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학의 사도 Sep 14. 2024

3부 2화)악마이다.

아침에 프렌치토스트를 해서 가져다 주고, 민국이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어보고, 박만호와 어떤 결의를 다졌다. 피곤한 아침을 보낸 다미는 점심 시간에는 종일 컴퓨터게임만 했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고 현석과 TV를 보았다가 그리고 어김없이 구마의 시간이 찾아왔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지의 성모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마리아님. 싸움에 있는 저에게 힘이 되어주소서. 하느님께 힘을 빌어주소서.”


베토벤 성가를 틀어놓고 다미의 눈을 안대로 가린 다음 아담은 다미의 얼굴, 가슴, 배, 허벅지, 다리, 발 곳곳에 엄지손으로 성호를 긋고는 다미를 관찰했다. 특별한 변화가 없자 성수Ⅱ 병에 담긴 물을 살짝 다미의 입 안에 흘려 보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다미에게 축복을 비는 기도를 했다. 다미와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다미와 평범하게 쇼핑을 다니고, 다미와 평범하게 여행을 하며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히 담겨 있었다.



“아저씨.”

“...”

“저도 민국이랑 놀고 싶어요.”

“...”

“제발요.”

“말하지 말거라. 기도 중이다.”

“그 아이가 걱정되면 묵주라도 하나 씌어주지 그래요. 그럼 괜찮지 않을까요?”

사탄을 돼지에 씌워 쫓아낸 구절이 담긴 마르코 복음을 펼쳐 다미의 배 위에 올려놓고 이번에는 라틴어 구마 기도를 외웠다. 다미는 잠깐 들어주는 척 하더니 이어서 마저 말했다.

“이 마을 사람 아무도 악마에 씌이지 않았는데 왜 하필 그 아이만 그렇게 보호하려고 하세요?”

“다미야. 자꾸 말하면 말을 할 수 없도록 입을 막아놓고 의식을 치를 수 밖에 없어.”

“하지만 그러면 제가 악마에 씌인 증상을 관찰할 수 없을텐데요.”

맞는 말이라 아담은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듣고 싶잖아요. 제가 외국어로 말하는 거. 아니면 노인 남자의 쉰 목소리로 말하는 거라든지. 그런데 어떻게 입을 막겠어요.”

“민국이가 좀 더 크면 그 때 어울리게 해주마.”

“그 애랑 저랑 8살 차이에요. 그 땐 제가 성인일 것 같은데. 혹시 그 전에 제가 악마로부터 해방될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담은 성가를 처음부터 다시 틀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더니 2분즈음 지나 다시 들어왔다. 청테이프를 가져온 아담은 다미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다미는 기가 차다는 탄식을 냈지만 테이프 때문에 그것이 아담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님께서 너를 용서치 않으신다. 사랑이 가득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사랑을 오염시키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사탄을 지옥에 보내소서. 하느님의 착한 피조물들이 악의 독잔을 마시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거룩하시도다. 위대한 하느님.”     







아침 교리 공부가 끝나고 현석이 민국을 집에 데려다 주었다.

“할아버지!”

넓은 마당에 말린 고추를 바라보는 늙은 노인이 손자를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양팔을 벌려 뛰어오는 손주를 안았다. 많이 낡은 옛날 집을 바라보고 있으니 현석은 가난한 조손가족이 안타깝게 느껴

졌다. 노인은 현석에게 들어오라고 하고 같이 대청마루에 앉아 뜨거운 햇살이 비추는 마당을 보고 있었다. 집 양쪽에 있는 큰 나무가 하늘의 풍경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모양새가 오히려 더 자신을 보호한다는 느낌을 현석은 받았다.


“민국이가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해요. 아빠도 칭찬하셨어요.”

“신부님이? 허허. 근데 신부님은 원래 사람 칭찬을 잘 하셔서...”

“아니에요. 제가 봐도 민국이는 똑똑하고 잘해요.”

“할아버지. 나 성모송 다 외웠다.”

“아이고 잘했다.”

노인은 민국의 머리를 쓰다듬고 민국은 그 느낌이 좋아 할아버지에게 더 안겨들어갔다. 하지만 곧 답답했는지 빠져나와 방에 들어가서 장난감을 꺼내고 나와 놀다가 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방학인데 여행 안가니?”

“여행이요? 어... 안 갈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바쁘셔서 그런가. 너도 어른 됐으니까 혼자 나가보지 그래.”

“제가 무슨 어른이에요.”

“형, 어른이야.”

민국이 등 뒤에서 현석을 껴안으며 말했다.

“너, 떨어진다!”

현석과 민국이 장난을 치고 놀고 민국은 깔깔 웃다가 자기 할아버지 옆에 가서 앉아 그의 잔에 차를 마셨다.

