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고 현석은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2학기의 공부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었다. 그래도 학교라는 도피처가 생긴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였고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외우는 것은 머리 속에 다미를 지우게 만들었다. 물론 그 때 그 순간 뿐이였지만 학교 친구들, 선생님, 급식, 왔다갔다 하는 길에 보이는 간판, 나무, 가로등,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 동굴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정서적 안정을 취하면서 마을로, 집으로 돌아오고나면 그래도 원기충전되어 있는 상태였다. 다미에 대한 동정심, 다미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길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다미는 가출하고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한 달 동안 계속 외출금지 상태였다. 또래 친구들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들을 보고 집에 돌아가면 다미가 더 가여웠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가서 다미를 보면 동정심같은 것은 증발해버려 기억만 남았다. 그리고 오늘은 더 특별했다.
“야. 안다미. 어딨어?”
현석은 가방 끈 한 쪽만 걸친 상태로 다미방문을 열었다. 사람이 늘 걱정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것들. 상상하기 싫었던 것인지 상상이 불가능한 것인지는 판단하지 않지만 전혀 달갑지 않은 광경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현석은 움찔했다.
“뭐야?”
“형아.”
“어.. 왔어?”
다미는 색점토로 빚던 꽃을 장난감 집 옥상에 올려놓고 일어났다.
“배 안고파? 만두 쪄줄까?”
“야.” 문 옆에 나가려던 다미를 노려보며 현석이 작게 말했다.
“뭐?”
“그거 말고. 할 말 없어?”
“없는데.”
“지금 이 상황 뭐냐고?”
민국이가 양 손에 각각 쥔 장난감에 신경을 떼고 둘을 보고 있었다. 다미는 민국이 때문인지 현석 때문인지 둘 다를 한번 씩 훑어보고 주방으로 갔다. 현석은 민국에게 잠깐만이라며 손짓으로 놀라고 한 뒤 따라갔다.
“어떻게 된거야?”
“나도 민국이랑 놀고 싶은데. 못나가게 하니깐. 민국이가 오게 했지.”
“어떻게?”
“할아버지가 보내주셨는데.”
물과 만두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채 몸을 돌려 현석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현석도 학교 생활로 인한 활력보충으로 다미를 마주할 용기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쟤를 왜 이 집에 보내냐고.”
“보내달라고 했으니깐.”
“보내달라고 하니까 그냥 보냈다고? 말이 돼?”
“말이 되지.”
다미는 다시 몸을 가스레인지 쪽으로 돌린 다음 만두를 숟가락으로 들었다놨다하며 살폈다. 현석은 다미가 자신보다 저 만두를 더 신경쓰는 것 같아 불쾌했다. 정확히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면서도 뭐라고 해야 대화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지, 제대로 된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듣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상황을 전개해나갈지 머리 속에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미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접시를 가져와 만두를 하나씩 퍼담으며 말했다.
“민국이 안보내주면 민국이를 자기 할머니처럼 죽게 해주겠다고 했어.”
고개를 돌려 “됐어?”라고 묻고는 만두가 담긴 접시를 들고 부엌을 나갔다. 현석은 뒤따라와 다미의 손목을 잡고 미쳤냐고 물었다. 다미는 무표정인듯 웃고있는 듯 현석을 바라보았다.
“너도 그렇게 죽여줄까?”
말이 주는 위압감에 현석은 움찔하여 다미의 손목을 놓았다.
‘정말 다미가 날 죽일까? 나는 저 아이에게 죽기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다미에게 살해당한다는 미래는 상상이 안돼. 있을 수 없는 일로 남매처럼 자란 저 아이가 나에게 그런 말까지..’
현석이 스트레스와 공포에 눈을 질끈 감고 일단 방에 따라 들어갔다. 다미는 민국에게 뜨거우니까 조심하라며 호호 불어주며 만두를 먹여주었다.
‘저 아이에게 저렇게 해주는 저의는 뭘까? 또 어떤 비극을 맛보게 하려고?’ 현석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해야하는 것은 있다고 마음을 먹고 침대 의자에 앉아 둘을 지켜봤다.
“형도 먹어.”
“아니야. 형은 배불러.”
“응.”
무심하게 민국은 한 번 물어본 걸 끝으로 혼자 만두를 먹어댔다. 그러고 현석에게 한 것과는 상반되게 다미에게는 먹을거냐고 묻지도 않고 직접 손으로 먹여주었다. 그러기를 십 분정도 지난 후에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현석 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왔다. 지금 집에 돌아올 시간이 아니였다. 다미가 알기로 지금은 고해실에서 고해성사를 봐주거나 아니면 마을 사람들 밭일을 도와줄 시간이다.
“안다미!”
“네?”
다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고 방의 아래쪽만 돌려봤다. 현석도 민국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을 신부님의 성난 목소리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에 그가 있는 것이 놀라게 만들었다.
“민국아. 가자. 밖에 할아버지 기다리신다.”
아담은 민국의 손을 잡고 데리고나가려고 일으켜세웠다. 민국은 방에서 나가기 싫었지만, 정확히는 다미와 헤어지기 싫었지만 어른의 말에 반항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그대로 따라 나가려했다. 그 때 다미가 무릎 꿇은 채로 어기적 따라가 아담과 민국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담의 다리를 붙잡고 올려다보며 빌었다.
“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하루만 놀면 안돼요. 하루만요. 네?”
