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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Sep 21. 2024

3부 5화)트라우마

“이야기가 듣고 싶나보구나.”

“네?”

현석은 무릎을 만지작거리는 것 때문에 들켰나 싶었다. 민국 할아버지 등 뒤로 보이는 옷장에 장식된 학 모양만 괜히 뚫어지게 쳐다봤다. 민국은 마당에서 혼자 나무막대기를 휘휘 저으며 놀고 있었다. 

‘왜 이런 때에 놀아달라고 소리치지 않는거야.’ 

도움이 안되는 민국을 슬쩍 봤다가 다시 노인을 보니 아까부터 자신만 보고 있는게 훤했다. 


“그 이야기를 한 뒤로 나를 보는 표정이 바뀌었어. 여기 앉아있다 돌아가는 시간도 길어졌고.”

“하하... 그런가요?”

“다미가 또 가출을 했다고?”

“어? 어떻게 아셨어요?”

“미사시간에도 안왔고, 미사 끝나고 다미는 잘 있냐고 물어보니 말씀하시더라. 신부님이 많이 피폐해지셨어.”

“네.. 요즘 밥도 잘 안드시고 기운이 많이 없으세요.”

“너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구나. 아버지한테 전할지 말지는 알아서 생각해라. 전하지 않더라도 너는 알고 있어야 해.”

“뭔데요?”

현석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인의 눈과 자신의 눈을 마주치게 하고 물었다.



“신부님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면 다미와의 싸움을 멈춰야 해.”

“싸움이요? 싸움을 멈추라고요?”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동자의 위치와 방향은 눈싸움을 계속 하고 있던 사람처럼 똑같았다.

“너희 아버지는 다미를 절대 못이겨. 아마 자신이 죽고 말걸.”

예전부터 다미에 대해 질려버렸고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온 현석이였기애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죽는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현석은 심장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잠시 멈춘 다음 다시 뛰는걸 느꼈다. 


‘이제 제발 옛날 이야기를 해줘.’ 노인은 현석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할멈이 밥상을 차려놓고 너희 가족을 초대했단다. 너희 가족 3명과 우리 부부. 민국이는 그 때만해도 자기 엄마랑 있었지. 그래서 5명이 밥을 먹었단다. 우리 부부는 원래부터 하느님을 믿었고 그래서 신부님과 대화가 잘 통했어. 그래서 재밌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는데 그 때 너랑 다미랑 매우 다름을 느꼈단다.”

“어떻게요?”

“다미는 웃기도 잘 웃고 먹기도 잘 먹고 우리 대화에 끼려고 하는게 보였는데 너는 목석처럼 가만히 있더구나. 먹어보라고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겨우 먹고 그랬지.”

“정말요? 제가요?”

현석은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다시 물었다. 찌질함이 자신의 본성이고 그것을 들키는게 두려운 마냥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그 때 할멈이 그랬지. ‘우리 새끼는 기분이 안좋니?’ 그 때 신부님이 그러셨단다. 안좋은 기억이 좀 있어서요. 괜찮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할아버지. 되게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바로 잊어버렸지. 그런데 그 사건 뒤로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구나.”

“그 사건이요?”

“일단 들어보렴. 아마 너희 아버지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아. 지금 너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는걸 보면 틀림없지. 그 때에도 그렇게 생각해서 내가 신부님한테 물어보듯이 내 생각을 말했단다. 사람이 불행을 겪으면 기억을 잃기도 하고 그러나요? 했지.”

현석은 넋 놓고 듣기만 했다. 노인은 중요한 부분을 말하기 전에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차를 한 잔 들이켰다. 노화 때문에 순간 무슨 말을 하려했나 잊을 뻔 했지만 누가 망치로 때리듯이 다시 기억이 났다. 죽어야만 잊을 수 있는 일이였기에.


“내가 그렇게 말하고나니 갑자기 다미가 끼어들더구나. ‘그러게요. 저도 궁금해요.’ 도무지 9살 짜리 아이가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고 그렇게 말을 한다는게...”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아킬레스건 위를 손으로 짚으며 이어서 말했다.

