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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Sep 24. 2024

3부 6화)아담과 하와

자빠 넘어진채로 고개를 들고 현석을 보는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밖에서 아담이 나가자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석은 눈으로 힘껏 째려보더니 그대로 돌아나갔다. 돌아나갈 때의 심정은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아담은 현관문을 열쇠로 잠근 뒤 쇠사슬로 감았다. 아담은 현석의 생각보다 평온한 상태로 보였다. 

“창문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굳이 일부러 그러진 않을거다.”

“다미는...”

현석은 말하지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아버지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악으로 기우는 이 불균형을 바로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미는 굳이 일부러 나올 것 같은데요.”

“그러면 창문을 막아도 나오겠지.”



아버지의 말이 푸념인지 판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돌길을 따라 걷고 저택 입구의 문을 여니 마을이 펼쳐졌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른 시간 밭에 갔거나 집에서 쉬고 있겠지.’ 현석은 여름방학이 끝났으면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거대한 감옥 속에서 악마와 동거한다는게 어떤 기분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현석은 이렇게 생각하며 옛날의 미용실, 즙짜는 집, 떡방앗간이였던 폐가들을 지나쳐 성당으로 따라갔다. 


일찍 비치는 햇살을 감추는 성당이 만든 그늘에 민국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렇게 혼자 둬도 되나, 아동학대 아닌가 생각하던 현석은 내가 보호해줘야지라는 소심한 선행으로 먼저 뛰어가 민국이를 안았다. 뒤따라 온 아담이 민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당 문은 항상 열려있단다. 밖에 있지 않아도 돼, 민국아.”

“네.”     








“보내준 주소로 가면 되지? 가면 그 놈들이 다 묶여 있는거야? 혹시 밧줄을 풀기라도 하면?”

“힘이 다 빠져있는 상태라 그럴 일 없어요. 힘 쓰는 친구도 거기 같이 있고요. 아무 문제 없어요.”

“어... 그래. 1억은 현금으로 준비했어. 대출 받아서 준비했다. 언제줄까?”

“일단 가지고 계세요. 제가 외출금지라서요. 집 밖에 아예 나가지를 못해요.”

“이번 일 때문이야?”

“네. 근데 슬기언니는요? 오늘부터 같이 가시나요?”

“그게... 사실 아직 어떻게 해야될지 잘 판단이 안서서.. 언제부터 슬기도 데려갈까?”

박만호는 휠체어에 앉아 마당에서 책을 읽는 딸을 거실 벽창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 한 손은 주머니 속에. 입맛을 다시며 짐승도 품지 않는 금지된 욕망을 품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요.”

“나중에 언제?”

“아저씨가 알게 될거에요. 자연스럽게.”

“그.. 그럴까?”

“당연하죠.”     











밤이 되었고 다미의 가출 때문에 5일 동안 못했던 구마가 다시 시작되었다. 십자가 모양으로 묶여있는 다미는 현석의 물음 때문에 옛날에 그 할머니가 떠올랐다. 탁자 위 십자고상 등 제단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담은 5일의 기간을 충전기로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싸울 수 있는 체력을 주기 위한 하느님의 뜻.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사명감이 들었고 고개를 들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고통스러워하면, 힘들어하면, 포기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싸워야한다.’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보며 다짐할 때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이쯤되면 결론이 나와야 할텐데 아저씨 고집도 정말 대단하네요.”

아담은 돌아보지 않고 갈등했다. 입을 막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신이 없다. 구마의식은 소용이 없다. 다미는 악마에 씌이지 않았다. 악마가 신보다 더 위대하다. 적어도 이 중에 하나의 결론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다미야. 너도 하느님을 믿지? 거룩한 싸움에 함께 하자꾸나.”

돌아서 일어나 다가오며 아담이 말했다.

“언제가는 구마의 효과로 제 안의 악마가 나간다는거에요?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고?”

아담은 눈에 들어오는 다미의 몸 전체에 성호를 그었다.

“인 노미테 파트리스, 엣 필레, 엣 스피리투스 상티. 아멘.”

“칼포퍼의 반증주의에 따르면 그건 굉장히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건데요. 이쯤되면 그만 해야죠.”

아담은 말없이 눈을 감고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했다. 


그 때,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스토피도. 노 아이 디오스 빼로 요 씨.”


아담은 눈을 뜨고 다미를 봤다. 이 공간에 자신과 다미 둘 밖에 없다. 다른 남자는 없다. 분명 남자 목소리였다. ‘드디어 악마가 나온 것인가?’ 유럽어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아담은 방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담은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생각하며 기도를 멈추고 성수Ⅲ 병을 가져와 다미의 얼굴에 뿌렸다. 

“사악한 악마야.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자 드디어 악마가 감춰왔던 더러운 얼굴을 보이려는지 다미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것도 잠시 평소 다미의 목소리로 크게 웃었다. 깔깔깔 웃느라 목이 뒤로 젖혀지며 눈은 떠지지 않았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신은 없지만 나는 있다. 스페인어에요. 장난 좀 쳤더니 바로 반응하네요.”

‘간사하게 웃는 웃음 소리, 악마의 간계, 비겁한 거짓말, 지금 이 말이 거짓말인 것일까? 악마가 다미로 둔갑한 것인지, 다미가 정말 장난을 치는 것인지 헷갈려. 아니면 다미의 인격을 악마가 잠식 시켜버린 것일까?’ 이제는 판단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담은 성수병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묵주를 가지고 다미의 머리 쪽으로 갔다. 십자가가 그려진 손수건으로 다미의 얼굴을 가리고 그 위로 자신의 묵주를 갖다대며 라틴어로 구마기도를 외웠다. 본인은 침착한 줄 알지만 다미에게 보이는 아담의 흥분한 모습은 다미를 즐겁게 했다.


“아저씨.”

왜 입을 막지 않았을까 후회했지만 다미의 말은 계속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처럼 아담이 자신의 행동은 바꾸지 않았지만 귀에 신경은 다미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신은 없어요. 아저씨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죠?”

“신성모독하지말아라.”

“신이 있다면 왜 아저씨가 매춘부랑 자고 싶다는 유혹이 있었을 때 구해주지 않았을까요? 신이 있다면 왜 현석이가 임신되게 했을까요?”

“하느님의 뜻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거라.”


“아! 그 매춘부가 악마였던 거에요. 신이 있다면 그 다음으로 맞는 말은 이것 아닐까요?” 아담은 대답도 기도도 멈추었다. 잘못하면 심장도 멈출 기세였다. “현석이 엄마가 악마. 악마의 유혹을 받은 현석이 아빠. 그럼 현석이는 뭐가 되는거죠?” 아담은 금세 생긴 식은 땀을 닦았다. “그래서 아저씨 이름이 아담인가요? 하와가 먹으라고 해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처럼 매춘부의 유혹을 받아서?”

다미의 얼굴을 가린 손수건이 흘러내려가 바닥에 떨어졌고 누워있는 이와 서있는 이의 눈이 마주쳤다. 보조개가 다 드러나게 웃는 어린 소녀는 식은 땀을 흘리며 서있는 성인 남성을 보는 것이 몹시 즐거웠다.

“둘 중 하나 선택해야겠는데요. 신이 없다고 인정하든지, 아니면 현석이 엄마가 악마라는걸 인정하든지.”

아담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나서 의자를 가져와 다미 머리 밑에 두고 앉았다. 의자를 가져올 때 같이 가져온 청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다시 다미의 얼굴에 성호를 그었다.





“다미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 반드시 널 구원하겠다.”


‘15살 짜리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악마 빙의의 큰 증거다.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만 알 수 있어.’ 

아담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계속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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