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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Sep 13. 2024

3부 1화)악마의 동아줄

절대 민국이가 다미와 함께 놀게해서는 안된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사명을 현석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7살 아이인 민국이가 다미의 악령에 의해 괴롭힘 당하거나 타락하게 되면 도무지 답이 없다고 아담은 계속 강조해왔었다. 예전에는 이것을 지키기가 성가셨지만 근래에 마을에서의 여러 사건을 겪고 나니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난감한 것은 3명이서 만나는 상황이 생기지 않아야했고, 다미도 이 주의사항을 알면 좋겠지만, 다미가 이 말을 들으면 상처받을 수 있으니 다미는 모르게해야한다는 아담의 당부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때그때 잔꾀를 써가며 3명이 만나게 되는 상황은 피했고 자신이 학교에 가있는 동안은 아담이 어떻게 하는 것 같다고 현석은 판단했다. 어차피 다미는 아담의 허락을 받아야만 외출을 할 수 있었고 그 때마다 아담은 이것저것 확인한 다음 나가게 해주었다. 현석은 이 마을에 다시는 나쁜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았고 특히 민국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때문에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저 할아버지가 얼마나 살아계실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불쌍한지 현석은 민국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못했다. 만약 민국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그때에는 자기 집으로 데려와야지, 현석은 생각했다. 현석 생각에 아담이 마다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출처모를 충분한 돈이 아버지에게는 있어보였다.     




“사랑의 주님. 장애인들을 위해 기도해요. 몸이 불편해도 기쁘게 살게 해주세요.”

“잘했다, 민국아. 아주 예쁜 기도말을 지어왔는걸?”

아담은 민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뿌듯해했다. 

“아빠.. 아니, 신부님. 이런 기도를 뭐라고 한다고 했죠?”

“보편지향기도란다. 이해관계를 초월한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이지.”

“아, 네.”

“자 너가 생각한 기도문 발표해보렴.”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통치자이신 주님. 주님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축복해주시고 교인들이 굳은 신앙심을 가지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현석이도 잘했다.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기도하고 마치자.”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아담의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서 민국이를 위한 교리 교육시간에 현석도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대낮이지만 빛이 모두 차단되어 있어 전등불을 켜야만 하는 인위적인 공간에서의 시간이 끝났다. 아담은 손목의 부스러기를 털고 일어나 민국이에게 내일보자며 따뜻한 미소를 건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현석은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민국이가 너무 귀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집에서 몰래 가져온 사탕을 주머니에서 꺼내 민국이 앞에 내밀었다.

“민국이 사탕 먹고 싶어?”

“응.”

“춤춰봐!”

민국이는 양팔을 의자에 집고 조심히 바닥으로 내려 온 다음 엉덩이를 흔들면서 현석을 쳐다보며 웃었다. 현석은 민국의 양볼을 손가락으로 툭툭치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냥 가져와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지만 민국에게 주기 위해 챙겨온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현석은 사탕이 민국에게 넘어가고 나니 안심했다. 둘은 문을 열고 거룩한 성상들이 보이는 미사실로 나가 제대 앞에서 인사한 다음 긴 의자에 앉았다.




“근데 왜 누나는 안와?”

“누나?”

“형 집에 사는 누나.”

“아... 다미.. 그 누나는 따로 신부님이 공부시켜줘.”

“왜?”

“공부해야될게 엄청 많아서.”

“같이 하고 싶다.”

“어... 안될걸?”

“왜?”

“공부해야될게 엄청 많아서.”

“언제 같이 할 수 있어?”

“왜? 그 누나랑 공부하고 싶어?”

“응.”

“왜? 그 누나가 좋아?”

“그냥. 같이 하고 싶어.”

“그 누나 좋아해? 예뻐서 좋아하는거야?”

현석이 민국이를 놀리듯이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민국이는 그게 재미있어서 잠시 웃었지만 다시 그냥 그런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 그 누나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데.”

“모른다고? 진짜?”

“머리 쓴 것만 뒤에서 봤어.”

‘미사포를 말하는거구나.’ 현석은 바로 알았다. 하기사 이 아이가 다미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밖에서는 의도적으로 못만나도록 했고 성당에서는 다른 사람 얼굴 쳐다볼 시간이 없다. 게다가 다미는 미사시간에 제일 앞자리에서 미사포를 쓰고 앉아 있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을 텐데. 미사 독서 시간도 있었고, 마을 잔치같은거 할 때 봤을텐데.’ 그런 때에 잠깐 얼굴을 신경 써서 보고 기억하기에 민국은 너무 어렸다. 현석은 그나마 다행인건가 안도하면서도 불안해했다. 왜 다미가 좋다고 이러는걸까. 하기사 어린 꼬마가 예쁜 누나를 좋아하는건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는게 더 피곤한 일이였다.

