 지경까지 갔는지는 업계 창피하고 스스로 바보 입증하는 일이라 지금은 말할 수 없으니, 정 궁금하신 분들은 술자리에서 만취했을때 은근슬쩍 물어보시길.


어쨌든 앞서 말한대로 원고료는 근 20년째 동결이라는 거. 그리고 분명한 건 5매짜리 원고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20매짜리 원고의 4분의 1은 아니고, 매체 번역료가 일반 원고료 단가(라고 하긴 좀 뭣하네)의 절반을 밑돈다고 해서 쓰는 시간도 절반 이하는 아니며, 결정적으로 5만 원짜리 원고 20개 쓰나 10만 원짜리 원고 10개 쓰나 수입은 똑같이 100만 원이라는 거. 죽으나 사나 기성 매체에 원고 써서 벌어먹고 살려면 원고료 단가가 그대로니 물가 오르는 만큼 일 량도 늘리는 수 밖에 없다. 


근데 기성 매체들 형편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이른바 뉴 미디어는 새로운 포맷으로 각개격파하는 분위기. 일 량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거의 순정 한국지엠 다마스로 드래그레이스에서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추월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설령 늘어도 생활이 넉넉해질 수준이 되려면 앞서 쓴대로 뭐든 파탄날 각오를 해야한다. 도장 챙겨 내비 목적지에 가정법원을 입력하거나, 언젠가 찍어놓은 셀카가 영정사진 틀 속에 들어갈 각오 말이다.


고로, 지금 와서 글질로 먹고 살려면 크게 세 가지 중 하나를 잘 해야 한다. 하나. 물건이나 서비스에 돈을 쓰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거나. 둘. 많건 적건 광고나 홍보비 예산을 써야 하는 업체를 뚫어 홍보성 글을 낼 수 있는 재주가 있거나. 셋. 어그로를 끌던 혹세무민을 하던 트래픽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거나. 


셋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매체 원고료의 두 배 이상은 받을 수 있다. 실력 있고 글발 좋다고 소문났던 매체 출신 글쟁이들이 매체 밖에 나와서 뭐 하고 있는지 보라. 입으로 먹고 사는 업으로 방향전환하거나 병행하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셋 중 하나 이상은 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이렇게 징징대는 게 내 이미지 깎으며 스스로에게 마이너스라는 거 잘 안다. 근데도 얘기하는 건 이제 기성 매체(엄밀히 말하면 종이 매체)쪽에 글 쓰는 게 거의 바닥을 찍어서다. 글 쓰는 매체(이라기보다 일 주는 곳)가 역대 최소 수준이어서 이젠 한 손으로 꼽는다. 다른쪽 글 쓰는 일이 조금씩 느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나마도 이젠 음성과 영상이 대세.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보장된 건 없다. 욕심부리면 망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글쟁이로만 살아서는 욕심 안 부려도 망할 것 같다.


몇 년 뒤면 아마도 최저임금이 매당 원고료를 추월할 것이다. 그쯤 되면 글 써서 먹고 사느니 최저임금 주는 직장 찾아 들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최저임금이 현실적인 생계비용 수준에 맞게 올라야한다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하고 싶은 얘기는 최저임금 이상으로 글값이 X값인 현실이 답답하다는 거다. 


하고픈 얘기는 더 있지만 아직 자폭테러할 단계도 아니고 원고료조차 받을 수 없는 글이니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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