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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Sep 20. 2024

3부 4화)공포

“대체 또 어딜 간거야!”

넓은 집을 다 뒤져보더니 아담은 벽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질렀다. 예전에 다미가 사라졌을 때보다도 더 심하게 격해진 모습이었다.


“아빠... 우선 식사부터.”

“먼저 먹어. 아빠는 조금 있다가 먹을게.”


그러고는 아담은 자신의 기도방에 들어갔고 현석은 혼자 밥을 먹었다.

‘다미가 또 무슨 짓을 할려는건지, 언제 돌아올건지, 왜 구마기도는 효과가 없는지 아버지는 또 고뇌에 빠지겠지.’ 

현석은 자신 역시 입맛이 없는데도 억지로 밥을 구겨 넣었다.



한편 아담은 집에서 가장 큰 방인 기도방에서 무릎 끓고 기도하고 있었다. 벽에 크게 걸려있는, 작은 성당이라면 충분히 어울릴만한 크기의 십자고상과 무릎 끓고 있는 식탁 앞에 있는 손에 들고다닐만한 십자고상의 예수가 아담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느님. 제가 너무 약해지고 있습니다. 평생을 쌓아온 마음의 층들은 무너져 내려가서 더 남아있나 싶고 목숨을 걸었던 의지는 괴사되어 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몸과 생각을 있게 해주는 근본인 생명도 곧 사라질 것 같습니다. 하느님, 왜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십니까? 제가 가짜사제 노릇을 하고 있어서 그러십니까? 사제직을 박탈당해서 그러시는 겁니까? 헌신의 길을 걷겠다고 해놓고 여자와 동침하고 아이를 낳아서 그러십니까? 하느님, 제가 죄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죄의 무게를 덜어내고 사랑과 의로움의 길을 위해 제가 악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닦아놓으신 그 길을 위해 매일 매일 제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저의 사랑과, 저의 생각과, 저의 지식과 육체까지요. 하지만 악마는 저보다 강합니다. 악마 앞에서 저는 너무나 약하고 부끄러워집니다. 하느님. 구마는 무엇인가요? 저를 거쳐서 하느님이 악마와 싸우시는건가요, 아니면 저의 영혼이 악마와 싸우는 건가요? 이 마을의 교회, 이 마을의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외면하시는 것인가요? 제가 모든 벌을 받고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만큼은 이기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힘이 되어주십시오. 

마리아님.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며 출산의 고통을 느끼신 마리아님. 제가 겪는 이 고통이 성모님께서 느끼신 고통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겠지만은 저 너무나 힘이 듭니다. 평생 동정이신 성모님의 길을 똑같이 걷겠다고 해놓고 그러지 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성모님. 이 부끄러움만으로도 목메달아 죽고 저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이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마리아님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십시오. 다미를 구해줄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십시오. 저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한없이 무력해지는 자신을 보면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꿈에서 비춰지는 저의 모습, 어둠 속에 혼자 쓰러져있는 자신을 봅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마리아님께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지 않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소서.

아니요. 안됩니다. 하느님. 제가 무슨 어리석은 말을.. 용서하소서. 다미에겐 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성모님. 모든 천사와 순교자와 성인과 형제들이여. 저를 도와주소서. 성령이시여. 함께 해주소서. 저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나 갉아져 있습니다. 제 숨이 떠나기도 전인 이곳에서조차 제가 마치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저에게 힘을..’     








다미가 가출한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중년 남자를 유혹한 뒤 협박하여 돈을 벌던 6명의 학생 및 자퇴생들. 그들 앞에 다미는 다시 나타났다. 빨간 리본으로 장식된 선물 바구니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쟤 풀어줘요. 선물 상자 열어보라고.”

우두머리로 보이던 소년을 묶고 있는 밧줄과 테이프를 현승의 부하가 칼로 잘라주었다. 소년은 힘없이 자빠졌다. 몸만 자유롭게 되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패기가 한 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상태가 못되었다.

“선물이야. 봐봐.”

특별히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지만 이미 정신은 굴복의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누군가 구해주러 오지 않을까 가졌던 희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틀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 썩은 내 나는 더러운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자. 뭔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제발 그 예상이 틀리기를 바랬다. 


‘설마. 제발.’


기다시피 상자 가까이 가서 상자 뚜껑에 손을 대었다. 리본 묶음은 상자 전체를 감싼게 아니라 뚜껑에 붙어있는 장식이라 바로 열 수 있는 것이었다. 나머지 5명 중에는 갑자기 흐느끼는 소년들도 있었다. 뭔지 알아서였을까.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힘없이 기던 소년은 어디서 갑자기 힘이 나왔는지 소리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어때? 무슨 느낌이야? 네가 이런 느낌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다미가 소년에게 다가가 쭈구려 앉아 웃으며 말했다. 소년은 바지에 오줌을 적시며 조용히 울었다. 곧 6명 모두가 울어댔다. 다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언니오빠들을 감상했다.

“처음 여기 잡혀왔을 때보다 더 끔찍하지? 이제 공포의 반이라도 좀 알았어?”

그러고는 유일한 소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맞댄 뒤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마. 아직 안끝났어. 남은 인생 평생 여기서 고통받게 될거야.”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서서 공포에 질린 희생양들을 보고 있었다. 다미 등 뒤에 두 깡패는 자신들도 비슷한 일들을 해보았지만서도 포로들의 공포심을 비슷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잘 있어. 앞으로 볼 일 없을거야. 너희한테 당했던 어떤 아저씨가 여기 자주와서 너희들을 고문할거야. 좀 힘들겠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하기 싫었는데 저 새끼 때문에 억지로 한거에요!”

“저도요. 저도 강제로 한거에요. 나이 든 아저씨들하고 모텔 침대에 잠깐이라도 같이 누워있는게 얼마나 역겨운데요. 내가 그걸 좋아서 했겠어요? 언니 살려주세요!”


다미는 그 역겨운 공간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거기 수녀들 중에도 강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그만 울어. 그 때 나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걸. 너희는 그래도 여럿이잖아. 난 그 때 혼자였어."


다미는 가자며 현승과 둘이 문을 열고 나갔다. 현승은 다미를 존경하면서도 무서워했기에 두세걸음 뒤에서 따라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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