“형이랑 공놀이 할까?”     



민국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니 10시 반이였다. 다미는 마당에서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스트레칭하려고 마당에 있는 것인지 자기를 맞이하려고 나와있는 것인지 현석은 또 신경쓰였다.


‘말걸지마라. 그냥 들어가자. 제발. 제발. 제발. 하느님. 막아주세요.’ 

“꼬마랑 놀고 왔지?”

‘진짜 염병하고 있네.’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 모르는 욕을 마음 속으로 적극적으로 한 다음 왜 나는 무시를 못할까 자신을 원망했다.


“어.”

현석은 대화할 사람처럼 가만히 서있지도 않고 그냥 들어갈 사람처럼 걸어들어가지도 않았다. 느린 걸음으로 다미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사선 위치에 있는 현석을 다미가 몸을 아예 돌려 직각으로 마주한 다음 다시 물었다.

“걔 이름이 민국이였나?”

“응. 왜?”

“그냥. 물어보면 안되냐?”

다미가 어처구니없음과 불쾌하다는 느낌이 섞인 웃음과 함께 다시 물었다.

“너 그 애 줄려고 아침에 사탕 챙겨갔지?”

“어..어떻게 알았어..?”

“너 예전에는 나 먹을거 잘 챙겨줬는데 요새는 안그러는거 알아? 나 서운해.”

다미가 손가락으로 현석의 어깨를 툭툭밀며 말했다. 그러고나니 집 문을 열고 들어갈 기운이 생긴 현석이 집 안으로 들어갔고 다미가 방까지 따라 들어갔다.

“이제 뭐할거야?”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밥 차려야되잖아. 그냥 쉬어야지.”

“수학 문제집 안풀어?”

“밥 먹고.”



현석은 침대에 누웠다. 큰 창문에 다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서 다시 일어나 커튼을 친 다음 다시 누웠다. 

‘좀 나가라.’ 

현석은 생각했지만 다미는 침대 옆에 양반다리로 앉은 다음 팔을 침대에 올려놓고 손등 위로 얼굴을 걸쳐놓았다. 빛이 약해져서 새하얀 피부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잡티하나없는 다미의 얼굴상은 분명히 보였다.

“아저씨가 나 그 꼬마 못 만나게 하는거 맞지?”

“무슨 소리야. 아니야.”

“맞잖아. 그럼 왜 그 애 교리교육때 나 빼놓고 하냐? 너랑 나랑 항상 같이 교육받는데.”

“뭘 항상 같이 해. 따로 하기도 하잖아.”

“뭐? 구마의식? 아니면 내 뒷담화? 그런거는 교리교육이 아니잖아.”

“너... 너 뒷담화 안해.”

현석은 심장이 쿵쾅거리는게 다미에게 들릴까 노심초사했다. 다미는 침대에 올려놓았던 팔을 빼 몸 뒤로 바닥에 짚었다.

“내가 그 애를 타락시킬까봐 그러지?”

“아, 아니라고 좀. 소설 쓰지마.”

“그런데 내가 타락시킨다고 걱정하는거야? 내 안에 악마가 타락시킨다고 걱정하는거야?”

“그만하라고 했다. 좀 자자.”

“설마 전자는 아니겠지?”

“아씨, 당연하지.”

“후자구나.”

15년 인생 가장 뼈저리게 후회되는 순간이였다. 현석은 뭐라고 둘러대면 좋을지 생각해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느님의 천사가 시간을 돌려주지 않을까 기대해봐야하려나 싶었다. 하지만 숨쉬는 매순간의 모든 호흡들이 꿈깨라고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다미가 방을 나갔고 현석은 자기 자신에게 바보, 멍청이, 저능아라고 채찍질했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기 위해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녔다. 

‘상처받지 않았을까? 지금 혼자 울고 있는거 아니야? 아버지도 항상 다미를 아껴주고 사랑하라고 했는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현석의 자책과 고통은 이내 의심으로 바뀌었다.