말을 얼마나 빨리하는지 가능한가 싶은 속도로 말하면서도 발음이 명확했다. 게다가 다미 입안에 만두 찌꺼기가 보기 싫게 뱉어져 나왔다. 침대에 앉아 정면에서 보는 현석은 알 수 없는 미묘함의 감정에 빠져들었다. 불경하게도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섞여있었다. 그렇게 관객답게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아저씨. 제발요. 그냥 장난감 놀이하고 있었어요. 만두 쪄먹으면서. 그치 민국아?”
민국은 말없이 끄덕였다. 아담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민국의 손을 잡았다.
“오늘은 집에 가고 다음에 놀자, 민국아.”
“아아 아저씨 제발요.”
이번에는 발목을 잡고 엎드린 상태로 울었다. 민국은 그런 다미를 보고 다시 아담을 올려다봤다. 여기에는 희망이 섞인 눈빛이 담겨있었지만 6년 째의 결심 앞에서는 금방 떨어지는 종이비행기였다. 아담은 뿌리치고 민국과 방에 나간 다음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이윽고 민국은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아담은 현관에서 들어가지 않고 다미 방 쪽을 쳐다봤다. 집 가장자리에 있다보니 여기까지 들렸다. 아악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무릎 꿇은채 얼굴은 독감 환자처럼 벌개지고 눈물은 타고 내려 턱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참혹하다 할만했다. 현석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편견을 버려야하나 갈등스러웠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사실상 남매인 다미를, 아버지가 딸로 여기며 사랑하는 다미를 저렇게 울게 둘 순 없었다. 하늘을 향해 쌓아진 탑이 무너지면 그 파편들로 새로운 탑을 쌓을 수 있다. 다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현석은 일단은 다가갔다.
“그만 울어.”
다미는 그 말에 정말 바로 울음을 그치려는지 코숨을 강하게 들이마시고 이마를 손으로 짚고는 쭈구려 앉았다. 현석은 고민하다가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울음은 점점 그쳐갔고 아담은 조용히 성호를 긋고 성당으로 돌아갔다.
저녁밥 시간에 맞추어 아담은 집에 돌아가 걷고 있었다. 고해실에 들어온 마을의 할아버지가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하며.
“신부님.”
“고해성사의 절차를...”
“아니요. 신부님. 고해성사를 드리러 온게 아닙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우리 민국이가 지금 다미집에 있어요. 몹시 불안해서 혹시 신부님이 좀 데리고 나오실 수 있으신가해서요.”
“아니, 어째서 민국이가...”
“민국이를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제가 데려다줬습니다. 큰 실수였죠.”
“하... 그럼 지금 바로.”
“신부님, 잠깐만요.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예, 어르신.”
“오늘 마을을 떠나렵니다. 언제 다미... 그 악마에게 보복당할지 몰라요.”
“지내실 곳은 있으신가요.”
“막내 딸 집으로 가려고요. 혼자서 작은 오피스텔에 사는데... 통화를 해보니 그 착한 것이 오라고하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신부님.”
“네.”
“신부님도 그만하세요. 신부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아 보여요. 많이 지쳐보입니다. 아니, 단순히 지쳐보이는게 아니라.. 저의 감이 그렇습니다. 느낄 수 있어요. 이대로 지내다간 분명 제명을 채우지 못할겁니다. 용감한 것도 중요하지만 승부가 뻔한 이런 무모한 짓은 빨리 포기하는 지혜도 중요합니다. 당장 그만두세요.”
“그럼 다미는...”
“대교구에 보고를 하든지 그런식으로... 저 아이는 교황청에 바로 보고해야할 감인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신부님 혼자서 어떻게 해볼려고 하지 마시고...”
“...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못됩니다.”
어두워진 저녁 7시 30분이라는 시간은 자신의 고뇌와 함께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다면 이 비극 또한 멈출까. 하느님의 창조가 계속 진행형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이 순간은 무엇을 위한 순간인 것일까? 여기서도 하느님의 창조가 계속 이루어지는가? 아담은 자신이 말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못된 이유의 근원을 추적해 보았다. 역시 그것은 잘못된 만남에서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제 자식을 버리고 떠난 못된 여자, 딱히 그립지도 않다. 이렇게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 욕정과 정열 때문에 자신은 모든 인생을 망쳐버렸고 이룰 수 없어 보이는 사명 앞에 좌절하고 있다. 손의 감각도, 목소리도,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녀. 처음부터 그 존재를 아예 모르게끔 운명이 흘러갔다면 다른 운명의 톱니바퀴가 지금 어디에 나를 위치해놓았을까?'
아담은 고뇌가 결코 즐거운 취미가 될 수 없음에 슬퍼하며 집에 도착했다.
“아저씨, 오셨어요? 밥 다 되있어요.”
벽 틈에 숨어서 얼굴만 내밀며 다미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이어서 현석이 다미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나 어서 먹자고 또 이야기했다. 오늘 하루 어느 순간에 생긴 사건은 기억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연속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아빠한테 맨날 맞고 자랐거든요. 학교 선생님도 맨날 나만 때리고. 그래서 제가요. 그니까 그럴라고 그런게 아니고...”
그는 더 말하지 못하고 고통의 신음을 질러댔다. 박만호가 끓는 물이 담긴 포트를 그의 맨발에 부어버렸기 때문이다.