“이어서 또 말하더구나. ‘한 번 확인해볼까요.’ 그리고... 그리고...”

‘이 다음 대목이 할머니가 죽는 부분이구나. 대체 어떻게 죽였을까? 정환이형은 다른 사람에게 살해 당하게 만들고, 문철아저씨는 폭탄이 터져서 죽게 만들고, 정환이 엄마는 자살하게 만들고, 그 못된 악마가 처음 저지른 살인은 대체 뭐였을까?’ 현석은 생각만하고 노인을 보채지 않고 기다렸다. 천천히 듣고 싶기도 하고 얼른 알고 싶기도 한 두 상반된 심리가 결합된 기다림이었다.


“다음 날 밭일을 하고 창고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갔는데... 할미가 죽어있었단다.”

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주름 가득한 손이 눈을 꾹 누르고 있었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볼색깔 위로 타내려가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꺼이꺼이 우는 소리는 마을 전체에 들릴 것만 같았다. 민국이가 놀다말고 멍하니 보고 있다가 마루로 뛰어왔다. 


“할아버지 왜 울어?”

슬픈 표정을 짓는 민국에게 현석은 차가 뜨거워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말하고나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지만 민국이 ‘에이 뭐야 할아버지 울지마’하고 다시 마당으로 뛰어나가는걸 보고 자신이 그렇게 바보가 아니네라고 안도했다. 노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액체 소리가 섞인 숨소리를 뒤로 하고 노인은 말했다. 


“현석아. 잘 듣거라. 하나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야.”

“네...”

“내 등 뒤에 저 방에서 할멈은 십자가 모양을 하고 누워있었단다. 온 몸이 발가벗겨진채로. 팔다리는 모두 청테이프로 바닥에 묶여 있었어.”

“다미가... 그랬다고요? 9살이였을 때?”

“그리고 그 때 키우던 개 시체가 피 흘린채 할멈 몸 위에 눕혀져 있었단다. 할멈 복부에는 피가 흥건했어. 개피 말이다.”


“아니, 근데... 할아버지. 그게 좀... 말이 되나요? 9살 짜리 애가 노인을 제압하고 개를 죽이고 그랬다고요?”

“다미를 인간의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마라. 그 아이는 악마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 뒤로 그런 뭐... 어.. 괴력을 부린다거나 막 그런... 뭐 없었는데. 아, 좀 이상한데요.”

“현석아.”

“네?”

“다미가 그런 짓을 할 만한 아이라고는 동의하니?”

현석은 말문이 막혔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은 마을이 아니라 지구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범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다미밖에 없었다.

“다미는 금방 자기가 했다고 시인했단다. 그리고 전에 말한대로 신부님이 애걸복걸해서 합의를 봤지.”

노인은 진정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손으로 털며 현석에게 이제 가라는 듯한 눈빛과 몸짓으로 말했다.


“다음은 너희 아버지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해.”









가출한 지 다섯째 날 다미가 돌아왔다. 새벽에 조용히 들어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문을 열면 돌아와있어라 바라던 아담의 바램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아담은 자신의 바램이 이루어진 침대를 보며 희한하게 남아있는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렇게 아침이 밝고 아침밥을 먹을 시각 7시 20분이 되었다. 창문을 열어놓으니 새 우는 소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고 햇빛이 거실에 그어놓은 빛과 그림자의 경계선에서 그림자 쪽 뒤로 보이는 부엌에서 현석은 계란프라이를 만들고 있었다. 


“야. 뭐 만드냐?”

친근한 친구, 남매같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에 현석은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다. 다미는 현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옆에 와서 후라이팬과 현석을 번갈아 봤다.

“오. 프라이. 넌 할 줄 아는게 늘어나지 않네.”

“가출 좀 하지 말라고.”

“왜?”

“아빠가 걱정 많이 하셨어. 건강도 안좋아진 것 같아.”