“우리 손주. 차도 마시고, 어른이네.”

“할아버지. 다미누나랑도 같이 공부하고 싶은데 같이 못하게 해.”

“다미는 왜 같이 안한다니?”

“아, 그게... 애가 일찍 못일어나서요.”

“새벽에 혼자 돌아다니는거 많이 봤는데. 주일에는 아침 일찍 나와서 청소도 하고 그러잖아.”

“아. 근데... 애가 별로 공부를 그렇게까지...”

“민국아. 할아버지 방에 가서 이불펴놓고 그 위에서 놀고 있어. 조금 있다 들어가서 좀 자야겠다.”

“네.”


민국은 신나서 아장아장 뛰어 들어갔다. 민국이 방문을 열고 들어간걸 확인한 뒤 찻잔에 차를 따르고 깊은 한숨을 쉬고는 현석을 바라보았다. 현석은 담임선생님에게 혼날 학생마냥 괜히 긴장하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일부러 떨어뜨려 놓으신거지?”

“예?”

민국이 초조하게 흔드는 두 눈동자를 노인은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다미랑 친하게 지내고 있니?”

“예. 그럭저럭.”

“너가 민국이 챙기고 공부 다니고 또 노는걸 멀리서 볼 때도 알고 있었다. 다미랑 같이 못있게 노력하고 있는걸. 아버지가 시킨거지?”

“...”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하시나?”

현석은 대답을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답답했다. 이 할아버지가 다 아는 것마냥 술술 물어보는 것이 목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물어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미 노인이 대답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착한 할아버지, 어려운 형편에 혼자 손주를 돌보는 불쌍한 노약자 정도로 봤는데 생각을 바꿔야만 할 것 같았다. 현석은 움찔어드는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지만 다미는 이제 단순한 남매, 친구가 아니였다. 사실상 적이었다.

‘적의 적은 동료라 했던가.’ 

현석은 노인의 경륜을 믿고 말을 시작했다. 우선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좀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지쳐보이셔요.” 현석은 노인의 양반다리 쪽으로 눈을 향한채 조심히 대답했다.




“현석아.”

“네?”

“너희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기억나니?”

“아니요. 저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안나요.”

“6년 전에 신부님이 너희 둘을 데려왔었지. 입양한 아이들이라면서 말야.”

노인은 다시 차를 마시려고 찻잔을 들었지만 떨리는 손은 차가 넘칠 듯 떨리게 만들었고 노인은 결국 차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마 입양은 아니고 위탁정도겠지. 너랑 다미랑 성도 다르고 말야.”

‘나는 진짜 혈육인데. 내 성은 아빠랑 같잖아요.’ 현석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당이 세워져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단다. 나와 할멈은 이제 성당 다니러 힘들게 도시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좋아했었지.”

“그땐 할머니가 살아 계셨어요?”

“너 정말 어릴 때 기억이 없나보구나. 할멈이 너와 다미를 얼마나 예뻐하셨다고.”

“아.. 네. 기억이... 아이 때 기억은 다들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노인은 고개를 들어 마당 바깥의 마을 풍경을, 도로 건너 밭, 밭 사이 사이 사람다니는 길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그리움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사자에게 그런 짐작은 우스운 것이었다. 노인은 떨리는 눈가를 진정시키며 다시 현석을 보았다. 

“너희 가족이 이 마을로 이사 왔을 때 세상을 떠났단다.”

“아...”





“다미가 죽였어.”


현석은 방심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 소재의 이야기지만 머리가 멍해지는 충격으로 노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예? 지.. 진짜요?”

“너희 아버지가 며칠을 집에 와서 하루 종일 무릎 꿇고 사정했단다. 그렇게 간절하게 사죄하는데 마음이 약해지더구나. 그러고 나서 사제의 몸으로 어디서 났는지 거액의 돈을 합의금으로 줬어. 그래서 신고도 안하고 그냥 그렇게 끝냈지. 덕분에 지금 이 변변치 못한 몸으로도 저 놈을 먹여 살리고 있단다.”

“그... 그런.. 아니..”


“그리고 신고를 안한 것에는 너희 아버지에 대한 믿음도 있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그 믿음을 후회하고 있어.”

“할아버지!”

민국이 뛰어와서 노인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왜 아직도 앉아있냐고 뭐라고 했다. 노인은 그래그래 랩하듯이 읊어대고는 양반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가자!”

민국이 방에 다시 뛰어 들어갔다. 


노인은 느린 걸음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석의 옆에 닿았다. 

“너희 아버지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 다미는 악마에 씌인게 아니야.”

“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마른 침을 삼키는 현석을 노인은 어깨를 토닥치며 마지막 말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다미는 악마야. 난 느낄 수 있어. 조심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