 ‘근데 어떻게 민국이가 딱 오늘 다미 얘기를 하고, 하필이면 마침 오늘 내가 들어오자마자 다미는 민국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거지? 이게 그냥 우연인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가 막히게 상황이 맞아 떨어져보였다. 더군다나 다미는 자신이 민국이에게 주기 위해 사탕을 챙겨간 것까지 알고 있다. 악마에 씌이면 본인이 모르는 것까지 마치 알고있던 것처럼 말할 수 있다. 혹시 이 모든 상황이 악마의 계략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현석은 몸에 소름이 돋는걸 막을 수 없었고 책상 위에 묵주를 얼른 집어들어 만지작 거렸다. 딱히 기도문을 외우지 않고 심리적 안정제로만 쓰고 있었다. 묵주덕분인지 이번에는 거룩한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하느님의 계획이 아니실까? 민국이를 통해서 다미를 정화시켜주고 악마로부터 구원해주기 위한. 복음서에 예수님 말씀에도 어린 아이 대하듯 해야한다 뭐 그런 구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현석은 혼자 일관성없이 머리를 굴리다가 점심을 차리러 부엌으로 갔다.







민국이에게의 교리 교육 5일차 오전 9시 40분에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출산의 고통을 느끼는 마리아에 대한 내용이 한참 진행중이였다. 열린 문을 모두가 보니 다미였다. 한 명은 설마했는데 진짜라니 미쳐버릴 것 같았고, 한 명은 상상해본적도 없는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한 명은 마리아를 만난 심정으로 기뻤다.

“프렌치 토스트를 좀 만들어봤거든요. 먹으면서 하세요.”

다미가 토스트가 올려져있는 접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민국은 책상에 앉은 채로 다미의 손을 잡았다. 말은 하지 않고 올려다보며 헤헤거리며 좋아했다. 다미는 민국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안녕하고 인사했다.

“고맙다, 다미야. 잘 먹을게.”

“너도 같이 먹어.”

아담이 현석 들으라고 헛기침을 하고 쳐다보았다. 현석은 아무 생각없이 말한 것을 반성했다.

“우리 하던거 마저하고 천천히 먹으마. 집에 가서 쉬고 있으렴.”


다미는 감탄소리 아-를 살짝 내면서 민국의 등 뒤에서 민국의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민국이 지껄여댔다.

“누나도 같이하면 안돼요?”

“민국아. 누나는 하는 공부가 따로 있어. 다음에 같이 하자.”

“지금 같이 해요.”

“민국아, 누나 가야되는데 때쓰면 안되지.” 아담이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민국을 달랬다. 민국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을 다미가 빵조각을 떼고 민국에게 먹이며 말했다.

“누나랑은 다음에 같이 하자.”

“응.”

“누나가 해준 빵 맛있게 먹을 거야?”

“응.”


다미가 다시 조각을 떼서 아- 하며 민국에게 먹이고 민국도 입을 벌려 먹었다. 아담이 마음 속으로 한숨 쉬며 답답해하고 있었고 현석은 초조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흐뭇함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누나랑 다음에 보자.”


민국과 다미는 서로 손을 흔들고 다미는 문을 닫고 나갔다. 민국은 계속 시무룩해 있었다. 

‘이 아이에게 사실 저 누나는 악마에 씌였단다, 너도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걸 수 있어라고 말하면 알아듣고 납득할까.’ 현석은 궁금함과 동시에 내일 또 다미가 올까 걱정했다.     






“다미야!”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로 20살 딸아이를 키우는 50대 남자 박만호였다. 성당에서 돌아가는 다미와 마주친 박만호는 다미에게 뛰어갔다.

“일은 잘 되가고 있어?”

다미는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SNS 여기저기서 캡쳐한 사진들을 보여줬다.

“얘랑, 얘랑, 얘랑, 얘랑, 그리고 얘. 여자아이는 얘. 맞죠? 3명은 자퇴했고 3명은 순성고 학생들이네요.”

“이야 진짜 찾았네. 고맙다, 고마워. 네 말을 믿길 잘했다.”

“아저씨가 원하는게 뭐에요? 동영상만 돌려받으면 돼요?”

“어... 그치. 근데 말이야. 혹시 이놈들이 동영상을 따로 저장해놨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니까 그런 것까지 싹 다 돌려받으면 되겠어요?”

“그게 가능하겠어?”

“당연하죠.”


다미는 치아를 보이지 않고 미소 지은 뒤 주변에 사람이 없나 둘러본 뒤 다시 박만호를 쳐다봤다.

“아니면 더 확실한게 있어요.”

“뭔데?”

박만호는 괜히 불필요하게 속삭이며 물었다. 사방에 밭 밖에 없고 농사용 분무기가 시끄럽게 물 뿌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다미는 더 작게 속삭였다.

