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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Sungil Kang Apr 09. 2016

토렴한 국밥을 먹으며 생각한 관광과 여행의 차이


토렴 : [명사]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 순 우리말이다. 토렴하는 동안 뚝배기도 데우고 밥도 알맞은 온도로 뎁히거나 식힌다. 그래서 국밥은 '끓인다'가 아니라 '만다'라고 한다.

토렴해 나온 부산의 어느 돼지고기 국밥집


관광이란 현상을 연구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여행지의 음식은 단순한 맛 평가나 유행 이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이해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여행지에서 우연히 먹은 국밥이 생각보다 뜨겁지 않고 먹기에 알맞은 온도로 나올 때 주방을 확인하는 한가지 버릇을 인식한 이후부터인 듯하다. 정확히는 '토렴'이란 말을 알게 된 무렵인 것 같다. 


토렴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한다는 의미이다. 순 우리말이다. 토렴하는 동안 뚝배기도 데우고 밥도 알맞은 온도로 뎁히거나 식힌다. 그 사이 쌀알들에는 육수의 맛이 배고 한그릇 비울때까지 탱글탱글함을 유지하도록 코팅된다. 그래서 국밥은 '끓인다'가 아니라 '만다'라고 한다. 바쁘기만 한 오늘날 속도전의 세상에서 뚝배기를 끊여서 나오는 국밥과 토렴하여 담은 뚝배기의 국밥에 대한 차이가 뭐 그리 대수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토렴해주는 국밥집 주인장의 손금은 뜨거운 국물에 오랜세월 동안 수 없이 반복해왔던 토렴 행위를 통해 희미하거나 지워진 경우가 많다. 주인장에 따라서 다르지만 국밥 한 그릇을 말기 위해 50번 정도 뜨거운 국밥 국물을 따르고 덜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집도 있다 한다. 식은 밥은 이 과정을 통해 먹기 좋은 온도의 따뜻한 국밥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토렴은 음식에 정성을 담는 상징적 과정이며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의 고유한 음식문화이며 한편으론 과학인 것이다. 


토렴에는 이처럼 많은 의미나 정서가 관계되어 있다. 토렴을 통해 비싸고 진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만큼 진정성 있는 소박한 음식도 좋은 음식임을 알게 된다. 이런 음식을 진지하게 다루고 대하려는 열망이 주위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기회를 만든다. 좋은 음식은 좋은 소비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미식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토렴 국밥집을 주위에서 찾아 가보자. 맛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쩌면 맛은 미각과 후각의 생물적 결합물이라기도 하지만 문화적 결합물이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 음식문화의 발전이 미식가와 좋은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토렴이 힘들고 바쁘다고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지 않은가 한다.


제주전통음식인 각재기국, 순대국밥(토렴하는 집), 몸국


최근 맛집탐방이 유행하고 있다. 이제 음식은 여행자에게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한끼 이상이 아니다. 음식은 여행을 하는 목적이다. 쿡방과 같은 미디어는 여기에 윤활유를 더한다. 쿡방에서 맛집으로 소개된 집은 그 다음날부터 각지에서 온 여행자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역에서 소박하게 찾던 곳은 이제 여행자와 경쟁하여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변한다. 일상에 쫒기는 지역민에 비해 먹기가 여행의 한 목적인 여행자는 그래서 언제나 승리자가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느덧 지역의 맛집은 지역과 괴리된다. 그리고 여행자는 그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지역의 전통음식을 접했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제주에서 유명한 국수골목의 국수집은 언제나 줄을 서 있는 여행자로 인해 여행자를 위한 국수집으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지역의 맛집으로 소개되지만 지역민은 찾지 않은 맛집이며, 지역의 맛이라기 보다는 관광객이 출발한 도시의 맛이란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행지의 음식이 여행자가 여행지와 소통하고 여행지를 이해하는 매개체란 점에서 여행자는 음식 재료를 통해 여행지의 자연을, 조리과정과 먹는 행위를 통해서는 여행지 주민들의 삶의 모습, 즉 문화를 옅본다. 그리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이렇게 여행자가 지역음식을 먹는 행위는 편견없이 세상을 보고 그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행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색적인 지역음식이라고 할지라도 도전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관광객은 자신의 즐거움, 만족 추구가 먼저다. 지출대비 만족은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인이다. 따라서 관광객은 현대의 소비자와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관광객은 도전적이기보다는 안전한 것을, 능동적이기보다 피동적이며, 주체적이기보다는 의존적이다.따라서 관광지에서의 음식 취향도 검증된 전문가가 추천하는 쿡방에서 소개된 맛집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맛집 앞 긴 줄은 관광객의 이러한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무엇을 먹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영리한 자만이 즐기면 먹는 법을 안다', '오늘 먹는 것이 내일을 결정한다'라고 미식담론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미식예찬'에서 브리아 사바랭은 호기롭게 말한다. 음식은 삶의 위한 필수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먹거리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음식담론을 통해 음식을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요소로, 고급문화로 상징되는 돈과 권력에 대한 열망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브리아 사바랭에 이르러 음식은 삶을 성찰하는 인간사를 바라보는 창의 지위로까지 올라섰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며 어떤 음식을 먹는가 하는 문제는 이처럼 예전부터 사회문화적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고, 그 변화에는 권력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화적 상징관계를 풀어내는 기재가 된다. 


바쁜 현대인들이 어렵게 만든 여유 시간을 즐기려 떠나온 여행에서 위험을 회피하면서 더 많이 보고 더 즐기는 경험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알려진 곳을 찾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이왕이면 토렴하여 밥집을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찾아 보고, 자신에게 익숙한 맛이 아니라 지역의 환경과 정신이 깃 든 맛을 찾아 보려고 노력한다면 짧다면 짧은 국밥 한그릇 먹는 시간이지만 여행자와 여행지가 모두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관광객에서 여행자가 되는 시간 말이다. 


제주전통음식인 메밀조배기(수제비), 고기국수, 장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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