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일을 그만뒀어?”
“오빠는 제가 계속 몸을 팔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만둔건 잘했는데. 갑자기 왜 그랬는지 묻는거야. 앞으로 생활비는 어떻게 구할려고?”
“모아놓은 돈이 있다 그랬잖아요. 전에 말한 3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2억 정도는 돼요. 작은 가게하나 차리면 돼죠.”
“그래... 잘했어.”
공원 벤치에 앉아 단 둘이 이야기하는 두 남녀는 거의 커플같아 보였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보이는 것 빼고는.
“오빠도 그만하면 안돼요? 둘이 같이 가게 운영하면서 살아요.”
유리는 아담의 무릎에 자신의 손을 올려 말했다. 아담은 혹시라도 누가 볼까 유리의 손을 유리 무릎에 돌려놓았다.
“그래도...”
“응?”
아담은 손을 만지작 거리며 땅을 보고 있었다. 공원은 나무가 하나도 없었고 벤치가 듬성듬성 공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 가운데에 큰 미끄럼틀과 꼭짓점 위치로 하나씩 총 4개의 작은 놀이기구들이 전부였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미끄럼틀 빼고는 공원의 모든 것들이 눈높이보다 낮았다. 아담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고민과는 아무 상관없는 미끄럼틀을 보며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식은 땀만 목에 흘리고 있었다.
“말해봐요.”
“하느님께 계속 의지하고 싶어. 너와 나를 위해서라도.”
“그럼 안되는거 아니에요?”
“안되지. 안되는데...”
아담은 허리를 펴 유리를 쳐다봤다.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부끄러움을 머금고 있었다. 한 남자로서의 순결한 사랑과 남은 인생 전체를 아름답게하고 싶은 열망과 함께. 의도치 않았지만 사랑은 유리의 몸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켰고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대가로 아이가 첫돌을 보내기 전에 아담은 사제직을 박탈당했다.
평화로웠던 가정집. 소박한 환경에 풍요로운 사랑으로 함께였었던 집. 유례없는 특별한 역사로 탄생하게 된 가정. 혼인신고가 되어있지 않은 부부였지만서도 남들 모두 흔히 하는 부부싸움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요!”
“왜 이렇게 꽉 막혔어? 다시 사제활동을 할 수 있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당신 바보에요? 교구가 모르는 수녀원이라고요? 그런 곳이 정상일리가 있어요?”
“비밀조직이라고 했잖아. 바티칸 직속 기관이야.”
“말도 안돼.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는 그런 말을 믿어요?” 유리는 남편의 지성에 실망하며 아픈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당신이 직접 가서 거기 원장님과 신부님, 수녀님들 보면 그런 말 안할걸?”
“악마는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한다. 당신이 알려줬던 구절이에요. 인상깊어서 안까먹고 있었는데 이런 날 써먹을려고 머리 속에 남아있었네요. 제발 그만 좀 해요.”
“다시 말해줄게. 왜 그곳이 비밀리에 운영되는지.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 대적하는 사악한 사탄들이 존재해. 그들을 찾아 지옥에 돌려 보내야 해.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일을 천주교에서 한다고하면 사람들이 비웃을게 뻔하잖아. 그래서 비밀리에 운영되는 거야.”
“비밀리에 운영해서 사제직 박탈당한 사람을 부르는거에요?”
“그런 형식보다 신앙심과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곳이니까!”
아담은 말이 안통하는 유리가 답답했고 유리는 이런 멍청이가 있고 그것이 자신의 배에서 나온 아이의 아빠인가 싶어 절망스러웠다.
“교황이 직접 인정하는걸 나한테 보여주면 믿을게요.”
“바티칸 사무국에서 도장 찍은 문서 보여줬잖아.” 아담은 답답해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보여줄 준비와 그 문서에 적힌 문구들이 교황청의 어떤 원칙들로 써있는지까지 설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건 위조하면 그만이에요. 당신 왜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졌어요? 원래 이렇지 않았잖아요?”
“내가 원래 그런지 안그런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판단력이 안좋으니까 교구에 있을 때도 창녀촌이나 들락거렸겠지.”
“뭐라고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니, 그래. 당신은 원래 판단력이 안좋아요. 그러니까 이번에 제발 내 말대로 해요. 그곳에서 일하겠다는 말 다시는 하지 마요.”
“유리야. 거기에서는 돈도 많이 준데. 우리 형편도 훨씬 나아질거라고. 우리 아이를 생각해.”
“돈이라면 나도 옛날처럼 그 짓 하면서 많이 벌 수 있어요.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할거에요?”
“그거랑 이거랑 같아?”
“다르죠. 당신 하는 짓이 훨씬 바보짓이니까.” 유리는 소리쳤고 이제 울기 시작했다.
“우리 형편이 많이 어렵잖아.”
“정말... 정말 자꾸 이럴거에요?” 유리는 현기증을 동반한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우리 돈도 좀 벌고. 괜찮지않아?”
“아니요. 안괜찮아요.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고. 나중에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도 감당이 안될 수도 있어요.”
“절대 그러지 않아. 나랑 한 번 그곳에 가보자.”
유리는 더 말이 안통한다고 느껴 안방에 들어가더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침대와 옷장 사이 공간이 딱 사람 한 칸 정도라서 아담은 옆에서 막을 수도 없었다. 발이 지나갈 때마다 장판소리가 났다.
“지금 뭐하는거야?”
“나는 나갈거니까, 그 정신나간 생각 접게되면 그 때 연락해요.”
아담도 참아왔던 화를 쏟아내며 손짓과 함께 성을 냈다.
“왜 그래 진짜. 내 생각은 안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당신 만나서 내 꿈을 접었는데. 그 꿈을 다시 이루려고 하는데 그걸 못하게 해?”
“비켜요.”
침대와 옷장 사이 좁은 길은 아담이 비키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었다.
아담은 화난 숨소리와 함께 비키지 않겠다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물로 얼룩진 무표정의 유리를 이길 수 없었다. 기분 풀리면 알아서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잠깐 몸을 돌렸더니 유리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전화할게요.’
유리가 했던 모텔에서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다시 볼테니 일단 마음 풀리도록 혼자 두자. 그때처럼 또 전화가 올거야.’
아담은 우선 울고있는 아기를 달래러 갔다.
유리도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어차피 곧 남편이 고집을 꺾을 것이라 믿고 일단은 나가자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