“그 애들을 다 죽이는 거에요.”

“뭐? 지... 진짜로?”

“쉬운 일인데요. 원하세요?”

“그... 가능만 하다면야.. 그것도 좋긴한데.. 정말로? 뒤탈없겠어?”

“아니면 더 좋은 것도 있어요.”

다미가 등을 돌려 크게 한걸음씩 걸으며 상황을 즐겼다. 한걸음 멀어져 소리가 작게 들릴때마다 박만호는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 멍청히 서있다가 속삭이는걸로 불가능한 대화 거리가 되자 다미에게 뛰어갔다. 

“뭔데?”

“그 애들을 다 장애인으로 만들어서 창고같은데에 감금시켜놓고 두고두고 고문시키는거에요.”

박만호는 잠깐 머뭇거리다 화난 척 말했다.

“야! 무슨 말이야, 그게. 장난해?”

“아저씨. 제가 장난하는 것 같아요? 제가 마약이랑 몇 억하는 돈을 아저씨한테 괜히 보여준 것 같아요? 아무한테도 안한 어린시절 이야기까지 해줬는데.”

“아무리 진짜래도... 아니... 다미야. 네 말을 못 믿는건 아닌데..”

“아저씨, 그 날 모텔에서 당한 치욕을 생각해봐요. 그냥 넘어갈 수 있겠어요?”


박만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미에게 한 것은 그녀에게 동정을 받고 그녀에게 힘을 빌리는 것이 위로이자 쾌감이었기 때문이다. 박만호는 왜 자기가 그런 심리상태에 빠졌는지 생각해보려 한 적도 없었다. 다미의 말을 듣고나니 자신에게 평생의 수치를 안겨준 어린 년놈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애들이 그 동영상을 슬기언니한테 보여주면 슬기언니는 어떻게 되겠어요?”

“안돼, 안돼지. 그건 절대 안돼.”

“그러니까요.”

“그럼 죽이는 걸로만 하자.”

“아저씨.”

다미는 박만호의 손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박만호의 손만 보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아니에요.”

손을 뿌리치고는 돌아섰다. 박만호는 더 초조해졌다. 모텔에서 협박을 당할 때는 비참하게 초조했는데 지금은 희망스럽게 초조해졌다. 차마 어깨에 손은 못대고 다미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어색한 손동작을 하며 다미를 불렀다.

“다미야, 말해줘.”

그 말을 듣고 다시 돌아선 다미가 볼에 바람을 넣고 애교부리듯이 박만호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다시 애처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애들 고문을 슬기언니한테 시키게 하면 슬기언니가 삶의 의욕을 가질 수도 있어요.”

“슬기는... 슬기 얘기가 왜 나와!”

“슬기 언니 장애인 되고, 엄마 돌아가시고 아무 의욕이 없잖아요. 언제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요.”

“야! 재수없는 소리하지마!”

“전화위복이라고. 이 일로 슬기언니 심리치료도 해주는거죠. 범죄를 저지르는게 아니에요. 착한 사람한테 나쁜 짓 하는게 범죄지. 나쁜 놈 영원히 세상에 격리시켜 놓고 그 격리된 곳에서만 쾌감을 즐기는거에요. 그냥 컴퓨터 게임처럼.”

“슬기는... 그런 애 아니야.”

떨리는 두 눈으로 박만호는 벌벌 떨며 대답했다. 무엇이 그를 벌벌 떨게하는지 다미는 알고 있었다. 또,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제 어린 시절 이야기 기억해요?”


다미는 손을 박만호의 얼굴에 갖다대며 서서히 눈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박만호는 홀린 듯 눈을 감았고 다미는 박만호 귀에 입을 갖다대 속삭였다.


“9살 때 수녀원 수녀님들이 하나같이 하모니를 이루며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면서 죽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날이 없었다면 나는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박만호는 눈을 떴다.

“스... 슬기도? 슬기가 설마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다음에 마주쳤을 때는 마음의 결정을 해주세요.”

평범한 아이처럼 고개숙여 안녕히 계세요 마저 인사하고 다미는 집으로 갈려고 했다. 정말로 갈려고 했는데 박만호가 뛰어와서 다미를 붙잡았다.

“그놈들 잡아줘. 잡아서 가둬놔줘. 아무도 모를 곳으로.”

“아저씨, 그 애들한테 한 달에 얼마씩 준다 그랬죠?”

“백만원.”

“저한테 현금으로 1억주세요. 딱 그걸로 끝. 괜찮겠어요?”

“응. 준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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