“그래?”



현석과 다미는 다 차려진 밥상에 앉고 현석이 아담을 부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없이 마침 아담이 식탁 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다미가 보니 정말 많이 야위었다. 그 사이에 주름도 좀 늘어있었다.

“기도하자.” 

식탁에 둘러앉은 세 명은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현석은 가운데에 있는 십자고상에 예수님이 정확히 자신과 일직선상에 위치한 것이 눈에 보이자 순간 신앙심이 비대해졌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러고는 식사가 시작되었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와중에 다미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저씨. 저 가둘거에요? 또 나가면 가둔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야지.”

다미는 밥을 계속 먹으며 혼잣말 하듯이, 하지만 크게 말했다.

“요한복음 8장 7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너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나.”

현석은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다미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보다 아무 힘없이 대답하는 아담때문에 아버지의 상태가 더 걱정이였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돼요?”

“그래놓고 나중에 또 그러겠지.”

“그럼 그 때 또 봐주세요.”






아담은 이따가 얘기하자면서 일어나 방으로 가 성당 갈 준비를 했다. 아담의 방과 주방은 멀어서 다미와 현석간의 단 둘의 대화가 가능했다.

“너랑 네 아빠는 내가 나쁜 짓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나봐?”

“닥쳐.”

“내가 뭐 했는지 아니?”

“안궁금하다고.”

“미성년성매매로 사람 꼬셔서 협박하는 양아치 6명을 잡아서 어디 감금시켜놨어. 걔들이 따르는 깡패 두목은 죽였고.”


거짓말일리 없다. 다미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미는 저런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현석은 들어버린 것을 후회하면서도 머리에서 출발해 가슴을 뛰게하는 호기심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다미는 그걸 알았는지 의자를 가까이 해 현석과 어깨끼리 맞닿았다.


“그 애들 18살이야. 여자애 한 명 남자애 다섯 명.”

다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말해줬다. 고객이 이 마을 사람이라는것만 빼고.

“야. 그럼 뭐... 미성년자랑 성매매하려고 한 놈은 뭐 잘했냐.”

다미가 하는 말은 전부다 반대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현석의 반격이었다. 다미는 마치 그것을 기다린 사람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정환오빠도 그랬잖아. 알고보면 누구나 그러고 싶을걸. 겉으로 안그러는 척 하는거지.”

“아, 닥쳐. 나도 성당 가야돼. 설거지 해놔라.” 

벌떡 일어나 나가고 있는 현석이였지만 곧 길막이가 소리로 등장했다.

“너 아빠라고 다를 것 같아?”

“뭐?”

“지금이야 나를 딸이다, 악마에서 구해준다고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면 흑심을 품을 걸.”

“야 이 미친년아.”



현석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여실히 드러내며 다미를 멱살 잡고 일으켜세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리가 너무 커서 아담의 귀에 들릴 것을 조심했다. 분노로 떨리는 눈동자는 미소 짓는 다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막 지껄이지 마라. 뒤진다, 진짜.”

“내기할래? 그리고 너, 네가 네 아빠를 얼마나 안다고 그래?”

다미는 자신의 멱살을 잡는 현석의 주먹을 얼굴받침대로 하며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다미는 현석을 더 분노하게 했다. 꼭 다미의 말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악에 대한 증오였다.

“내가 너보다 너 아빠에 대해 잘 알아. 아주 더러운 구석까지.”

“개같은 년아.”

“너 원래 이렇게 욕 잘하니?”

현석은 악마에 대한 분노와 함께 악마에 대해 확인하고자하는 욕구도 같이 차올랐다. 물론 그 욕구도 악에 대한 분노의 발현이었다.

“너가 민국이 할머니 죽인거야? 이 살인마야.”

“그 노인이 그래? 6년이 지났는데도 못잊네. 그럼 궁금증이 해결됐을려나?”

현석은 주먹으로 다미를 쳤고 다미는 그대로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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